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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Aug 10. 2023

재레드 다이아몬드 연대기

《총, 균, 쇠》를 중심으로


몇 년에 한 번씩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서점을 넘어 세간을 휩쓰는 책이 나온다. 놀라운 통찰을 엄청난 두께에 뛰어난 필력으로 담아 뭇 대중으로 하여금 감히 읽어둬야 할 교양서로 강박을 느끼게끔 하는 책들. 안 봤다간 시대에 뒤떨어질 것만 같은 '서울대 선정 필독서' 류의 협박성 띠지는 덤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그랬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그랬다. 그리고 앞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있었다.


히트작은 제목부터 간결 & 강렬하다. 원제도 그렇다. 《건, 졂, 스틸 Guns, Germs, and Steel》. 무력과 균력(?) 그리고 기술력으로 세계를 정복한 유럽 제국주의의 강탈사. 몇 백 년에 걸친 과정을 체계적으로 기술하는 것도 쉽지 않은 작업인데 이 책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같은 우열이 생긴 근본적 원인을 규명하는 데 힘을 썼다. 그것은 선천적 능력 차이가 아니라 우연히 형성된 지리적 차이였다는 통찰. 이 책 이후 사람들은 지도를 더 유의미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잠깐.


언제 적 총균쇤데 이제 와 갑자기 타령이냐고? - 1997년 출간이니 생각보다 오래되긴 했다 - 그리 물으신다면 책을 다 책 쓴 이에게까지 관심이 넘어간 케이스, 라고 말씀드리겠다. 노래가 좋으면 가수를, 그림이 좋으면 화가를 찾아보듯 작품이 좋으면 작가가 궁금해지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가 아닌가..


아니, 맞다.


훌륭한 저자는 다른 저작도 좋은 법이다. 워낙 유명한  책의 내용을 서머리해준다는 글이나 영상은 많다. 하지만 저자의 사상을 연대기적으로 서머리한 시도는 그리 보지 못했다. 이 정도 통찰을 가진 이라면 그 사고가 어떠하며 또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흥미가 동할 만 하기에 저작 연대기를 나름 정리해 보았다. 과연 총균쇠의 저자는 다른 저작에서도 기복 없는 통찰을 보여준다. 결론부터 말해, 저자는 원힛원더가 아니다. 생리학, 지리학, 인류학, 조류학, 진화학, 역사학을 망라한 넓고 깊은 스펙트럼의 석학이다.



책을 읽었든 읽지 않았든,

내용을 이해했든 이해하지 못했든, 총균쇠라는 제는 어디서 한 번쯤 들어봤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저자 이름은 기억 안 날 수 있다. 무슨 보석 이름 비슷했는데, 어렴풋한 인상만 떠오를 수도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Jared Mason Diamond.


다이아몬드 씨라니,  제목 못지않게 저자 이름도  인상 한다.


그의 뿌리는 러시아 아슈케나짐에 있다. 디아스포라 이후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 공동체는 크게 셋으로 나뉜다. 지금 스페인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한 세파르딤, 중동과 남아시아에 산개한 미즈라힘, 그리고 러시아 포함 동유럽권에 위치한 최대 규모의 주류 그룹 아슈케나짐이. 특이하게 보이다이아몬드라는 성은 그의 가족이 미국으로 넘어올 때 이민국 직원이 원래 성인 뒤마인이 어렵다고 바꿔 기입해서 생겼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본인은 1937년 보스턴에서 태어났지만 집안 자체가 문명 이동의 증거인 셈이다.



의사였던 아버지처럼 그도 처음엔 의사가 되고자 대학에서 생리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새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태평양 한가운데의 커다란 정글 섬 뉴기니로 향했고, 그곳에서 조류학을 연구하던 중 인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총, 균, 쇠》의 첫 장은 이때 만난 뉴기니 원주민 알리의 질문, “왜 유럽인은 많은 물건을 개발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했느냐?” 하나로부터 여정을 시작한다.




자, 지금부터 차근히

그의 저작을 연대기적으로 살펴보자.


세간에 알려진 첫 대중서는 1991년에 나왔다. 생리학자답게 주제로 삼은 것은 진화생물학이었다. 첫 책 《제3의 침팬지》에서 그는 인간과 유인원의 같고 다름을 살폈다. 이어 두 번째 책 《섹스의 진화》에서 인간의 성 관념과 행동양식의 진화적인 요인을 논했다.


 《제3의 침팬지》 The Third Chimpanzee: The Evolution and Future of the Human Animal (1991)


 《섹스의 진화》 Why is Sex Fun?: The Evolution of Human Sexuality (1997)



그리고 1997년, 퓰리처 상에 빛나는 《총, 균, 쇠》가 등장한다. 생물학적 인간에서 문명사적 인류로 그의 관심이 옮겨갔다. 이 책에서 그는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지리적 요인을 꼽았다. 세계지도에서 동서와 남북의 차이가 이처럼 극명하게 드러난 적은 없었다. 동서의 대표는 유라시아 대륙이고 남북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이었다.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 The Fates of Human Societies (1997)


유라시아 문명이 다른 문명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거기 살던 사람들의 어떤 태생적 우월성 때문이 아니라 단순한 지리적 차이였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단지 대륙이 동서로 뻗었느냐 남북으로 뻗었느냐의 차이에 의해 지금의 커다란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우열(로 보이는 것)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동서로 길어 기후가 비슷한 유라시아에선 다양한 혁신의 교류가 상대적으로 용이했던 반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에선 위도에 따라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자연환경과 기후변화가 기술의 전파를 가로막았다. 의지와 상관없이 어디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조건과 기회가 달라졌고, 그 결과가 지금의 삶의 질을 판가름 다. 선천적 능력의 우열을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같은 시각은 센세이셔널했다.



그로부터 7년 뒤인 2005년, 문명 전반에 대한 빅 히스토리적 관점에서 개별 문명들의 구체적 존망사현미경을 바짝 더 들이댄 다음 책이 나왔다.


 《문명의 붕괴》 Collapse: How Societies Choose to Fall or Succeed (2005)


총균쇠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세계 각지에서 한때 성황했던 문명이 몰락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탄탄한 사료를 바탕으로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거대 석상이 즐비한 이스터 섬의 부족사회는 세상에 알려졌을 때 이미 붕괴되어 있었다. 북아메리카 아나사지 원주민은 사막에 놀라운 정착촌을 건설했지만 어느 날 공중분해됐다. 북유럽의 바이킹은 콜럼버스보다 500년이나 앞서 신대륙을 발견하고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드넓은 그린란드에 식민지를 개척한 바이킹이었지만 똑같은 장소에서 현재까지 성공적으로 생존한 이누이트와 유명을 달리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때 융성했던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어느 날 갑자기 자멸하게 된 걸까?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환경 파괴, 적대적 이웃 관계 등 다섯 가지의 원인을 고찰한다. 그리고 또다시 7년 뒤인 2012년, 《어제까지의 세계》를 쓴다. 그들의 과거가 우리의 현재가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발달된 미래 기술이 아닌 전통사회의 가치 재발견이었다.


 《어제까지의 세계》 The World Until Yesterday: What Can We Learn from Traditional Societies? (2012)


《총, 균, 쇠》 《문명의 붕괴》 《어제까지의 세계》를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탐구 3부작이라고 부른다. 흔히 문명의 탄생과 진화, 위기와 종말, 생존과 희망을 다뤘다고 설명된다. 나는 여기에 제일 첫 책  《제3의 침팬지》까지 묶어보고 싶다. 그렇게 하면 선사시대 → 역사시대 → 현재상황 → 미래대책으로 한 줄에 꿰어지는 유기적 빅픽처가 완성된다. 인류 문명 전반에 걸친 거시적 대탐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탐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랜 기간에 걸쳐 전체를 개괄한 그는 그 후 현재를 살고 있는 현대인의 구체적 당면과제에 집중했다. 근래 나온 책들은 다음과 같다.


 《나와 세계》 Comparing Human Societies (2016)


 《대변동: 위기, 선택, 변화》 Unheaval: How Nations Cope with Crisis and Change (2019)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 천연자원의 축복을 받은 아프리카 국가가 오히려 자원이 없는 서유럽 국가에 비해 열악한 상황에 처한 이유는 무엇인가? G2로 부상한 중국은 과연 월드리더가 될 수 있을까?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시선은 역사적, 지리적 요소에서 환경적, 제도적 요인으로 점점 더 조준해 들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일련의 저작들을 정리하자면 결국, 인간에 대한 진화인류학적 관심이, 지리적 분석에 의한 전체 문명사로 확장됐다가, 발전과 쇠퇴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거쳐, 환경생태적 문제 제기로 심화된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미래 전망이 초기에는 51:49로 밝았다가 지금은 49:51로 어두워졌다는 평가가 있다. 가치평가도 좋지만 그보다는 강조하려는 주제가 좀 더 분명하고 확실해졌다는 경향을 읽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독법인 것 같다.


환경결정론자다, 대중저술자에 불과하다, 혹자는 그에게 이런저런 꼬리표를 붙이지만 - 꼬리표는 늘 붙기 마련이다 - 어쨌든 그는 뜬구름 잡는 몽상가가 아닌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인물이다. 그만큼 폭넓은 분야를 아우르며 꾸준히 그리고 일관되게 조망하고 고민하는 지식인도 흔치 않다. 올해 86세인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얼마나 더 오래 탁견을 나눠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그가 내놓을 저작은 충분히 읽고 들을 가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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