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이건 절대 여행일 수 없지
승무원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있다.
[여행하면서 일하는 거 아니에요? 좋겠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여러 나라를 다니며 짧은 레이오버지만, 그 나라에 있는 음식이나 문화를 즐기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직업을 선택한 이후로 나는 여행에 목이 말라있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듯 하지만 그 부러움은 사실 보이는 게 다인 거다.
사람들의 시선에 보이지 않는 어두운 면은 [온전하지 못함]이다. 온전히 즐길 수가 없다. 고작 6시간 비행을 하지만, 사실 기상을 하고 준비를 하고 브리핑을 하고 보딩을 하는 5시간을 빼고 이륙을 한 후에 측정되는 시간이다. 사실상 11시간을 넘게 일하는 거다. 특히나 8시간을 넘어가면 도착 후 피곤함만 몰려온다. 걸어가다가 아무 벤치에 누워서 자고 싶을 만큼 피곤했던 적이 적지 않다. 걷다가 졸아봤냐고 한다면, 그렇다.
새벽 출근의 피곤함은 배가된다. 나의 패턴은 밤 11시 취침이지만, 출근이 3시가 되면 오후 6시에는 잠에 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다. 오히려 아주 일찍 일어나 움직였다가 결국 자지 못하고 36시간을 뜬 눈으로 일한 적도 있다. 그런 피곤함들을 가득 안은 채 도착한 나라에서 다른 여행객들처럼 여행하는 건 쉽지 않다. 여행 계획처럼 나의 하루를 채우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랜딩 후 보통은 맛집 리스트에 저장해 뒀던 식당이나, 브런치 카페 혹은 꼭 가보고 싶었던 장소 한 곳정도를 가는 편이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경우에는 밤 치안을 생각해서 랜딩 후 곧바로 나가거나, 아예 나가지 않는 편이다. 한 달을 전체로 본다면 나의 레이오버 4개에서 5개 중 절반은 호텔에서 쉬기만 한다. 그 나라에 대한 기대가 가득하다가도 너무 힘든 비행이면 나갈 엄두가 나지 않게 된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여행객으로 갔던 파리를 승무원이 된 후 레이오버로 간 적이 있었다. 그때에도 새벽을 내내 일을 한 후라 30시간을 넘게 자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도 파리에 온 설렘이 나의 피곤함을 짓누르고 곧바로 나갈 채비를 했다.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해서 주변을 다시 훑었다. 그런데 왜인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온통 눈이 충혈되고 부어있어서 뜨기도 힘들었다. 에펠탑 앞에서 와인 한 병을 병째로 들이키는 상상은 물 건너간 지 오래였다. 여행객으로 올 때는 너무나 예뻐 보였던 파리가 회색빛으로 가득해 보였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는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사람들이 말하는 '전 세계 여행'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걸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가끔 의문이 들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