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블리, 스틸 Lovely, Still
개요 드라마 미국 90분
개봉 2010.12.23
감독 니콜라스 패클러 Nicholas Fackler
1. 오프닝 Opening
크리스마스 장식과 귀여운 조명들이 장식된 동화 같은 마을. 왠지 크리스마스 시즌을 노린 디즈니 가족 애니메이션이 연상된다. 카메라는 어느 집 내부로 들어간다. 거실 한 켠에는 벽난로가 따뜻하게 타오르고 그 옆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전구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한 백발의 노신사가 안경을 쓰고 정성스레 선물을 포장하고는 소중히 트리 아래에 놓아둔다. 손녀와 손자들이 놀러라도 오는 것일까? (나중에 이 선물은 비극적 결말을 알려주는 트리거가 된다.)
2. 로버트와 메리 Robert & Mary
그의 이름은 로버트. 그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한 대형마트의 점원으로 일한다. 손자뻘도 안되어 보이는 사장은 그를 쫓아낼 심산인지 새로운 직원을 뽑는 중이다. 퇴근길, 그의 집 현관문은 열려 있고 차는 차고에 박혀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는 로버트. 누군가 그의 집에 몰래 침입했다. 긴장하는 로버트. 침입자는 앞집 사는 할머니 메리이다. 그녀는 이웃집에 사고가 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 들어와 봤던 것이다. 둘은 미소로 통성명을 나눈다. 그는 어쩐지 그녀의 미소에 반한 것도 같다. 메리의 용기 있는 제안으로 둘은 데이트를 시작하고 그 둘 뒤로 로맨틱한 캐럴이 흐른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하는 노년의 로맨스물인 걸까?
3. 비밀과 환상
어릴 때 그림 형제를 좋아했다는 메리.
"동화 속 이야기처럼 살고 싶었어요.
사랑하는 이를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메리는 남편을 잃은 걸까? 둘의 데이트는 마치 10대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순수하고 귀엽게 흘러간다. 남자아이는 큰 키에 어울리지 않게 서툴고 여자아이는 수줍은 듯 사랑스러운 미소로 남자아이를 이끈다. 남자아이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주도권을 쥐여주며 살며시 다음 스텝을 유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로버트는 매일 아침 이 꿈이 깨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일어난다.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로버트가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을 보고 양치하고, 면도하고 달력에 X자 표시하는 아침 루틴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동일한 행위이지만 그의 일상은 메리를 만남으로 인해 드디어 불이 켜진 크리스마스 알전구 마냥 반짝인다. 그의 인생에 드디어 화창한 햇살이 비추는 걸까? 하지만 아직 12월, 날은 춥고 길은 미끄럽다.
이 영화는 어떤 면에서 짐 캐리 Jim Carrey 주연의 1998년 작(作) 영화인 트루먼 쇼(The Truman Show)를 닮았다. 남자 주인공을 빼고 모두 어떤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일상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어딘가 수상하다고 느낀 트루먼은 모든 것이 ‘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첫사랑 ‘실비아’를 찾아 피지 섬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극 중 로버트는 지난 일주일간의 시간이 모두 자신의 환상이며 메리가 사라질까 봐 전전긍긍한다. 그 둘을 둘러싼 분위기 또한 매우 흡사하다. 딱 맞춘 듯한 조명과 음악. 주인공이 곤란에 빠지면 때마침 찾아오는 주변 인물. 모든 것이 완벽한 행복한 순간.
크리스마스이브, 로버트와 메리는 눈 내리는 풍경 아래 춤을 춘다. 달빛은 아름답게 그들을 비추고 눈발은 아름답게 날린다. 이 인공적인 아름다움, 과잉된 이미지는 어쩐지 비현실적이라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감을 일으킨다. 마치 너무 투명한 가짜 얼음처럼. 예쁜 플라스틱 얼음은 영원히 녹지 않지만 제때 사용할 수 없는 눈요기일 뿐이다.
4. 그는 괜찮지 않다 He is not Okay.
로버트. 그의 첫 대사는 ‘오케이’였다. 그렇게 그는 늘 아침을 씩씩하게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상태는 괜찮지 않다. 그는 점점 실수가 잦아지고 사람들은 그를 알지만, 그는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사랑하는 손녀조차도. 그는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었다.
그는 메리에게 떠나지 말라고 어린아이처럼 울먹이지만 메리는 그에게 “날 떠난 건 당신이잖아.”라고 말한다. 여기서 질문을 해야 한다. 이 영화의 판타지는 무엇에 복무하는가? 차갑고 비극적인 현실을 잊기 위해 혹은 이제야 뒤늦게 만난 노년의 사랑을 더욱 아름답게 포장하기 위해? 트루먼 쇼의 판타지가 거대 미디어의 장치 안에 갇힌 주인공이 사랑과 자아를 되찾기 위해 기능한다면 이 영화의 판타지는 어긋나고 균열된 주인공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존재한다고 오해할 수 있다. 허나 그렇지 않다. 이 영화의 판타지는 그저 기억의 상실 아래 놓인 모래성처럼 존재한다. 결국 거짓의 모래성은 과거의 기억이라는 거대한 해일 앞에 맥없이 무너질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환상이 아름다울수록 그가 잃어버린 과거가 소중히 튀어 오른다.
다시 말해 이 영화의 판타지는 현실과 과거 기억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마치 주인공의 거짓말이 반복될수록 벗겨지는 진실처럼.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고 소중히 대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현실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달콤한 환상 아래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는 있지만 그것은 곧 허방에 발을 디뎌 떨어질 운명의 스텝과도 같다. 결국 과거의 기억은 해일처럼 우리를 덮쳐 올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머릿속에 ‘기억’됨으로써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불편한 것이 아니라 가족을 잃고 사랑을 잃고 살아갈 의지와 의미를 잃는 것이다. 그래서 로버트는 첫 장면에 자기 자신에게 선물할 ‘총’을 아름답게 포장하였던 것이다.
이제 연기는 모두 끝났고 환상은 사라졌다. 그는 병상에 누워 있다.
5. 판타지와 위로
이 영화는 판타지가 던져주는 위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기억을 잃어가는 주인공에게 깜찍한 ‘연기’를 한 가족. 보통 판타지는 현실에 없는 세계를 기반한다. 그러나 메리와 그녀의 가족이 준비한 판타지는 완전한 허구는 아니었다. 오히려 과거의 재연에 가까웠다. 문제는 이 재연이 아름다울수록 과거를 기억하는 메리는 슬퍼지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로버트는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결국 벽에 걸린 과거의 사진 앞에 로버트는 회한에 휩싸이고 쓰러진다. 이것은 그저 판타지의 허구성과 현실을 1도 바꾸지 못하는 연약함을 말하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우리는 누군가가 기억해 줌으로써 존재함으로 메리와 로버트가 나누었던 단 일주일간의 아름다웠던 시간은 메리와 자녀들에게 위로로 남을 것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장미 꽃잎이 휘날리며 네 사람이 서로의 손을 잡고 웃는 장면이다. 이것은 누군가의 환상인 걸까 아니면 과거의 한 장면인 걸까?
어쩜 너무나 달콤한 디저트처럼 누군가에게 이 영화가 과잉된 연출로 거부감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그 속을 깨물어 보면 늙는다는 것의 비극과 기억을 잃는다는 것의 아픔이 녹아있다. 가족영화가 드문 요즘 부모님과 보면 딱 좋을 영화이다.
6. 배우들 Actors
이 영화 속 두 주인공의 연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로버트를 연기한 마틴 랜도 (Martin Landau)는 마치 픽사 애니메이션 Up의 주인공처럼 사춘기 소년 같은 해맑음과 189cm 장신이 빛나는 멋들어진 신사미를 보여준다. 특히 거울을 보며 매일 아침 루틴을 보여주는 장면과 클로즈업된 그의 표정은 그의 긴 연기 경력을 증명한다. 그의 필모그래피 (filmography) 중 단연 빛나는 작품은 팀 버튼 (Tim Burton) 감독의 1994년 작(作) 에드 우드 (Ed Wood)이다. 그는 작품 속 드라큘라로 유명해진 배우 벨라 루고시 (Bela Lugosi)를 연기했다. 그는 이 작품으로 1995년 전미 비평가 남우조연상과 제1회 미국 배우조합상 영화 부문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2017년 07월 15일 그는 영면에 들었다. 그의 두 딸도 배우로 활동 중이다. 메리를 연기한 엘렌 버스틴 (Ellen Burstyn) 은 우아하고 세련된 연기로 극 중 로버트뿐 아니라 관객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영화의 사랑스러움의 8할은 그녀의 것이다. 32년생 (만 92세)인 그녀는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영화에 출연 중이다. 1974년 마틴 스코세이지 (Martin Scorsese) 감독의 영화 앨리스는 이제 여기 살지 않는다 (Alice Doesn't Live Here Anymore)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5번이나 후보에 올랐다. 전설적인 심령 공포영화 엑소시스트(The Exorcist, 1975), 국내에서 천만 관객몰이를 한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에도 출연하였지만, 개인적인 추천작은 2015년에 개봉한 아델라인 : 멈춰진 시간 (The Age of Adaline2015)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80년 동안 나이를 먹지 않는 여자이다.
눈 올 때마다 생각나는 사랑 이야기! 여섯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