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지근한 건 싫어!
열탕 아니면 냉탕.
그 누가 미지근한 물을 좋아하나.
답답한 건 싫어.
꽉 막힌 생각도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은 것도 참 많은 나이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
다 좋아
좋아, 좋아, 좋아.
그럴 때도 있었지.
세상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이던 시절.
그래 그땐 다 좋았어.
지나가는 구름마저도 귀여웠으니까.
나도 제법 귀여웠고.
공룡은 크면 클수록 멋있잖아.
그러니까 멸종했지.
왜?
멋있는 건 다 따라 하고 싶으니까.
따라 하면 안 돼?
따라 하면 멋이 없어져.
아, 그래서 그렇구나? 내가 멋이 없는 게.
정답이야. 맥락 파악을 참 잘하는구나.
그러니까 너는 지금 멋있어지고 싶은 거야?
응, 공룡처럼.
공룡이 왜 멋있는데?
근사하잖아, 티라노사우루스. 희귀하잖아. 몇 없는 이름이잖아!
세상에서 사라졌는데도?
그러니까. 이미 수만 년 전에 이 세상에 없는 존재인데 아직도 회자된다는 건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거지.
그냥 레전드.
그냥 레전드로 말하기엔 아쉽지.
어쨌든, 넌 희귀해지고 싶은 거야?
음, 그보다 나아지고 싶은 거지.
뭐가?
예를 들면, 똑같은 글자인데 잘 쓰면 멋있어 보이잖아.
글씨를 잘 쓰고 싶다?
내가 만든 폰트가 있으면 좋겠어. 그럼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은 간지 나게 될 거야.
그것 참 순진하네.
왜? 기발하지 않아?
남들이 따라 하면 어쩌게?
괜찮아. 따라 하고 싶다는 건 탐난다는 거고, 탐난다는 건 멋있는 거니까. 따라 해서라도 내가 되고 싶은 거잖아?
근데 너는 너니까?
맞아. 잘 알아듣네.
결국에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건 남들이 안 하는 걸 하는 거고, 모두가 하는 걸 하더라도 내 스타일대로 하는 거지.
근데 너무 진부해져 버렸다.
공룡으로 돌아갈까?
아니, 진부해. 똑같은 말 반복하는 건 딱 질색이야.
그럼 어떻게 처음만 있어? 새로운 단어를 중복 없이 나열하는 게 가능하긴 해?
불가능할 건 없지.
그럼 너무 개연성 없잖아.
사람들은 더 이상 개연성 같은 건 원하지도 않아.
그럼 뭘 원하는데?
새로운 거, 안 해본 거, 참신한 거.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아니, 난 달라.(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건 일종의 반발심일 뿐인걸.)
짜증 나.
사람들은 말문이 막혔을 때 짜증나라고 얼버무리곤 하지.
넌 사람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럼 넌 뭔데?
공룡.
티라노사우루스.
바보.
잠시만, 그래서 결론이 뭔데?
어중간한 인간이 될 바엔 티라노사우루스나 되자.
그런데 말이야, 공룡 중에서도 티라노사우루스가 제일 진부한 거 아니야?
진부한 게 가장 옳은 거야.
네 말이 옳아.
옳지.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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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지근해지기 싫어서 쓰는 의미도 감동도 없는 글.
미적지근 시리즈 1편입니다.
진부하게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