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9월 1일, 토요일 오후.
해방이 된 지 보름 하고 이틀이다. 9월이 되었으나 아직 더운 기운이 진하게 남아있다. 아직도 해방이 되었다는 사실이 꿈처럼 느껴진다. 일제의 감시와 폭력 아래 침묵을 강요당하며 요주의(要注意) 인물로 살아온 세월이 마침내 끝났다. 그토록 강해 보이던 일본이 망하다니. 내 평생에 해방은 없을 것 같아 우울증까지 걸리지 않았던가. 어젯밤에도 밤새 고문을 당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옷이 식은땀에 젖은 것을 느꼈다.
단성사를 가기 위해 종로를 걸으면서 노래 구절을 흥얼거려 본다. ‘해방이 올 줄 누가 알았을까’이다.
팔월이라 십오일
해방이 올 줄 누가 알았을까
하늘에는 서기가 돌고
문전 문전에 태극기라
‘대한민국 만세!’ 소리
이천만 동포가 춤을 춘다.
정말이지 해방이 올지 누가 알았겠는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사람들의 경쾌한 걸음걸이와 밝은 표정과 마주친다. 종로를 걷는 사람들이 표정과 모습이 예전과 딴판으로 보인다. 잃은 나라를 다시 찾은 백성들의 표정에 희망이 번지고, 걸음걸이에 활기가 넘쳤다.
일제 치하 때 나와 사연이 많았던 단성사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만담왕 신불출 선생 초청, 해방기념 만담 대회’
세상도 무대도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아무런 사전 검열이나 통제 없이 마음껏 내 생각을 관객에게 전할 수 있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가가 촉촉해진다. 무대에 선지 20여 년 만의 일이다.
*****
1923년 7월, 내 나이 17세가 되던 해였다.
개성 송도고보의 3학년 1반 교실. 달력은 아직 초여름인데 더위는 한 여름이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매미가 쉬지도 않고 울어대었다.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도록 창문을 열어둔 탓으로 매미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가을 공연을 위한 창작 희곡 쓰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연극 부원들은 가을 공연 무대에 올릴 희곡이 어떤 내용일지, 원고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곧 여름방학이 되면 배역도 정하고,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해야 했다. 부원들의 기대에 찬 눈빛이 따라다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희곡 노트를 붙들고 씨름하고 있는 중이었다. 며칠 째 창작의 고통을 제대로 느끼고 있었다. 연극 제목을 ‘사생결단’이라 정하고 써내러 가다가 뭔가 감동이 오지 않아 접었다. ‘만주의 하늘 아래’라는 제목으로 다시 써 내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역사 선생은 어제 ‘부친 위독’ 전보를 받고 급히 고향 가는 기차를 탔다. 역사시간은 자습시간이 될 터이니 대환영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자습 대신에 교장선생님이 대체수업을 한다고 했다.
윤치호 교장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셨다. 학생들은 큰 박수로 선생님을 맞이했다. 친구들은 교장선생님의 특별수업을 반겼다. 평상시라면 나도 물론 환영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사정이 달랐다. 대체수업으로 생활영어를 가르치시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미국 유학을 다녀오신 교장선생님은 조선에서 영어를 제일 잘하시는 분으로 알려져 있다. 반장이 배에 힘을 준 목소리로 구령을 하였다.
“교장선생님께 경례!”
반 아이들은 모두 허리를 곧추 세우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학생들의 인사를 받은 선생님은 한 손으로 수염을 쓰다듬으신 후 말했다.
“오늘은 여러분과 신문에 난 기사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해 볼까 하네.”
교장선생님은 신문기사를 오려 붙인 노트를 펼쳐 보여주었다.
“이 기사를 보게나. 1907년 동경박람회가 열리던 6월 21일, 대한매일신보의 기사이네.”
기사의 제목, ‘동경박람회에 출품된 조선인 부인’에 굵은 밑줄이 쳐져 있었다. 앞줄의 학생들은 줄 친 글을 읽어보며 술렁거렸다. 선생님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신문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오호통재라, 우리 동포여! 예전에 우리가 아프리카 토인을 불쌍히 여겼더니
오늘에 이르러서는 어찌 그들이 우리를 더욱 불쌍히 여기게 될 줄 알았으리오.”
첫 문장부터 반 전체를 술렁이게 했다. 선생님은 웅성거리는 학생들을 동그란 안경테 너머로 한 번 훑어보며 읽기를 계속했다.
“무슨 사연 인고하니 왁자지껄하게 열린 동경 박람회장에 조선인 유학생들이 들어섰는데 웬 일본인들이 제1관 안에 조선 동물 두 마리가 있는데 대단히 우습더라는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대체 무슨 조선 동물이 왔기에 우습다는 것인가 하고 돈을 내고 들어가 보니 그 안에 있던 동물은 다름 아닌 조선인 남자와 여자였다.”
반 친구들은 놀라 서로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여기까지 읽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선생님은 신문을 다시 읽어 내려갔다.
“그 동물은 다름 아닌 조선인 갓 쓴 남자와 장옷을 두른 여자였다. 그들은 전시실 안에 갇혀서 구경거리가 되어있었다. 이것을 본 유학생들의 눈이 뒤집혔다. 전시를 주관한 일본 사람을 어렵사리 찾아가 삿대질을 하며 항의하였다. ‘일본 사람들이 이런 부도덕한 행위를 꺼리지 않으니 이는 우리 한국 민족을 모멸함에 그치지 않고 인류가 되어서 인류를 능욕하는 것이오. 우리는 한인이 되어 한인의 모욕을 눈감을 수 없고 또한 세계 인류가 되어 같은 인류가 다른 인류에게 모욕을 가하는 것을 보고 참고 넘어갈 수 없어 불가불 그 죄를 고하고자 하오.’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 전시를 주관한 일본인들은 오불관언(吾不關焉),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가슴이 세차게 고동쳤다. 친구들은 크게 웅성거렸고 여기저기서 ‘왜놈들!’ 하며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은 신문 읽기를 멈추고 학생들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 반장이 일어서서 학생들을 둘러보며 외쳤다.
“정숙! 정숙!”
친구들의 욕하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학생들이 조용해지자 선생님은 고조된 목소리로 신문기사를 마저 읽었다.
“조선인 유학생들은 ‘우리가 일본에게 무슨 빚이 있기로 조선인을 동물로 취급하여 돈을 받고 관람케 하는 가. 목이 메어 말이 막히고 두 눈에 눈물이 흐른다.’고 분노를 토했다.”
기사를 다 읽자 교실은 일순간 조용해졌다. 선생님은 신문기사를 교탁에 내려놓았다. 나는 도저히 북받치는 감정을 참을 수가 없어 벌떡 일어나 물었다.
“어떻게 대명천지(大明天地)에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까?”
선생님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대명천지라고 했나? 무지하고, 세상 물정을 못 따라가면 대명천지가 아니라 암흑천지인 것이네.”
뭔가 묵직한 것이 가슴을 쳤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분노가 배어 있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그 동물로 전시된 조선인들은 무지해서 당한 것입니까?”
“무지해서 일본 사람에게 속임을 당한 것이네. 내가 듣기로 그 여인은 대구 출신이었는데,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일본인 여자가 동경박람회 구경을 같이 가자고 했다고 하네. 따라가서 자기들 시중만 잘 들면 월급 몇십 원을 주겠다고 하여 아는 남자와 동경에 오게 되었고, 천만뜻밖에 전시된 동물이 되는 모욕을 당했다고 했다네.”
반장이 손을 들고, 일어나 말했다.
“얼마 전 행사에서 일본인 개성 군수가 연설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조선 사람은 일한합방을 나쁘게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민족적 감정으로 무조건 일본과 일본 사람을 미워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수남이가 끼어들었다.
“이건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야? 일본이 조선을 삼켰는데 그럼 좋아라고 박수라도 쳐야 하나?”
반장은 수남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말을 이었다.
“군수는 합방 후에 일본이 조선을 위해 철도와 도로도 만들어주고, 학교도 세워주고, 위생 수준도 높여주어 이씨(李氏)조선 시절보다 훨씬 잘살게 해주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고마운 일인데, 왜 허구한 날 원망만 하는 것이냐고 나무라면서 고약한 조센징 근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반장은 감정이 북받쳐 목이 메는 듯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군수의 말이 틀린 헛소리인데, 뭐라고 반박을 해야 할지...... 너무 분했습니다.”
선생님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학생들에게 물었다.
“일본인 군수의 말을 반박할 학생이 있나?”
교실은 씩씩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도 손을 드는 학생은 없었다. 나도 마땅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원하는 학생이 없으면...... 오늘이 7월 5일이니, 5번 학생 한 번 말해 볼까?”
나는 당황했고, 친구들은 모두 나를 보았다. 딱히 할 말이 없었으나, 엉거주춤 일어나다가 희곡 노트에 쓰여진 글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 만주의 하늘 아래, 출연자: 옥분(여주인공), 가세가 망한 양반의 딸로 불행한 처지를 동식의 도움으로 극복해나감. 동식(남주인공), 옥분의 야학 선생으로 옥분을 도와주고 사랑함. 덕구(불량배), 옥분을 능욕하고 괴롭힘. 훗날 일본 순사보가 됨,
나는 속으로 무릎을 치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불량배가 여자를 강제로 납치하여 능욕한 후에, 밥 먹여 주고 새 옷 입혀 줬다고 무슨 대단한 은혜를 입힌 겁니까? 그 여인은 그놈에게 고마워해야 합니까? 조선의 처지가 이런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 말이 맞아. 한일합방에 대해 조선 사람과 일본 사람은 인식에 큰 차이가 있네. 5번 학생……”
교장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신영일입니다.”
“그래, 신영일 군이 이야기 한대로 조선 사람은 순결한 처녀가 불량배에게 겁탈당한 것처럼 모멸감을 느끼는데, 일본 사람은 오갈 데 없는 과년한 처녀를 거두어 함께 살고 잘해 주었는데 고마워해야지, 무슨 원망이냐고 하는 식이지. 신영일 군의 이야기를 들으니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어. 일전에 조선 주둔군 사령관 우쓰노미야가 나에게 해준 이야기네.”
‘조선 주둔군 사령관?’
나는 흥미를 느끼며 선생님의 말을 기다렸다.
“3.1 만세운동으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전국적으로 격렬히 저항하자 그는 몇 사람을 불러 식사자리를 마련했네. 그 자리에서 그는 조선을 아내, 일본을 남편으로 비유했어.”
학생들은 웅성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무슨 조선이 쪽발이 나라의 아내야?”
반 친구들은 선생님의 입을 주목했다.
“그가 말하기를, 중국이나 러시아는 조선의 바람직한 남편이 될 수 없다. 혹시 미국이 남편이 된다면 아마도 조선을 정실부인이 아닌 첩으로 삼을 것이다. 조선은 거친 남편인 일본과 별거를 원하지만 혼자서는 살아나갈 능력이 없다. 그렇다면 현재의 남편과 타협하고 사는 게 최선이라고 했어.”
수남이가 일어나서 분을 내며 말했다.
“일본이 무슨 남편이에요? 죽지 못해 함께 사는 처지인데.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강제로 납치한 조선 여인이 제발 놓아달라고, 3.1 만세운동이나 의병운동으로 저항하였음에도, 무시무시한 폭행으로 겁박하여 붙잡아놓고 있지 않습니까.”
반 전체가 술렁이며 무언가 폭발할 듯한 열기로 가득 차올랐다. 수남이가 선 채로 부르짖다시피 외쳤다.
“일본은 우리의 원수입니다! 철천지원수입니다!”
반 전체가 박수를 치며 수남의 말에 동조하였다.
“옳소! 옳습니다!”
반장이 손을 들고일어나, 교장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어떻게 해야 일본에게 원수를 갚을 수 있습니까?”
윤치호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대한제국이 망한 것이 일본 제국주의 때문인가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한 답도 아니네. 대한제국이 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은 대한제국이 무능했기 때문이네.”
내가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장선생님은 힘주어 말했다.
“우리가 망한 것을 외부 탓을 하기보다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하네. 자기반성 없이는 개혁이며 독립이 가능하지 않아요.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하네.”
교장선생님은 목소리를 높이셨다.
“나라를 부강하고자 하면 교육에 힘써야 하네. 배움이 없어 무식하면 속아 넘어가기 쉽고, 판단할 힘이 없어 업신여김을 받는 법이네.”
나는 전시회의 동물이 된 조선인을 떠올렸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힘주어 호소하였다.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힘을 기르려면, 학생들은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하네! 배우고, 배우고 또 배워야 하네!”
선생님은 감정에 북받쳐있는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배워서 자신을 살리고, 남도 살리며, 나라도 살려야 할 것이네!”
나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에 온 몸이 전기를 맞은 듯 찌르르했다. 펜을 들어, 희곡 노트에 새로운 타이틀을 큼지막하게 썼다.
‘전시장의 동물이 된 조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