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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백 Nov 18. 2022

신춘문예 후기에 대한 긴 썰(1)

이번엔 될 거예요


몇 년 지났으니 특정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쓴다.

(물론 지금도 아마추어이며, 열심히 글을 쓰고는 있다.)

내가 당시 신춘 망생이일 때 이런 글이 너무 귀했기 때문에, 누구에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적어본다.


일단 나는 소설 부문으로 등단했다.


신춘 응모는 본격적으로는 3년 정도 했던 것 같다. 본격,이라는 사족을 다는 까닭은 20대 초기에 장난스럽게(이상한 기호 같은 것에 심취해서 막 천재적인 시늉하며 쓰던 흑역사)냈던 한번을 빼면 글을 써서 내기까지 텀이 길어서다.


신춘에 관심도 없고 뭐하는 건지도 잘 몰랐고 주변에서 신춘 응모하는 사람도 없었다. 어릴 때 학교 국어 선생님들부터 지인들까지 나보고 작가가 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는데, 정작 나는 독자로 사는 게 더 좋았던 책벌레여서, 작가 타이틀이 필요없었다.(좋았던 시절이었네...)


그러다가 내가 즐겁게 읽은 책의 작가들 프로필을 읽기 시작했는데 다들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단 출신이었고 마침 새로 사귄 글친구가 신춘에 목을 매기에 신춘, 뭐가 매력이어서 다들 이러나? 나도 해볼까?하는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나는, 가난해지더라도 결국 내가 글을 쓰며 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게 내 길이구나. 하고 명확한 꽂힘이 ㅡ아무 근거도 없이ㅡ있었다. 

이런 순간이 없으면, 글을 쓰지 못할 것 같기도 하다.

나 정도로 쓰는 사람은 너무나 많고

나보다 잘 쓰는 사람은 더 많은데, 내가 이 길을 가겠다니.


여차저차 먼저 작은 소설 공모전에 소설(원고80매)을 냈는데 뽑혔다. 상금이 백이 좀 넘는 금액이었는데 그걸로 어머니 귀금속 사드리고 탱자탱자 놀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공모전 심사위원이었던 소설가였는데, 개인적으로도 정말 좋아하는 분이어서, 개인 폰번호로 전화를 주신 게 어안이 벙벙한 채로 통화를 했다.

글이 마음에 들었고 문장이 세련되어서 주최측에 일부러 번호를 알아내서 걸었다며, 신춘에 냈어도 됐을 글인데 하고 아쉬워하시면서

신춘에도 도전해보라고 격려를 주셨다.

그뒤로는 통화를 한 적이 없는데, 그분은 모르시겠지만 나로서는 역시 이 길이여~하고 마음을 단단하게 먹는 계기가 되었다.(감사합니다)


하지만 신춘, 쉽지 않더라.

한 해 10곳 넘게 낸 적도 있는데 본심조차 못 들었다. 그때도 장난기가 있었던 게, 각 지역마다 하나씩 넣자 해서 경기도 강원도 경상북도(대구) 전라도 제주도 등등에 하나씩 넣었고

그다음 해에는 ㄱ으로 시작하는 곳만 넣었다. 이유도 없다. ㅡ.ㅡ


도저히 소인유효조차 맞출 수 없어서

신문사에 직접 가서 낸 적도 있다. 지금은 코로나도 있고 외부인 출입이 제한되지만 그때는 가능해서, 조금 전까지 고치고 고치느라 씻지도 못한 몰골(그때는 마스크도 안 꼈는데!)로 누가봐도 N년차 망생이의 모습으로 노란 봉투를 가슴에 품고 신문사 안에 들어가, 기자의 데스크 위에 놓인 수많은 노란 봉투 복제품들에 경악하며, 내 새끼를 내려놓고 왔다. 돌아설 때의 그 허전한 심정이라니.

물론 떨어졌다.


우체국에서 직원이 실수한 적도 있다.

A신문사와 B신문사에 각각 보낼 원고를 주소지 확인도 하지 않고 똑같은 주소로 운송장 스티커를 출력하셨던 것이다.

망생이들이 우편물 분실이나 우체국의 실수로 자신이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운운할 때는, 훗, 망생이들 변명 보라지~그럴 시간에 글이나 쓰지, 했는데 눈앞에서 눈팅이를 맞고 나니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는 실수가 있는 법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뒤로는 우편물 두 개를 가져갈 때면 주소지가 다르다고 꼭 말하고, 너무 중요한 서류일 때는 아예 두 번 가는 수고를 한다.

내 마음 편한 게 최고다.


우체국 가는 게 얼마나 수치(?)스러운지, 우체국 직원들은 잘 모를 것이다. 

순문학계는 21세기에도 어째서 아직도 이메일이 아닌 등기 접수를 하는 걸까? 분실과 훼손 우려로 망생이들이 가지는, <내 새끼 맡겨도 되나병+ 빈둥지(?)증후군> 따위 1도 고려해주지 않는 시스템.

출력할 종이가 없나...잉크를 아끼나...스테이플러가 아깝나...인력이 없나...여러 생각 끝에 얻은 결론은,

그들은 우리의 수치심을 몰라서,라는 것이다.ㅋㅋ


봉투에 ㅇㅇ신문사 신춘문예 담당자 앞,이라고 적는 것도 왠지 움츠러드는 일인데, 거기에 시뻘건 글자로 <신춘문예 응모작, 부문 : 단편소설>이라고 별도 표기도 해야 한다.

그러면 접수처 직원들이 다 읽는다.

주소지를 입력하고 결제하고 영수증을 받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서, 어쩌다 삼성전자 서비스센터보다 친절한 직원을 만나는 날에는 미칠 것 같았다.

"어머, ㅇㅇ일보에 소설 내세요?"

(주변에서 나를 본다)

"예? 아, 예."

"어머 대단하세요. 글쓰시는 분이라니."

(화들짝)

"예? 아, 그게 아니고 이건 응모만 하는.. (저는 아직 망생이이며 이루어낸 것이 없사오며..)"

(아랑곳하지 않으며)"오늘 아침에도 어떤 분이 조선일보에 시를 내시더라고요. 글쓰시는 분이 많은가 봐요."

호호호. 하하하. 예...예...(수다 떨다가 혹시 주소 잘못 입력하실까봐, 혹은 운송장 스티커로 <소설>이라는 부문을 덮기라도 하실까봐 마음 졸이며.)도망갈 준비를 하는 나.

실제로 저 대화를 하고 그다음엔 작은 동네 우체국으로 장소를 바꿨다. 원래 가던 곳이 이 지역 우편물이 모두 모이는 곳이어서 신뢰가 가고 일처리도 빠르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또 말 시킬까봐+망생이임을 들킬까봐 장소를 옮겼다.

이번에는 동화 부문에 글을 보냈다.


그런데 거기서는 한 아주머니 직원분이, 그 작은 공간을 다 채울 만큼 큰 소리로,

"ㅇㅇㅇ님! 등단하세요! 동화 부문 ㅇㅇㅇ파이팅!!!!!"이라고 (진짜다) 외쳐주셨다. 두 주먹을 허공에 찌르면서 나를 정면으로 보고 그러셨다.

그뒤로는 그 우체국도 가지 않는다. 그래서 당분간 못가는 우체국이 세 군데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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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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