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담왕 신불출'을 내면서

by 두류산

브런치에서 연재한 '왕의 침묵: 만담왕 신불출'이 드디어 책으로 나왔다.

만담왕 신불츨은 마라톤의 손기정과 함께 1930년대 조선의 최고 인기인이었다. 일제강점기 조선 사람들에게 이름만 들어도 사이다 같은 청량감을 준 인물이었다. 신불출은 식민지 백성으로 즐거움을 잊고 사는 조선 사람에게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덜어주었다.


신불출은 일제강점기 최고의 인기인이었으나, 오늘날 신불출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해방 후 월북을 하여, 자취가 지워져버렸기 때문이다. 신불출의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찾았다. 국문학 및 공연관련 논문에서 일제강점기 시대 신불출이 공연한 연극과 만담, 신불출이 지은 노래를 발견했고, 북한에서 발간한 신불출의 책도 구해 보았다. 이 책은 흩어진 기록을 모아 새로운 사실의 발견과 해석으로 퍼즐을 완성하듯 신불출의 일생을 세상에 다시 등장하게 했다.


신불출이 다녔던 개성 송도고보는 황성옛터를 작곡한 바이올리니스트 전수린이 동기로 있었고, 독립협회를 이끌었던 윤치호 선생이 교장으로 있었다. 신불출은 고학력자임에도 당시 ‘딴따라’로 경시되던 연극무대를 택했다. 일제강점기 시대 힘든 세상에서 어렵게 사는 조선 사람들에게 무대가 잠시나마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무대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누리기 어려운 자유를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신불출은 무대에서 공연하다가 치안방해 죄로 경찰서에 끌려가고, 일제의 창씨개명을 무대에서 조롱하다가 일본경찰의 탄압을 받은 저항의 예술인이었다. 신불출이 만든 희곡은 사전검열이 되었고, 논개와 계월향을 기리며 만든 장한가는 민족정신을 함양한다는 이유로 총독부에 의해 아리랑에 이어 두 번째로 금지곡이 되었다. 신불출은 지금도 우리가 널리 부르는 민요 ‘노들강변’도 만들었다. 검열을 피해 민요가락을 넣어 은유적으로 만든 노들강변은 당시 금지곡이 된 아리랑을 대신하여 조선 사람들의 사랑을 널리 받았다. 신불출은 일본 경찰의 방해로 연극으로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자 조선에 처음으로 만담을 도입하여 막간극 무대에 섰다. 신불출의 만담은 공연무대의 인기를 넘었다. 축음기 레코드로 판매하여, 2주에 2만장을 판매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신불출은 늘 무대에서 자유롭고 싶었고,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말을 관객들과 나누고 싶었다. 통치 권력은 어느 시대나 그의 풍자와 비판을 두려워하여, 그에게 재갈을 물리며 침묵을 강요했다. 신불출의 일생은 ‘인간이 무엇을 위해 사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어느 시기에 살든, 어느 곳에 있든 본능적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어 한다. 권력의 억압으로 장애물과 제약이 느껴질 때 더욱 그러하다. 강압과 검열에 저항하여 자유를 추구하면 고통스런 대가를 치러야 한다. 불나방이 불 주변에 가능한 가까이 다가가려다가 한 순간 ‘빠지직’ 불에 타버리듯이.


신불출의 일생이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