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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Jun 04. 2023

책을 쓰기로 했다

 책을 쓰기로 했다. 다독가도 아니고 관련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런 마음이 들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죽기 전에는 언젠가 책 한 권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대학생이 되면 자연스럽게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 나눌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것처럼, 막연한 미래에 대해 막연하게 짐작하고 막연하게 기대하곤 했다.


 고백하자면 똑똑한 사람을 좋아한다. 천재를 동경한다. 누가 서울대 나왔다고 하면 3초 정도 후광을 느꼈다. 아인슈타인이나 뉴턴 같은 위인이 우상이었다. 수능 볼 때도 물리 과목을 선택했다. 안타깝게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향한 나의 사랑이 점수에 반영되지는 않았다. 물리에 실연당해서 물리학과 대신 공대에 진학했다. 전공과목과 결혼까지 생각했는데 곧 이별했다. 어린이였을 때 ‘척척박사’란 단어를 좋아했는데, 커 보니까 ‘척척석사’조차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 대학원 그만두고 도망치듯 다른 일을 시작했다.

 과학자 다음 똑똑해 보인 것이 작가였다. 책과 친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멀리하지도 않았다. 내가 똑똑한 사람이 아니란 걸 학교에서 배웠으니 작가에 도전하는 망동은 없었다. 누군가의 걸작을 읽는 것으로 만족했다. 활자는 차가우면서 따스했으니, ‘작가’는 온기를 머금은 눈사람의 신비로움이었다. 나는 ‘신비로움’에 다가가지 않았다. 함박눈이 올 때면 난로가 있는 방에 숨어 잠자코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결코 나서는 일 없이 누군가 지은 눈사람을 보며 참 환하다, 감탄할 뿐이었다. 세상은 추운 곳이고 이불 밖이 위험하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글을 쓰는 시간을 좋아했다. 학생 때는 시험 기간이면 일기를 썼다. 정당한 피난처라고 착각했다. 놀 때는 관심이 없다가 공부하려고 걸상에 앉으면 글쓰기로 도망쳤다. 성인 되어서는 시 쓰는 게 좋았다. 스마트폰으로 끄적끄적 적었다. 남의 시는 잘 읽지도 않으면서 내가 쓴 시는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마음으로 낳은 자식인 양 보듬었다. 지인에게 보여주었을 때, 좋은 글이라고 칭찬을 들으면 얼마나 기뻤던지. 그렇지만 그것도 곧 사라진 취미가 되었다. 따뜻한 날이 오면 자연스레 눈이 녹는 것처럼, 바쁜 계절에 글은 저절로 멀어졌다.

 엄마가 아프고 나서 의지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진화했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앤 라모트’는 <쓰기의 감각>에서 암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또 암에 걸린 가장 가까운 친구를 위해 친구의 이야기도 썼다고 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꺼지다 만 불씨처럼 남아있었다. 나도 암에 걸린 엄마를 위해 책을 쓰고 싶었다. 아니, 써야 했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 순간 책을 쓰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게 아닐까, 난데없는 숙명론에 사로잡혔다.


 엄마를 간병하면서 인터뷰했다. 수첩과 펜을 든 나는 병상 앞에 앉아 질문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우리 가족은 자신의 이야기를 잘 안 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집단이라 나는 엄마의 과거를 잘 몰랐다. 다만 엄마가 힘든 생을 보낸 것은 알고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눈보라를 헤치며 앞만 보고 달린 것도. 그래서 엄마는 젊은 시절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지나온 길에 고난이 눈처럼 쌓여 당신의 발자국을 남기지 못했다. 이야기는 뚝뚝 끊겼다. 멋진 우리 엄마, 위인전을 써주고 싶은데 엄마의 인생을 쓰려면 반은 소설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내 이야기 속에 엄마를 넣기로 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를 그리자. 그러면 할 수 있겠다.

 노트북 켜 놓고 자판을 두들겼는데 쓰는 것에 금방 싫증이 났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았다. 긴 글과 씨름하는 습관이 도통 배지 않았다. 키보드에 손을 얹어도 글을 쓰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맸다. 세상에는 재밌는 게 너무 많았고 내 집중력은 오래 가지 못 했다. 무언가 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도피성으로 잠깐 써야 재밌지, 글 쓰려고 자리 잡고 앉으면 다른 자극이 날 유혹했다.

 나는 늘 이랬다. 라디오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싶었지만, TV 볼 수 있으면 TV를 보았다. 또래보다는 독서를 좋아했지만, 컴퓨터 게임과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도서관에 가려면 이정표를 보고 길을 따라가야 하는데, 그때그때 시선에 들어오는 유혹에 흔들려서 분식집으로 빠지고 PC방으로 빠져버리는 꼴이었다. 나는 가벼움을 쫓아 쉽게 흔들렸다. 진득하게 쌓이지 못하는 진눈깨비였다. 한숨이 글이 되면 쉽게 원고지를 채울 수 있을 텐데, 결심은 점처럼 흩어져 말줄임표만 남겼다.


 그때, 누구는 ‘끌어당김의 법칙’이라 하고 누구는 ‘기적’이라고 일컫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진시립도서관에서 [1인1책 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외부에서 초청한 작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글을 쓰고 연말에 독립출판으로 책을 내는 프로젝트였다. 입이 떡 벌어졌다. 12월에 당진으로 이사했고, 1월 초에 엄마를 인터뷰했는데, 1월 말에 책 쓰는 걸 도와주겠다고 공고한 것이다. 마치 내가 당진으로 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와 이야기하길 기다렸다는 듯이. 이보다 강력한 필연이 있을까. 하늘에게 혼나는 기분이었다.

 ‘이래도 안 쓸래!’

 죄송해요, 열심히 할게요. 속삭이며 조심히 신청 버튼을 눌렀다.


 그게 벌써 4개월 전이다. 내가 정말 책을 쓸 수 있을까, 속에서 올라오는 진한 의심이 나를 흔들기 시작했다. 끈기 없는 건 둘째 치고, 점점 바빠지고 있다. 정신력은 무뎌졌다. 초심을 잃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을까.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가 쓴 책을 엄마에게 선물해 드릴 수 있을까. ‘작가’가 되어 신비로운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을까. 눈싸움하듯이 글 싸움만 하다가 글을 뭉치지 못하고 글이 그치면 어떡하지. 운명이 하라는 대로 했는데 실패한다면 그것은 하늘의 탓이다. 이봐, 하늘! 나를 책임져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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