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접었습니다.
글은 나의 꿈이었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삶을 견디는 동안 글은 가슴 한쪽으로 자꾸만 밀려났다. 사는 게 바빴고 먼저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그렇게 글은 미뤄둔 꿈이 되었다가 내 것이 아닌 꿈이 되었고 가슴 한쪽에 아프게 접힌 꿈이 되었다.
접힌 꿈 위에 세월이 얹어지고, 삶의 무게가 더해졌다. 더 이상 글은 나의 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생의 바람이 마음을 드출 때마다 아물지 않는 상처가 만져지듯 접힌 꿈이 욱신거렸다. 이제는 너무 늦었다는 말로 꿈을 달래며 상처에 딱지가 나고 새살이 돋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꿈은 아플지언정, 죽어버리지는 않았다.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멈추지 않고 가슴을 두드렸다. 그 살아있음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강렬한 외침이었다.
쓰고 싶다,를 인정한 순간 꿈은 나를 깨뜨리고 나왔다. 오랜만에 마주한 꿈에는 아프게 접힌 자국이 선명했다. 아무리 펴보려 애써도 사라지지 않을 자국이었다. 꿈을 끄집어냈지만, 정착할 곳은 찾지 못했다. 성치 않은 꿈은 갈 곳도 없이 처량해져만 갔다. 삶을 핑계로 꿈에게 무심했던 세월을 보상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나는 글을 둘 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브런치라는 창공을.
탁 트인 하늘이었다. 언제든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유로움에 나는 설레었다. 어쩌면 이 꿈은 여기서 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브런치에서 작가라는 이름을 얻고 가슴에 있는 단어들을 엮어가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접힌 꿈이라도 담아낼 수 있는 곳이 있어 좋다고 생각했다. 쓸 때마다 치유받으며 나의 꿈이 반듯하게 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브런치가 말해주었다. 내가 틀렸다고. 꿈은 새 종이처럼 반듯할 이유가 없었다. 어떤 모양에서 시작해도 좋은 것이 글이라는 꿈이었다. 모두 다른 모양에서 빚어 나온 글들은 색색의 종이비행기가 맑은 하늘을 수놓은 것처럼, 다양한 삶과 많은 이야기들을 만나게 해 주었다. 하늘은 더 이상 파랗지만은 않았다. 삶의 온갖 빛깔과 향기를 담은 하늘은, 그래서 아름다웠다. 그때 알았다. 삶이 가진 그대로의 모습 그 자체가 가장 좋은 글을 만들고 가장 진솔한 꿈의 모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의 글향기로 물들인 하늘빛은 누군가의 가슴을 적시고, 다른 사람들의 향기가 묻은 글은 나의 가슴에 내려앉는다. 글들이 스쳐간 마음에는 향기가 남는다. 그렇게 브런치라는 창공에서 글은 피어나고, 다시 꿈이 된다. 나여도 괜찮은, 나라서 더 좋은 공간에서 넓은 하늘을 향해 날아갈 수 있는 법을 나는 조금 배운 것 같다.
더 이상 상처 하나 없는 깨끗한 꿈을 바라지 않았다. 나는 접힌 부분에서 다시 시작했다. 접힌 선을 따라 양쪽으로 날개를 접었다. 종이비행기의 날개를 접듯, 상처의 상징이던 자국 위에 희망의 자국을 꾹 눌러 접었다. 상처와 희망을 끌어안은 삶을 글에 담으며 나의 꿈은 날아올랐다.
브런치, 그 창공의 한 조각은 나의 하늘이다. 그곳에서 나는 가슴에 있는 이야기를 글로 쏘아 올리며 하늘을 난다. 삶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내가 꿈을 알아줄 때 나는 살아있게 된다. 브런치는 자주 발길을 두고 들여다보며 애틋한 꿈을,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글을 접어 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나는, 나이고 싶은 내가 될 수 있다.
이제 나는 더 큰 꿈을 꾼다. 날아오른 나의 글이 더 넓고 높은 곳으로 날아갈 수 있기를. 그곳에서 더 큰 날개를 달고 파란 하늘을 나의 빛깔로 물들이는 꿈이다. 그 꿈이 아직은 손에 잡히지 않더라도, 이제 나는 꿈을 가두지 않는다. 대신 매일 조금씩 더 높게 꿈을 날려볼 것이다. 그 꾸준함의 힘을 나는 믿는다.
오늘도 종이비행기를 접는 마음으로 브런치로 들어선다. 더러는 아팠고 더러는 괜찮았을, 그 평범한 하루를 나는 적는다. 별일 없는 오늘과 평범한 사람들을 기록하며 나의 오늘이 꿈으로 반짝이고 있음을 발견한다.
하늘이 맑다.
글을 써야겠다.
나는 브런치에서 꿈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