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낯설지만 따뜻한 하루
1. 시간과 공간이 다른 하루
2023년 가을,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가 서서히 걷히고 일상이 회복되던 시기에 우리 가족은 오랜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에서 새로운 일상을 시작했다. 그곳은 영국 남동부에 자리한 '잉글랜드의 정원(Garden of England)'이라 불리는 켄트 주의 캔터베리였다. 약 5만 명이 거주하는 이 도시는 중앙에 위엄 있는 캔터베리 대성당을 품고 있으며, 서울 여의도 면적의 1.5배 정도였다.
캔터베리의 역사는 로마시대 전후로 변화가 컸다. 서기 43년 로마시대 이전에는 켈트계 칸티아키(Cantiaci) 부족이 이곳에 거주했다. 부족 이름에 '요새'를 뜻하는 '베리(bury)'가 결합되면서 '캔터베리(Canterbury)'라는 지명이 형성되었다. 그 이후 로마인들은 현재의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인 브리타니아를 정복하고, 런던과 도버를 잇는 와틀링 스트리트(Watling Street) 위에 있는 캔터베리를 상업과 교통의 중요한 거점으로 발전시켰다.
로마 시대의 흔적은 캔터베리 로마 박물관의 현관 바닥의 모자이크와 내부 유물에서, 그리고 길을 걷다 1956년 문을 연 초서 서점 근처 도로명 표지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웨스트게이트 가든에서 어린이 놀이터로 이어지는 길에는 이곳이 로마시대부터 이어져 온 거리임을 알리는 동판을 발견하기도 했다.
캔터베리는 중세 문학의 거장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1343~1400)의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의 배경지로도 유명했다. 캔터베리 거리 곳곳에서는 초서나 베켓의 이름이 붙은 상점들을 마주칠 수 있으며, 검은 목재 골조와 흰 벽, 돌출된 창문이 어우러진 튜더 왕조(1485~1603) 양식 건물들이 도시 전체에 예스러운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이곳의 풍경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가 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1380년 돌로 만들어진 웨스트게이트에서 초서 동상을 지나는 캔터베리 중심 거리 하이스트리트(High Street) 끝자락에는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인물인 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e, 1564~1593)가 세례 받았다는 교회의 시계탑으로 이어졌다.
하이스트리트를 찬찬히 둘러보며 길을 걷다 보면, 고대 로마의 흔적부터 중세의 번영까지 켜켜이 쌓인 시간들이 다가왔다. 그리고, 시민전쟁과 두 차례 세계 대전의 상흔까지 담은 이 도시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교회의 시계탑만 보더라도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교회의 일부분이었다. 수녀, 기사, 상인, 요리사 등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순례길에 올라 이야기를 나누었듯, 우리 가족도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이 길 위에 서게 되었다. 이곳 캔터베리에서,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기록해 나간다.
2. 마리아의 뜰에서 열린 아침
우리 집은 럭비공을 닮은 캔터베리 도심의 왼쪽 끝자락, 지도를 붕어빵에 비유하자면 물고기의 눈의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성 마일드레드 교회(St. Mildred's Church)가 우뚝 서 있었다.
우리 가족이 터를 잡은 건물은 'ㄱ'자 형태로 총 7 가구가 살 수 있는 건물이었다. 건물 앞에는 공터와 주차장이 있었고, 각 가구마다 건물의 앞과 뒤에 작은 정원이 딸려 있었다. 교회와 어울리게도 이곳의 주소는 '메리의 코트(Mary's Court)', 즉 '마리아의 뜰'이었다. 그중에서도 우리 집은 'ㄱ'자 구조의 안쪽 모서리, 'ㅣ' 부분에 해당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햇살에 반짝이는 집 외관은 마치 그림엽서 속 풍경처럼 아름다웠다. 막다른 골목 안쪽에 자리한 현관문을 열자마자 1층과 2층으로 시원하게 뚫린 계단이 눈앞에 펼쳐졌다. 현관문 옆으로 들어서 1층 문을 열자 넓은 거실이 한눈에 들어왔고, 거실 오른편으로 부엌으로 이어졌다. 주방 밖으로는 커다란 로즈메리 화분이 자리를 차지한 채 기다란 정원이 이어졌고, 그 너머로는 성 마일드레드 교회의 정원이 그림처럼 마주 보였다. 정원 한쪽 끝에는 지역사회 자선단체의 텃밭으로 연결되는 문이 있었는데, 왕래가 없음을 보여주듯 덩굴식물로 감싸여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오른쪽에는 하얀 붙박이장이 있는 침실이, 왼쪽에는 나무바닥에 검붉은 문양을 한 카펫이 깔린 거실이 있었는데, 특히 거실 창문 너머로는 교회 정원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따스한 햇살이 오후 늦게까지 들어오는 이곳이 마음에 들었는지 자기 방이라고 하며 레고를 만들기도 하고 곧잘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두 사람이 오갈 수 있는 좁은 복도를 따라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화장실과 작은방 하나가 나란히 마주 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는 보일러실이 놓여 있었다.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했던 장소는 1층 거실의 식탁 자리였다. 음식을 먹을 때는 식탁이었고, 공부를 할 때면 책상이 되어주었다. 이 곳에 앉아 오래된 교회의 정원이 시원하게 펼쳐진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창문틀은 마치 살아있는 액자처럼 매일매일 다른 그림을 우리 앞에 펼쳐 보여주었다. 교회와 세월을 함께 나눈 듯한 커다란 다섯 그루의 나무가 정원을 에워싸며 계절을 알렸다. 특히 여름날의 싱그러운 초록빛 풍경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잔디밭에서는 다람쥐들이 뛰놀았고, 나뭇잎은 살랑이는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렸다. 한 번은 부엌문을 통해 다람쥐가 집에 들어오기도 했다. 우리를 보고 무서웠는지 온 몸의 털을 치켜세웠다. 꼬리털을 더욱 치켜세웠던 다람쥐에 우리 가족이 더 놀라기도 했다. 여름날 교회 잔디를 깎는 날이면 신선한 풀냄새가 창문 너머 집 안 가득 퍼져 들어왔다.
집주인은 이 집이 과거 성 마일드레드 교회의 기숙사나 교육시설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역사적 건축물로 지정되어 창문 하나를 수리할 때조차 시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러블리(Lovely)'와 '노 워리스(No worries)'라는 말을 습관처럼 곁들이며, 불편함보다는 이 집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부심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집주인은 이 집의 이전 세입자가 뉴질랜드 출신의 하키 금메달리스트였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이 집에 머무는 동안 우리 가족에게도 좋은 기운이 함께하리라 기대가 되었다.
11세기 중반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성 마일드레드 교회는 캔터베리에서도 드물게 앵글로색슨 시대의 건축 양식을 간직한 유서 깊은 교회였다. 우리가 살던 집 역시 중세 건축 양식이 가미된 견고한 석조 건물이었다. 작고 깊은 창문, 낮은 천장, 그리고 거칠게 쌓인 돌벽이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때로는 우리를 과거의 시간 속으로 데려다주는 신비로운 느낌마저 불러일으켰다. 캔터베리는《유토피아》의 저자로 알려진 토마스 무어(1478~1535)와도 연관이 있었다. 그의 딸 마가렛이 살았던 로퍼 가문의 지하 묘지가 있는 던스턴 교회(St. Dunstan Church) 역시 비슷한 양식으로 지어졌다.
집 구하기
이 집을 처음부터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며칠간 공유 숙소와 호텔을 오가며 9시간 시차에 적응해야 했고, 동시에 캔터베리의 지리를 익혀야 했다.
무엇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걸어 다닐 수 있는 위치를 최우선 조건으로 삼았다. 만 5세가 된 아이는 영국 기준으로 곧바로 초등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학년에 입학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잔디 정원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과 주차장도 따로 갖추었으면 하는 소망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우리는 주플라(Zoopla), 라이트무브(Rightmove) 같은 부동산 앱을 샅샅이 뒤져 매물을 찾아봤다. 직접 발품을 팔아 'To Let'(임대 중)이라는 간판이 붙은 집을 찾고 해당 부동산에 방문하기도 했다. 그렇게 집 내부를 꼼꼼히 둘러보고, 계약 기간과 월세 조건 등을 조율하며 집주인과 직접 소통한 끝에야 비로소 우리 가족의 거처가 정해질 수 있었다.
여러 집을 알아보며 영국의 집 구조를 엿볼 수 있었다. 대부분 복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1층에는 거실, 주방, 화장실이 자리하고 2층에는 침실, 서재와 같은 개인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소도시이다 보니 우리나라 아파트와 비슷한 ‘플랫’(flat)보다는 집들이 연결된 ‘테라스 하우스(terraced House)'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정원이 있는 집과 없는 집으로 나뉘었고, 별도의 주차장이 없는 집들은 시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3. 서점에서 만난 첫 친구, 책
캔터베리 대성당을 품은 역사도시이자 《캔터베리 이야기》의 문학 도시인 이곳에서, 우리 가족은 낯선 환경에 하루라도 일찍, 그리고 자연스럽게 적응하길 바랐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졌다. 자동차의 운전석은 우리가 익숙한 쪽과 반대편에 있었고, 차들은 왼쪽 차선으로 달렸다. 신호등 대신 회전교차로를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버스 전용도로는 자전거가 다니는 전용도로이기도 했다. 도로에서는 왼쪽으로 주행해야 하고, 회전교차로에서는 오른쪽에서 진입하는 차가 먼저라고 계속 되새겼다. 안전과 직결되는 것이므로 무의식적으로 익숙한 습관이 나오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는 '리프트(Lift)'라고 불렸으며, '1'이 아닌 'G(그라운드)'를 기준으로 한 버튼 체계에 익숙해져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2층은 이곳에서는 1층이었다.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던 2층 버스, 일명 더블데커 버스(Double-decker bus)는 아이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아이는 늘 2층 맨 앞자리에 앉기를 좋아했는데, "2층 버스 맨 앞자리에 앉는 게 제일 좋아! 밖이 훤히 보여서 정말 신나!"라며 환하게 웃곤 했다. 버스 노선도에는 'Center'가 아닌 'Centre'가 쓰여 있었다. 버스 전용도로는 자전거가 함께 달릴 수 있었다.
키패드식 번호 입력에 익숙했던 우리에게는 매번 챙겨 나가야 하는 집 열쇠도 어색했다. 거리의 커피숍이나 상점은 저녁 6시 무렵이면 문을 닫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한 인종과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경험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에 와 있음을 직감하게 했다.
새로운 나라에서의 삶은 시각적이고 물리적인 환경의 변화에 그치지 않았다. 언어와 문화, 교육 방식은 물론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관까지 다시 받아들이고 익혀야 하는 과정이었다. 우리 가족은 이곳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를 간절히 바랐다.
절대적이고 물리적인 시간이 먼저 확보되어야 한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 첫걸음은 캔터베리 시내의 한 서점에서 시작되었다. '1만 시간'은 417일, 즉 1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다. 우리가 마주한 장벽 또한, 그 정도의 시간과 인내가 필요할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런 마음으로 다시 바라본 서점의 이름은 '워터스톤즈(Waterstones)'였다. 머지않아 이곳이 영국 전역에 분포한 유명한 서점 체인이며, 창립자인 팀 워터스톤(Tim Waterstone)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Water(물)'와 'Stone(돌)'이라는 단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떠오른 것은 두 개의 속담이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와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처럼 시간을 견뎌내는 힘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생각이자 자세라고 느꼈다. 서점의 이름은 그렇게 우리 가족의 현재 상황과 기막히게 겹쳐지며, 마치 속삭이듯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듯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날들이었기에, 눈에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이 그 존재 이상의 의미로 가슴 깊이 다가왔다.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서점 문을 열고, 부드러운 조명이 비추는 책장 사이를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어린이 책 코너로 향했다. 아이 눈높이에 맞춘 낮은 책장과 귀여운 흔들 목마, 상상력을 자극하는 색칠 공간, 그리고 작은 어항 속 물고기들이 어우러진 이곳은 책과 '함께 노는 공간'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아이는 이 서점을 마치 자신만의 아지트처럼 여겼다. 보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펼쳐보고, 책을 사지 않아도 몇 시간이고 머물며 서점, 책, 그리고 영어에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이 서점은 우리 가족에게 캔터베리를 조금 더 가까운 도시로 느끼게 해 준 더없이 고마운 장소였다. 갈 때마다 그날의 기분이나 눈에 띄는 표지에 이끌려 스스로 책을 고르는 즐거움을 배웠고, 학교에서 배우는 주제나 여행지와 관련된 책을 찾으며 관심을 자연스럽게 확장해 나갔다. 어느새 서점에 가고 책을 읽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보통의 일상이 되었다.
4. 도서관에서 자라는 아이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들어온 또 하나의 공간은 제프리 초서 동상 옆에 자리한 캔터베리 도서관이었다. 이 건물의 정식 명칭은 'The Beaney House of Art & Knowledge'인데, 캔터베리 출신 외과의사이자 도서관과 박물관의 후원자였던 제임스 조지 비니(James George Beaney, 1828~1891)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 배경을 반영하듯, 도서관 정문 위에는 'Royal Museum & Free Library 1858'이라는 문구가 적힌 나무 팻말이 걸려 있었다. 전통적인 석조 외관은 다소 엄숙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책과 사람이 어우러진 따뜻하고 활기찬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2023년 가을 어느 토요일, 아이는 이곳 어린이책 코너에서 열리는 이야기 시간에 참석했다. 그날 아이는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서점에서는 말없이 그림책을 열어볼 수 있었지만, 도서관에서는 선생님과 눈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날 선생님은 《페파 피그(Peppa Pig)》, 《블루이(Bluey)》처럼 익숙하고 사랑받는 캐릭터 그림책 세 권을 가지고 와서, 또박또박 운율을 살려 읽어 주셨다. 1권에 10분씩 모두 30분 동안 이루어졌다. 아이는 마치 어린이집에서 전래동화를 들려주던 '이야기 할머니'를 떠올린 듯 긴장을 풀고 점차 이야기에 집중했다. 이야기를 따라가며 작은 입꼬리를 올리고 함박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 시기의 아이는 아직 알파벳만 익힌 수준이었으니, 영어보다는 책 속의 그림과 선생님의 목소리에 더 크게 반응했을 것이다. 그날을 시작으로 아이는 매주 토요일 오후 3시에 열리는 이야기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고, 도서관으로 달려가곤 했다.
켄트 도서관 카드를 발급받은 뒤, 우리는 매주 토트백 가득 새로운 그림책들을 빌려왔다. 어떤 책을 고를지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얇은 그림책을 부담 없이 여러 권 대여할 수 있었다. 1회에 최대 30권까지 대출이 가능했기 때문에,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스스로 고르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캔터베리 도서관은 관광 안내소와 전시 공간의 역할을 겸하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이곳은 도시의 역사, 예술, 문학적 유산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토마스 베켓의 순교와 순례 여정을 다루는 자료뿐 아니라, 지역 출신 작가들이 창조한 영국 아동 만화 캐릭터인 곰 루퍼트(Rupert)와 고양이 백퍼스(Bagpuss)를 소개하는 전시도 마련되어 있다. 빨간색 상의에 노란색 체크무늬 바지, 노란 스카프를 두른 루퍼트는 메리 투어텔(Mary Tourtel, 1874~1948)이 1920년 《데일리 익스프레스》 신문에 연재를 시작하며 탄생시킨 캐릭터다. 분홍색의 헝겊 인형 고양이 백퍼스는 피터 퍼민(Peter Firmin, 1928~2018)과 올리버 포스트게이트(Oliver Postgate, 1925~2008)가 함께 제작한 1974년 BBC 어린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이었다.
2025년 2월, 도서관 앞에는 캔터베리 출신의 저명한 여성 작가 아프라 벤(Aphra Behn, 1640~1689)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다. 영국 조각가 크리스틴 찰스워스(Christine Charlesworth, 1949년생)의 작품으로 이 동상은 17세 무렵의 아프라 벤을 묘사한 것으로, 오른손에는 그녀의 대표작 《오루노코(Oroonoko)》를 들고 있다. 아프라 벤의 허리춤에는 잉크병과 깃털 펜이 매달려 있고, 왼손으로는 연극을 상징하는 가면을 등 뒤로 숨기고 있다. 이러한 소품들은 그녀가 극작가이자 찰스 2세 시절 벨기에 앤트워프로 파견되어 스파이로 활동했던 삶을 반영한다. 《오루노코》는 식민지 기아나에서 노예로 잡혀 온 아프리카 왕자의 비극적인 삶과 반란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노예제도의 폐단을 역사 소설 형식으로 최초로 기록한 영문학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2024년에는 그녀의 1688년판 《오루노코》 희귀 초판본이 이곳에 특별 전시에 전시되기도 했다.
5. 문화가 일상이 되는 공간, 영화관과 공연장
캔터베리에서의 영화관 경험은 또 하나의 기쁨이 되었다. 이곳에는 커즌(Curzon)에서 운영하는 영화관이 웨스트게이트(Westgate), 리버사이드(Riverside) 두 곳의 지점이 있었다. 주말 어린이 영화는 성인과 아이 모두 5파운드에 관람할 수 있어 큰 부담 없이 찾을 수 있었고, 매주 수요일에도 할인 행사가 진행되었다.
주말 아침, 킥보드를 타고 웨스트게이트 공원을 지나 강을 따라가면 리버사이드 영화관에 도착했다. 각 상영관 이름은 초서(Chaucer), 기사(Knight), 수사(Friar), 상인(Merchant) 등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 등장하는 순례자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덕분에 영화를 볼 때마다 영화의 순례자가 되어 떠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웨스트게이트 영화관은 도심에 자리한 아담한 상영관으로, 이곳에서는 피아노 연주를 직접 감상하고 캔터베리 버전의 보드게임 모노폴리(Monopoly)도 즐길 수 있었다. 1935년 처음 출시된 모노폴리는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보드게임 중 하나로, 다양한 지역의 이름과 특색을 반영한 수많은 특별판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캔터베리 에디션을 직접 마주하니 더욱 반가웠다. 익숙한 건물 사고팔기 방식은 우리가 흔히 즐기던 부루마불과도 닮아 있어, 이국적인 공간 속에서 뜻밖의 친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 아이와 함께 《토이 스토리 4 (Toy Story 4)》를 관람했는데, 이것이 아이의 첫 영국 영화관 경험이었다. 이후 영화관은 서점이나 도서관과 함께 아이가 영어를 자연스럽게 접하고 새로운 이야기와 문화를 탐험하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국내 CGV나 메가박스 같은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비교해 보면, 이곳 영화관은 몇 가지 차이점이 있었다. 영화 시작 전 광고 시간이 더 길어서 실제 영화는 대체로 약 20분 늦게 시작되었다. 반가운 우리나라 KIA 자동차 광고 영상이 마지막으로 흘러나온 후 곧 영화가 시작되었다.
팝콘, 젤리나 음료 외에도 피자나 샌드위치를 주문할 수 있었고, 직원이 음식을 직접 만들어 객석까지 가져다주었다. 한국에서 팝콘이나 음료를 먹으며 조용히 영화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이곳에서는 좀 더 자유롭고 캐주얼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반려견과 함께 영화를 보는 프로그램도 있었고, 선선한 여름날에는 야외 영화관도 운영하기도 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극작가이자 캔터베리에서 태어난 크리스토퍼 말로의 이름이 붙은 말로 공연장(Marlowe Theatre)에서는 지역 순회 뮤지컬이 연중 이어졌다. 우리 가족은 그중 《슈렉(Shrek)》, 《101마리 달마티안(101 Dalmatians)》, 《블루이(Bluey)》와 같은 가족 뮤지컬을 관람했다. 아이의 학교는 이 공연장과 5분 거리에 있어, 전교생이 연말 공연을 보러 이곳을 찾았다. 그렇게 아이는 친구들과 첫 해에는 《알라딘(Aladdin)》, 두 번째 해에는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 크리스마스 공연을 관람했다.
또한, 아르메니아계 사업가이자 자선가로 예술과 교육을 지원한 칼루스트 굴벤키안(Calouste Gulbenkian, 1869~1955) 재단의 후원으로 켄트대학교(University of Kent) 교정 내에 위치한 굴벤키안 공연장(Gulbenkian Arts Centre)에도 방문했다. 우리는 주말 가족 공연으로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 비발디(1678~1741)의 사계를 연극으로 표현한 《사계절(Four Seasons)》, 전구와 빛을 주제로 한 과학 공연, 그리고 《꼬마 괴물 그루팔로(The Gruffalo’s Child)》, 《더 리틀리스트 야크(The Littlest Yak)》 뮤지컬을 관람하며 문화생활을 즐겼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처럼, 서점과 도서관, 그리고 영화관과 공연장 같은 문화 공간이 풍부한 캔터베리 도심을 거주지로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이곳에서 아이는 책을 통해, 그리고 다양한 영화와 공연을 통해 더 큰 세상을 배우고 성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