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자칼럼

좋은생각 11월호

단디 해라

by 달빛바람

제 에세이가 좋은생각 11월호에 실렸습니다.

사은품도 받았어요~~❤️

“단디 해라.” 엄마는 늘 내게 말했다. 짧고 단단한 그 말에는 나를 지켜 주려는 마음,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 주려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 나는 낯가림이 심하고 내성적인 데다 고집까지 센 아이였기에 속마음을 꺼낼 때마다 “근디…”를 붙이며 망설이곤 했다. 그런 내게 엄마는 언제나 단호하면서도 따뜻하게 삶의 버팀목이 되는 한마디를 건넸다.


할아버지 제사를 앞둔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시장을 돌며 음식을 한가득 샀다. 두 손은 이미 묵직했다. 택시를 잡기 위해 길가에 서 있는데 엄마가 호주머니를 뒤지다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엄마나, 이 할매가 거스름돈을 잘못 줬네.”


엄마는 내 눈을 똑바로 보더니 다짐하듯 말했다.


“니 이거 아까 나물 팔던 할매한테 단디 갖다 주고 온나.”


나는 한참이나 머뭇거리다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근디… 근디… 요기서 마이 먼데, 이 짐은 우짜고…”


엄마는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마치 세상의 이치가 모두 그 안에 담긴 듯 말했다.


“안 멀다. 뛰가면 금방이다. 짐은 요 딱 놓고 후딱 뛰갔다 온나. 알제, 그 나물 팔던 할매!”

그 돈은 5000원쯤 됐을까. 엄마는 시장에서 단돈 500원도 깎지 않는 사람이었다. “감사합니다. 마이 파소.” 하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이 엄마의 습관이었다. 그 태도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닌 세상을 대하는 철학임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엄마의 ‘단디’는 위기 속에서 더욱 빛났다. IMF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2000년, 아버지가 어렵게 문을 연 차량 정비소가 위태로워졌다. 직원들이 떠나고 아버지는 대낮부터 술에 의지했다. 차를 수리하러 온 손님이 술병을 기울이는 아버지를 보고 고개 저으며 돌아서던 모습, 그런 장면을 목격할 때마다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엄마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모은 돈으로 정비소 옆에 작은 식당을 차렸다.

달랑 테이블 두 개뿐인 공간이었지만 엄마의 손맛과 마음 씀씀이 덕분에 손님이 점점 늘었다. 엄마는 늘 따뜻한 웃음을 띠며 손님들에게 말했다.


“단디 드이소. 배가 든든해야 일도 하지요.”

그런 엄마가 처음으로 주저앉은 순간은 암 진단을 받고 나서였다. 췌장암 2기. 수술만 잘 되면 금세 털고 일어나리라 믿었다. 하지만 병은 생각보다 빠르고 잔인하게 엄마를 삼켰다.

1년의 투병 끝에 엄마는 우리 곁을 떠났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지금도 믿기 힘들다. 시장에서 거스름돈을 되돌려주려던 목소리, 식당에서 손님에게 건네던 웃음 그리고 내 귀에 맴도는 마지막 당부.
엄마는 여전히 내 귀에 속삭인다. 큰일을 앞두고 마음이 조금씩 흔들릴 때, 세상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질 때, 내 안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짧고 단단한 목소리.


“단디 해라.”

이 말은 단순한 훈계가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자 그리움으로 이어진 사랑의 언어다. 매번 그 한마디에 눈물이 차오르지만, 또한 그 덕분에 무너지지 않고 오늘을 살아간다.


세상의 암흑이 클지라도 우리는 각자의 빛을 찾아야 한다. -스탠리 큐브릭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독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