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형 대표님, 상인형 대표님
By 시작팀 박선우
스타트업 대표님과 디자이너들을 만나서 따로 이야기를 나눠보면 서로 사이 좋은 경우가 거의 없다.
경험상 90% 이상이 서로에게 불만을 갖고 있고, 대표님은 디자이너를 다시 뽑아야하나(또는 디자이너 없이 가야하나), 디자이너는 하루 빨리 이직해야하는데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하고 있다. 유독 대표님 vs 디자이너의 싸움이 많은데, 도대체 왜 싸우는걸까?
최근 대표님들의 "성향(예술가형, 상인형)"에 따라 싸움의 원인이 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나름대로 각각 원인에 따른 해결책도 생각해보았는데, 디자이너와 소통이 안되어서 불만 많은 대표님들과 오늘도 이직을 고민하고 있는 디자이너분들께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대표님들의 성향을 "예술가형(Artist)", "상인형(Merchant)" 으로 나눠서 본다. 먼 미래에 나의 <대표님 유형 이론>이 완성되어 MBTI처럼 A형과 M형으로 나눠지는 날이 오면 좋겠다.
예술가형 대표님들은 "만드는 것"을 잘하고, 상인형 대표님들은 "파는 것"을 잘한다.
어떤 사람들은 대표님이 "만드는 것"에 집중하면 안되고 "파는 것"에만 집중해야 회사가 성공한다고들 하는데, 꼭 그렇게 정답이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다. 예술가형 대표님이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고 파는 것은 다른 공동창업자나 세일즈맨에게 위임해서 보완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상인형 대표님이 파는 것에만 집중하고 만드는 것은 엔지니어와 디자이너 등에 위임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집중"과 "위임"이다. 경영을 잘하는 대표님들은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있어서, 자신이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영역과 주어진 상황에서 집중해야 할 영역은 무엇인지를 잘 알고 그 외 영역을 다른 팀원에게 위임한다.
집중과 위임을 못하는 대표님들은 팀 내 포지셔닝이 애매하고 "마이크로 매니징" 문제를 발생시킨다.
이를테면 예술가형 대표님이 프로젝트 디렉팅을 제대로 하면서 디자이너들에게 명확한 가이드를 주면 문제가 안되지만, 예술가형 대표님이 만드는 역할과 파는 역할 그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프로젝트 가이드를 애매하게 주거나 팀원들에게 왜 세일즈 실적이 안나오냐고 추궁하면 문제가 생긴다.
반대로 상인형 대표님이 디렉팅을 할 줄 모르는데 미숙하게 디자인 가이드를 주려고 할 때, 디자이너는 세일즈에 도움이 안된다며 급여를 낮게 줄 때도 문제가 생긴다. 상인형 대표님은 나가서 돈을 벌어오는 데만 집중하고, 만드는 것은 디자이너에게 위임하고 인정해주면 되는 데 말이다.
내가 관찰한 대표님과 디자이너가 싸우는 상황은 다음의 넷 중 하나다*.
(*다른 갈등 사유가 있는 분들은 댓글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표님이 예술가형인 경우-
1) 대표님이 디자이너에게 애매한 가이드를 주고 왜 본인의 기대치에 못 맞추냐고 함 (집중 이슈)
2) 대표님이 디자이너에게 왜 돈을 못 벌어오냐고 함 (위임 이슈)
대표님이 상인형인 경우-
1) 대표님이 디자인을 잘 모르면서 가이드를 주려고 함 (집중 이슈)
2) 대표님이 디자이너는 돈을 못 벌어온다며 급여를 안올려주거나, 낮은 급여에 이것저것 다 시키려고 함 (위임 이슈)
이제 대표님과 디자이너 각각의 관점에서 해결책을 생각해보자. 먼저 대표님이 예술가형인 경우다.
예술가형 대표님은 우리 제품과 서비스를 어떻게 디자인해야할지 머릿속으로는 어렴풋이 다 그려놓는다. 대표님이 직접 시간을 투입해서 머릿속에 있는 걸 다른 작업자들과 공유하고 디렉팅을 제대로 하면 되는데, 회사를 운영하면서 이것저것 신경쓰느라 바빠지면 디자인 가이드를 애매하게 주게 된다.
즉 예술가형 대표님의 관점에선 다른 일들은 과감히 위임하고, 디렉팅에 집중하는게 해결책이다. 대표님은 본인의 손발이 되어줄 수 있는 디자이너를 찾으면 채용 방향도 명확해지고, 디자이너와 협업시 대표님이 직접 사수의 역할을 하며 가이드를 줄 수 있게 된다. 다만 가이드를 잘 하는게 중요한데, 디자이너 입장에서 가이드가 충분한지, 소통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디렉팅을 잘해주시는 예술가형 대표님을 만나면 오히려 좋다. 대다수 디자이너들은 혼자 일하기 보다는 사수가 있는 환경, 프로젝트 리딩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환경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가형 대표님이 디렉팅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대표님의 기획 의도를 바탕으로 디자이너 혼자서도 구현을 할 수 있도록 역량을 쌓아가야한다.
상인형 대표님들은 디자인에 투자할 생각이 없는 경우가 많고 디자인에 대한 기대치 자체가 낮아서 디자이너의 급여 수준을 낮게 책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때문에 디자이너와 마찰이 더 잦게 발생한다. 사실 디자인에 대한 비용 지출을 줄이려 할 경우, 정규직 채용보다는 외주 방식으로 채용하는 것이 내부의 스트레스도 적고 경제적이다. 여러 카테고리의 디자인 업무를 적은 수의 사람에게 맡겨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급여가 낮으면 디자이너들의 퇴사가 잦아지게 된다. 나도 대표님들이 인하우스 디자이너 급여를 낮추려고 하시는 걸 보면 기본적으로 외주 협업 방식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천드리고 있다.
한편 상인형 대표님들 중 회사가 충분히 성장해서 여력이 생기거나, 동종 업계에서 예술가형 대표님들이 활약하시는 것을 보고서 디자인 투자를 늘리려고 하시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러한 경우, 디자인을 완전히 위임할 수 있는 사람을 충분한 보상을 주고 채용하는 것이 좋다. 이때 "완전한 위임"과 "충분한 보상"이 필요조건이다. 위에 언급했던 것처럼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상황에서 디자이너에게 어중간한 피드백을 줘서는 안되고, 정말 믿고 의지한다면 그에 걸맞는 보상을 해줘야한다. 물론 그렇게 위임을 할 수 있는 디자이너를 찾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디자이너 관점에서 스스로 능동적으로 프로젝트를 디렉팅하며 일할 수 있고,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라고 하면 위임을 제대로 해주는 상인형 대표님을 찾아가는 편이 좋다.
정리하면, 현실적으로 디자이너는 성장하려면 둘 중 하나의 환경(대표님)을 찾아가야한다.
1) 예술가형 대표님이 디렉팅을 명확히 해주는 환경
2) 상인형 대표님이 디자이너에게 돈을 많이 주고 위임을 제대로 해주는 환경
이건 디자이너 뿐 아니라 어떤 직종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겠지만, 결국 경영을 잘하는 대표님과 리더들이 있는 회사에 가는게 매우 중요하다. 나도 디자이너 분들이 회사 관련 고민을 얘기하면, 대표님을 설득할 수 있을 만큼 해보고 안되면 즉시 퇴사하라는 현실적인 조언을 드리게 된다.
대표님이 예술가형인지, 상인형인지 여부는 대표님의 이력만 봐도 얼추 알 수 있다. 일반화 할 수 없겠지만 개발자, 디자이너 등 엔지니어링 포지션 출신의 대표님들 중 예술가형이 많고, 영업/세일즈, 마케팅, 컨설팅, 금융 출신 대표님들 중 상인형이 많다. 외부에서 봐서는 잘 모르겠다면, 면접때 대표님을 만났을 때 물어보면 된다. 회사에서 어떤 일을 주로 하시는지. 필수 질문이다. 경영을 잘 하는 대표님일수록 "이것저것 해요" 라는 답변 보다는 집중하고 있는 영역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주실 것이다.
시작 팀은 대표님들과 디자이너 분들의 사이 지점에서, 대표님의 경영 스타일에 맞춰서 디자이너 분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서문에서도 언급했지만 대표님들을 많이 만날 수록 경영 스타일에는 정답이 없다는 걸 느낀다.
다만, 대표님 스스로 예술가형인지 상인형인지 모르는 경우, 또는 알고는 있지만 이것저것 다 챙겨야한다는 강박에 어중간한 포지셔닝을 하고 계신 경우, 그리고 대표님과 팀 구성에 맞지 않는 디자이너를 채용하셨거나 협업 방식이 잘못 된 경우 등등은 너무 많아서, 제3자 관점에서 고민을 들어드리고 현실적인 솔루션들을 드리고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덧붙이면, 나는 스스로 예술가형 대표라고 생각하지만 업의 특성 및 팀 구조상 상인형 대표가 되어야 해서 철저히 상인형 대표의 포지셔닝을 취하고 있다. 어쩌면 상반된 두가지 특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양쪽 유형의 대표님들의 이야기와 고민들을 진심으로 공감하며 듣게 되는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예술가형/상인형 대표를 주제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대표님이나 우리 회사 대표님 때문에 답답한 디자이너 분이 계시다면 편하게 연락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