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연세가 어느덧 80 중반을 넘었다. 지인으로부터 자신의 어머니가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 같다며 병원으로 모시고 가 치매 검사 후 뇌 영양제를 처방받아 복용하시도록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그렇게 해드리지 못한 것이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해야 할 일의 목록에 올려놓고서도 한 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자꾸 미루기만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휴가를 냈다. 어머니를 모시고 피부과에 다녀서 진료를 받고 약국에 들러 처방 약을 구입했다. 그리고 선배가 일하는 병원으로 갔는데 선배가 비번이어서 순간 당혹스러웠지만 그래도 어머니를 모시고 나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어서 온 김에 상담받기로 했다. 내 보기에 정신이 맑으신 분이어서 정밀검사는 불필요해 보였다. 원장과 상담을 하고 건강검진센터로 가서 간단한 테스트를 받았다. 양면으로 5~6면 분량의 조사지를 기반으로 실장과의 일대일 검사가 진행되었다. 오늘이 몇 월 며칠인가? 무슨 요일인가? 어느 계절인가? 행정구역상으로 무슨 시인가? 3개의 단어를 알려주고는 따라서 말하도록 한 뒤 기억해 두라고 한다. 잠시 후에 물어보겠단다. 그리고 뺄셈을 5번 정도 하면서 답을 말하라고 했다. 오각형 두 개가 일부 겹친 그림을 보여주면서 그대로 따라 그리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일상생활을 누구의 도움없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지를 묻는 항목 몇 가지도 있었다. 어머니는 세 개의 단어를 기억해내지 못하셨다. 마지막으로 오늘 느꼈던 감정을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해 보란다. 필체가 좋으신 어머니는 망설임 없이 써 내려가신다. 무슨 말을 쓰실지 궁금해서 어깨너머로 들여다보니 ‘딸이 잘 챙겨줘서 너무 고맙네.’라는 문장이 보인다. 먹먹하고 콧등이 시큰했다. 자꾸만 약해지는 어머니시다. 허리가 굽고 다리가 아프니 나라도 어머니의 발이 되어드려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임했을 뿐인데 어머니는 그것을 매우 감사해했다. 외딸인 내게 의지를 많이 하신다. ‘너를 낳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니?’ , 오늘 이렇게 적어내려 간 문장을 내일은 기억하실까?
치매 검사 및 인지능력 테스트를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맑은 어머니가 고맙고, 이제라도 검사를 받게 하니 미루어놓았던 숙제를 한 것처럼 편안해지기도 했다. 단어 기억하기와 뺄셈은 나라도 제대로 답변을 못했을 것 같다. 평소 셈이 밝으신 분이었기에 뺄셈 문제는 잘 맞추리라 기대했는데 예상외로 틀린 답을 말씀하실 때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뇌 기능 개선제라고 알려진 글리아티민연질캡슐 1개월 치를 처방받았다. 콜린 알포세레이트 성분의 의약품이다. 기억력 저하, 착란 등으로 인한 방향감각 장애, 집중력 감소 등을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는 말이 있듯이 뇌 개선 영양제의 효능을 믿어보기로 한다. 초등수학문제집을 사다드려야겠다. 영양제 복용과 더불어 뇌를 훈련시키는 단순 반복적인 학습이 필요해보인다. 덧셈뺄셈을 반복하고 일기를 꾸준히 적도록 틈틈이 검사도 해야겠다.
어머니는 공연히 쓸데없는 돈을 많이 썼다며 걱정하셨지만 그건 어머니의 기우일 뿐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백합 칼국수를 먹기 위해 단골 음식점으로 갔다. 백합 조개의 시원한 맛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입구 가까이 늘 같은 자리에 앉으신다. 특히 국물맛이 밴 감자를 좋아하시는데 사장님이 특별히 감자를 더 챙겨주셨다. 사장님도 어머님이 생각나서였을까? 맛있게 식사를 하고 나서도 남은 오후의 몇 시간이나마 더 같이 있고 싶어 하시는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어머니 집 앞에서 냉정하게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다.
어머니는 딸이 잘 챙겨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씀하시는데 단지 표현만 하지 않았을 뿐 짜증도 내고 속상해했던 순간들이 떠올라서 죄송스러웠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이라면 밝은 표정으로 기쁜 마음으로 해야겠다. 오늘도 나의 마음은 한 뼘쯤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