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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Aug 10. 2023

돌쇠는 마님의 집으로 들어왔다

이게 어찌 된 일인고 하니...

때는 바야흐로 2022년 초, 돌쇠는 마님의 집으로 들어왔다.


어찌 된 일인고 하니...


 한창 프로젝트 하나를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무렵 같이 살던 호적메이트로부터 통보를 받았다. ‘더 이상 서울에서 못 살겠다.‘는 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서 서울로 상경한 나는 부모님이 구해주신 집에서 호적메이트와 겁이 많지만 겁보다 호기심이 많은 롱다리 강아지 한 마리와 오붓한 생활을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집 재계약 시기를 앞두고 호적메이트와 어떻게 할지 잠깐 상의하긴 했으나 프로젝트에 정신이 팔려 진지한 대화는 별로 나누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이 호적메이트가 이 집에서 나가겠다고 통보하는 게 아닌가! 부모님이 집을 구해주실 때 내건 조건은 ‘한 번도 집 밖에서 살아본 적 없는 호적메이트를 데리고 살면 전셋집을 해주겠다.‘ 였기에, 나는 그렇게 갑작스레 그 집에서 나가야 하는 몸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호적메이트가 잘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 동네는 2년을 살고도 정을 붙이기 어려울 만큼 삭막한 동네였기 때문에 -일련의 사건들도 있었다- 어쩌면 잘 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통보였다. 호적메이트와 내가 그리 살가운 사이도 아니고 얼굴 부비고 살면서도 대화를 나누는 일이 손에 꼽았기에, 그래 이참에 다시 혼자 살던 때로 돌아가 자유를 만끽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강아지와 헤어져야 하는 것이 슬프긴 했다. 강아지의 이름은 ‘룽‘이었는데 털색이 누룽지 색이라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 (사진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커서는 좀 다르게 보일까 해서 어릴 때 사진도 함께 첨부한다) 웃기게도 룽이가 우리 집에 온 것도 호적메이트의 통보에서 비롯되었는데, 어느 날 호적메이트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더니 ’나, 강아지 데리러 간다.‘ 하지 않겠는가! 잠깐 당황하긴 했으나 곧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래. 내가 바닥에 있는 물건들 싹 정리해놓고 있을게.‘ 우리 집에 어떤 강아지가 오는지, 강아지를 어디서 데려오는 것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이렇게 누추한 곳에 귀한 강아지가 오신다니. 얼른 일어나 바닥을 쓸고 닦아야 하지 않겠나 싶었을 뿐이다. 어느 시골 마을에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구조된 착하고 예쁜 강아지 룽이는 그렇게 통보로 내게 왔고, 그렇게 통보로 떠나고 말았다. (물론 지금도 호적메이트를 만날 때 종종 볼 수는 있다.)

(왼) 룽이가 (과거) 우리 집에 온 첫날 (오) 최근 호적메이트 일정으로 잠깐 우리 집에 맡겨졌을 때 산책나간 사진

 그렇게 호적메이트와 룽이가 경기도의 어느 곳으로 떠나기로 결정이 나고, 나는 새로운 집을 찾기 위해 온 서울을 뒤지기 시작했다. 혼자 사는 건 괜찮았지만, 가급적 2호선 라인이었으면 좋겠고 또 원룸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전까지 혼자 살던 집과 호적메이트와 함께 살던 집이 모두 신축이었기 때문에 사람이 살았던 집에 살고 싶었다. 온기가 있는 집. 새로운 집에서 나는 여느 화학물의 냄새가 아니라 정과 생활이 배어있는 집이 그리웠다. 그렇게 서울을 뒤지며 많은 집들을 봤다. 하지만 내 예산에 들어오고 조건이 맞는 집은 재개발 구역으로 선정되어 사람이 하나 둘 떠나고 있는 동네, 혹은 5평도 되지 않는 작은 원룸뿐이었다. 어떻게 할까 한참 고민이 많았었는데, 집 근처에 살고 있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의견 일치가 됐다. 자, 이게 돌쇠의 첫 등장이다.


 지금 ‘돌쇠’라고 칭하는 사람은 20살 때 만난 대학 친구의 후배로, 나보다 한 살 어리지만 오히려 나보다는 듬직한 구석이 있는 한 여성이다. 절대 나에게 ‘언니’라고 부르지 않으며 경상도 출신답게 나를 ’니‘ 혹은 MZ세대답게 ‘님’이라고 칭한다. 내가 벌레라도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면 ‘그까짓 거.’하는 느릿한 동작으로 일어나 ‘보지 마.’하고서 벌레를 잡는, 카리스마가 남다른 여성이다. 이 여성은 그때쯤 나와 비슷하게 재계약을 앞두고 있는 처지였다. 그리고 또 나와 비슷하게 2년이나 살았지만 그 동네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우리 두 사람은 그 동네에 함께 사는 동안 제주도로, 또 강원도로 여행을 다니며, 잠이 오지 않는 밤마다 서울 여기저기로 드라이브를 떠나며 집은 다르지만 동거와 다름없는 -가끔 나는 돌쇠 집으로 퇴근해 들이닥치기도 했다.-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의 새로운 집을 보러 다니는 동안 이 여성도 가끔 본인의 집을 찾으러 동행했다. 서울의 집 값이라는 벽에 둘이 함께 부딪히고 있었던 셈이었다. 그리하여 잠깐의 회동 끝에 (정확하진 않지만.. 30분 정도였을까?) 우리는 합가를 결정했다.


 그다음부터는 아예 새로운 길이 열렸다. 둘이 함께 살 집. 우리는 각 방이 필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낼 방도 하나 필요했다. 방 세 개에 거실이 있으면 더 좋고, 화장실도 하나 더 있으면 금상첨화고. 우리는 서울 지도를 들여다보며 어느 곳으로 떠날지 한참을 고민했는데 두 사람이 모두 마음에 들어 한 곳은 바로 마포구였다. 그렇게 살지도 않는 마포구로 수 없이 많은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정말 많은 집들을 보았다. 두 사람의 예산을 합치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확실하지도 않은, 약간은 애매한 예산이 (물론 대출까지 포함하여) 준비되었다. 대출 조건까지 포함해서 집을 알아보기 시작하니 제약이 많았지만, 어쨌든 사람이 둘이니 쏟을 인력과 시간이 충분했다. 처음으로 ‘이 집이다.’ 했던 집은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어른과 함께 집을 봐야 한다.‘는 우리 어머니의 조언에 숙모를 불러 하루 더 보고 계약서 쓰려던 것이 다른 사람이 먼저 계약서를 쓰고 말았다. 정말 눈물 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는데 (아마 지금 살고 있는 집의 1.5배 크기는 됐을 것이다.) 그래도 슬퍼만 하고 있기에는 이사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는 게 보였기에 털고 일어섰다. 지겹도록 집을 보느라 수많은 부동산에서 전화가 오고 또 우리가 걸고 문자가 오고 가고 하는 상태여서 어차피 다음 집을 보러 일어나야 했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다 어느 부동산에서 사진 몇 장이 날아왔다. ’이 집은 어떠세요?‘ 수많은 창문과 작열하는 채광, 방 3개, 거실, 부엌, 화장실 하나, 그리고 <중경삼림>을 연상케 하는 거실과 부엌을 잇는 타일 인테리어. 이미 지쳐있던 우리는 그 집을 볼까 말까 하다가 ’야, <중경삼림>에 나오는 집 같지 않아?‘ 하는 나의 말과 함께 오케이를 외쳤다. 그래, 어차피 힘든 거 집 하나 더 보고 힘들자! 하는 마음이었던 것도 같다.


 그렇게 우리는 일사천리로 <중경삼림> 하우스의 계약서를 작성하기까지 이르렀다. 이사 날짜가 정해지고 나니 또 다른 것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사 업체 선정, 기존 세입자와의 날짜 조정, 대출, 자금 유통, 그 외의 자질구레한 것들까지.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집을 빼야 하는 날이었다. 집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당장에 마음에 드는 집이 없어 기존 집의 주인과 협의 하에 집 빼는 날을 한 달을 미뤄뒀는데, 이 여성의 집주인은 그러한 사정을 봐줄 수가 없었다. 이미 새로운 세입자의 입주가 정해졌기 때문이었다. 다음 집까지 한 달이 벙 떠버린 이 상경한 여성은 오갈 데가 없었다. 본가로 내려가자니 일이 너무 커지고, 그렇다고 월세방을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도 마찬가지로 미뤄둔 날짜를 다시 당기자니 그새 새로운 세입자가 정해져 그럴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총체적 난국이었던 셈이다.


 그리하여 돌쇠는 마님의 집으로 들어왔다. 투룸이었던 기존의 집은 작은 방 하나와 큰 방 하나의 구조였는데, 큰 방을 내가 쓰고 있었기 때문에 돌쇠에게 작은 방을 내어주었다. 여기서 하나 알아야 할 것은 나나 돌쇠나 둘 다 맥시멀리스트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돌쇠의 집에서 온 짐은 작은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 말았다. 여기저기 쌓아 올려 짐으로 테트리스를 했는데도 말이다. 그녀는 거실에 요가 매트를 깔고 거기서 살았다. 그때쯤 그녀는 다리를 크게 다쳐 목발을 짚고 있었다. 바닥 생활이 여간 불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만 돌쇠는 불평불만하지 않고 요가매트를 지켰다. 그렇게 한 달을, 마님은 돌쇠에게 따뜻한 밥과 반찬을 내어주고 돌쇠는 마님이 요리한 부엌을 치우며 간이 동거 생활을 시작했다.


 한 달 후, 우리는 새 집에 입주했다. 이것이 돌쇠와 마님의 본격적인 동거 역사의 시작이다.

(왼) 검은 옷을 입은 돌쇠 (오) 이사를 끝마치고 신남을 주체할 수 없는 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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