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3년 여를 보내고 다들 ‘관계’에 목말라 있을 즈음 대면 모임을 재개했다. 일상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아서인지 모임에 적극적이다. 격월로 모임을 하고 있다. 만나면 좋은 이들은 수다삼매경에 빠져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느라 다소 시끄럽다. 때문에 총무는 모임을 주선할 때면 한적한 위치, 별도의 룸이 있는 곳을 찾아야 하는 섬세함을 발휘해야 한다. 피해 주지 않고 방해받지 않을 만한, 낯섦이 주는 최적의 장소를 찾기란 늘 피곤한 일이지만 그들의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보답받는다고 위안을 삼는다.
모임의 구성원은 총 11명이다. 전원 여성이다. 2009년에 시작했고 15년의 세월을 지나고 있다. 같은 직종이고 장기교육 출신들이라서 선후배 간 유대감이 좋다. 지나온 세월만큼 하나 둘 퇴직을 했고 남은 이는 한 사람이다. 그마저도 1년여 공로연수를 앞두고 있다.
전원 현직에 있을 때는 거의 100% 참석이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하니 다른 일이 생기더라도 조율이 가능했다.
그런데 퇴직 이후에 사정이 달라졌다.
‘첫 번째 화요일이 가능해요’
‘두 번째 화요일은 모임이 있어요’
‘네 번째 목요일이 좋아요’,
‘아, 그날은 다른 모임과 겹쳐서요’
모임 일자를 정하기가 곤란하다. 각양각색 11명의 일정을 모두 고려해서 하나의 날짜를 잡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다들 분주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증거다. 때문에 매번 한두 명은 불가피하게 참석하지 못하곤 한다. 행정복지센터나 평생학습원에 등록하여 배움의 즐거움에 탐닉하거나, 스마트 매니저 혹은 액티브 매니저로 활동하거나, 다른 동호회 모임이 있거나, 손주들을 봐주거나, 여행 중이거나, 바빠도 너무 바쁘시다. 행복해 보여서 좋다. 단톡방에 저마다 가능한 일자를 올린다. 다들 쏟아내기에 바쁘지만 정작 정리는 회장이나 총무의 몫으로 남겨진다. 메모하면서 정리해 보지만 공통분모를 찾기는 역시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배님들이 퇴직 이후에도 이렇듯 바쁘게 살고 있으니 내 미래도 그리 비관적이지 않을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의 빛을 본다. 어떤 모임이든 100퍼센트 참석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정관대로 하되 필요한 경우에는 가변적으로 재논의하여 결정하기로 했다.
얼마 전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해 아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선배들의 삶을 들여다보세요. 퇴직 후 1년이 되신 분, 3년이 되신 분, 5년이 되신 분, 그 이상이 되신 분들의 삶을 보면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지실 거예요’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그래서 이 모임이 좋다. 여기에는 내가 들여다볼 수 있는 선배들의 삶이 골고루 다양한 모습으로 담겨있어서다. 60세를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고 활기 있는 삶으로 꾸며 나가기에 좋은 본보기가 된다. 특히 스마트 돌봄 매니저로 활동하고 계시는 선배에게 눈길이 간다. 생기 있고 활력 있어 보인다. 스마트 돌봄 매니저는 IT교육을 위한 시니어정보통신기술 전문가다. ICT기술을 활용하여 대면 또는 비대면으로 노인인지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노인복지관, 치매안심센터, 요양원, 경로당 등의 시설 및 독거노인 가정을 대상으로 한다. 고령화사회에 부응하는 사업이며 매력적인 활동이라 여겨진다. 선배들의 모습으로 보고 배우며 퇴직 후 나의 미래 또한 지금보다는 더욱 다채로운 빛깔로 채색될 거라는 기대감을 품어 볼 수 있다.
‘백 년을 살아보니’의 저자 김형석 교수는 60세에서 75세까지를 가장 행복했고 좋았던 시기라고 기억한다. 모든 면에서 성숙하고 자신을 믿을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65세부터 90세 까지를 열매 맺는 시기라고 보았다. 미래를 준비하는 일은 두려우면서도 설레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다.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이라고 여겨서다. 약 15년 남짓 봉사활동을 이어온 노인요양원이 있다. 내친김에 전화를 걸어본다. 오는 3월 20일부터는 버스나 지하철 등에서도 마스크착용 의무가 해제되는 만큼 어느 정도 일상이 회복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도 외부 자원봉사자를 받고 있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최근 요양시설에서 코로나 확진 환자가 발생한 탓에 외부 봉사자 활동재개에 제동이 걸렸다고 설명한다. 고위험군 시설에선 여전히 코로나 여파가 지속되고 있다. 상황이 나아지면 월 1회 봉사할 의향이 있으니 연락을 달라고 했다.
일을 매듭짓고 나서 문득 창밖을 내다보니 산수유꽃이 만개하여 노란빛과 봄향기를 뽐내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꽃을 간지럽히는 바람결이 느껴지는 걸 보니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덕분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