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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이 되어 지구를 손에 넣었다

2화. 고요한 기내는 사실 전쟁터예요

by 이가은

부푼 마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면 들리는 고요한 백색소음. 엔진소음도 백색소음처럼 들리는 마법의 공간. 불이 다 꺼진 밤비행에서 난기류로 조금씩 흔들리는 탓에 오히려 잠이 솔솔 오는 명상의 공간.

이렇게나 고요하기만 한 비행기는 사실 승무원에게 전쟁터다. 하나의 완성된 무대를 위해 그 뒤에서 노력하는 스태프들과 다르지 않다고나 할까.


나도 한국을 자주 들어가다 보니 승객의 입장이 수없이 되어봤다. 승무원으로 일 할 때 느껴지던 전쟁터가 승객으로 탈 때는 참 고요하다.

잠도 잘 온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코노미석에서는 더욱 승무원의 움직임을 보기가 힘들다. 미어캣처럼 목을 더 늘려 보지 않는 이상 보통은 보이지 않는다. 참 아이러니하다.


승무원은 기내식을 서빙하는 일 말고도, 긴 시간 승객들이 탈수로 쓰러지지 않게끔 일정한 시간마다 물을 제공하러 돌아다닌다. 12시간이 넘어가는 최장시간 비행에서는 승객분들이 혈당이 떨어져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간단한 스낵류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것 말고도 30분마다 화장실을 체크해야 하는데, 그건 화장실 청소와는 다른 거다. 혹여나 흡연으로 인한 화재발생이나, 화장실에 갔다가 안에서 쓰러지는

승객이 발생하기도 하고, 연기 감지 시스템을 누가 막아놓지는 않았는지 혹은 외부 물체들로 인해 시스템이 작동할 수 없는 상황인지 등에 대해 체크한다. 안전에 관해 이륙 전부터 랜딩 후까지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안전 이외에 우리의 또 다른 일은 '서비스'이다. 이륙 전은 승객들의 안전 또는 혹시나 모를 비상상황에 대비하는 것들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느라 아주 바쁘다. 이륙 후에는 서비스가 지체되지 않도록 바쁘게 움직인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단점 중 하나는 '시간제한'이라는 거다. 랜딩 전까지 타이머를 켜놓은 듯 시간에 맞춰 시작하고 끝내야 한다. 시간 압박의 스트레스가 정말 크다. 1분도 용납 못하는 시간제한은 우리를 다급하게 만든다.

승무원이 다급하게 돌아다니거나 숨이 찬듯한 게 이런 이유다. 쾌적한 기내에서 일하는 것 같지만 사실 7시간 내내 땀범벅일 때가 많았다. 승객으로 탑승했을 때는 너무 추웠던 기내가, 승무원으로 탑승하면 덥기만 한 공간이 된다.

물론, 바쁘지 않은 비행에서는 춥기도 하다.


해야 하는 서비스 이외에도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 비행을 가게 되면 일이 밀리게 된다. 우리의 손은 두 개인데 동시에 해야 하는 일은 백가지가 넘어갈 때가 있다. 물론 몇 분에서 십 분 정도 서비스 제공이 늦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발에 불이 나도록 뛰며 일해도 넘치는 일에 과부하가 와버린다. 신기한 건 그것들을 다 해낸다는 거다. 조금 늦어지더라도 어떻게든 랜딩 전까지 완벽하게 다 해낸다는 거다. 몇 번의 비행에서 7시간 동안 물 한 모금을 못 마신 적이 있었다.

그런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딱 하나다. 마인드 컨트롤.


[어차피 이 비행은 끝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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