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인간은 흔히 육체와 정신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먼저 자신의 뇌 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육체 밖에 존재하는 사물일 것입니다. 사물이란 사전적으로 말하면 ‘물질세계에 있는 모든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기전을 칸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감성을 통하여, 즉 감각 기관을 통하여 들어온 정보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 아래 우리의 선험적 범주(분량, 성질, 관계, 양상)를 거쳐서 인식하여 이론적 인식인 지성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아는 사물은 우리가 그렇게 인식한 것이지 그것이 물자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학을 연구하든, 종교적 사유를 하든, 문학가가 글을 쓰든 우리는 일차적으로 우리의 앞에 전개되어 있는 사물을 인식하여 합니다. 일본의 이토 게이치(伊藤桂一)가 일찍이 ’사물을 보는 시각의 차이‘라고 언급한 것은 특히 문학을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귀중한 조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토 게이치는 인터넷을 검색하여도 어떠한 인물인지 잘 나오지 않습니다. 겨우 구글에서 찾아본 자료로는 1917년 생이고 ’일본의 시인, 소설가. 1962년 소설 「반딧불의 江」으로 나오키상을 받으면서 전문적인 작가생활을 시작하였다.‘로 나옵니다.
이토 게이치의 ’사물을 보는 시각의 차이‘라고 해서 검색하면 다음과 같이 아홉 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1) 나무를 그냥 나무로 본다.
(2) 나무의 종모양을 본다.
(3) 나무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가를 본다.
(4) 나무의 잎사귀들이 움직이는 모양을 세밀하게 살펴본다.
(5) 나무 속에 승화되어 있는 생명력을 본다.
(6) 나무의 모양과 생명력의 상관관계를 본다.
(7) 나무의 생명력이 뜻하는 그 의미와 사상을 읽어본다.
(8) 나무를 통해 나무 그늘에 쉬고 간 사람들을 본다.
(9) 나무를 매개로 하여 나무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본다.
위의 내용은 어떤 의미에서 복잡하여 산뜻하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사물의 외면, (2) 사물의 외면, (3) 사물의 감정 (4) 주변 사물과의 관계 (5) 영혼, 신 우주 같은 이념의 궁극적 경지.
제가 틈만 나면 자주 가는 비봉산엘 가면 350년 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이 나무의 자태는 줄기의 크기와 무수히 잔가지를 뻗어서 하늘을 가리는 그 기세에 저는 압도 당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느티나무의 뿌리가 지상에 나와서 사람 팔뚝보다 굵은 뿌리가 용틀임을 치면서 땅속으로 꿈틀거리며 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생명의 살아 있는 욕망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은 이토 게이치가 말한 느티나무의 외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느티나무의 내면은 어둠 속에서 무수한 길들이 위로 뻗어나가고 있을 겁니다. 거기에는 스스로 괴사한 아픈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어둠이야말로 느티나무가 사랑하는 평안일지도 모릅니다.
느티나무는 인간이 자랑하고 우월의식을 가지고 이 세상의 온갖 생물을 능욕하는 언어가 없습니다. 350년 동안 살아오면서 느티나무는 아무런 희로애락이 없었을까요. 단지 느티나무에게는 말을 나타내는 성대가 없었을 뿐 느티나무는 침묵으로 희로애락을 수용했을 것입니다.
느티나무 곁에는 삼월 말, 사월 초에 피는 벚나무가 있습니다. 벚꽃이 피면 느티나무도 자신이 살아가는 생명이라는 역동을 다시 느끼면서 저 푸른 하늘을 보고 마음이 바다처럼 넓어지면서 제 몸을 다시 한번 흔들었을 것입니다.
350년을 살아왔다기보다 견디어온 느티나무가 자신의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궁극의 지점은 어디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존재와 생로병사일 것입니다. 거기에는 언제나 신과 영혼과 우주에 대한 사유의 길입니다. 느티나무에 영혼이 없다는 것은 단지 인간의 판단일 뿐입니다. 모든 생물은 생명이 얼마나 세련되어 있나 뿐이지 그 근본 원리는 같다고 느껴지는 것이 죽음에 더 가까이 갈수록 깨달아집니다.
시를 쓰든 수필을 쓰든 우리가 사물을 만나면 그저 외면적으로―그것도 피상적으로―훑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항상 이토 게이치가 말한 다섯 가지의 체크 리스트를 가지고 사물을 대하는 것이 글쓰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