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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혜 Dec 27. 2022

스타벅스에서 뜬금없이 짜증이 치밀었던 이유

그날의 공허함에 괜스레 외쳐본다


12월 26일 용(남편)이 회사를 하루 쉬게 되었다.

썩 마음에 들 정도로 마땅히 갈 곳이 없었고 마침 크리스마스 다음날이다.

그리하여 연간회원으로 계약되어 참새가 방앗간으로 날아드는 것과 같이 뻔질나게 왔다 갔다 하는 에버랜드로 간다.

요 며칠 책 몇 줄도 읽지 못했던 참이라

 아이들겨울시즌 한정 즐길거리인 썰매장으로  겨를이 없이  떠나게 한 후,

입구에 자리스타벅스 매장차가운 아침의 공기를 마음껏 느며 달뜬 얼굴로 어간다.


에버랜드에서 발견한 행복이를 닮았던 솜사탕

"Kt멤버십 vip 포인트사용할게요.  바닐라크림콜드브루 그란데 사이즈 한잔 주세요."

"네, 드시고 가실 건가요?"

"네 , 매장에서 마시고 갈 거예요"


평일에다 퍽 차가운 날씨지만 에버랜드 내에는  생각보다 이용객들이 많았고,

이런 상황은  스타벅스 매장안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주문한 음료를 들  테이블을 잡고 앉아

여유가 있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 제법 차분하게 책을 펼쳐본다.

얼마나 지났을까  ,

온리 아이스로만 만들어지는  바닐라크림  콜드브루를 차가운 공기에 빠르게 들이켜서였나 보다.

슬슬 화장실이 가고 싶다.

매장바깥으로 걸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몹시 번거롭고 성가신 상황이지만 어쩌겠나,

(에버랜드스타벅스매장 내에는 화장실이 별도로 없어 매우 안타깝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자리를 비울테지만 ,

가지고 온 책 두 권과 삼분의 일 쯤 남은 라테 잔을 표식으로  올려두었다.

그리고 얼마 전  뚜껑에 손잡이가 달려 있어서 들고 다니기 편하겠다 싶은 생각에 퍼뜩 사들인  스타벅스 텀블러도  '이곳은 아직 떠나지 않은 자리입니다. 제음료가 아직 남아 있거든요 '

나만의 방식으로 정성 들여  가만히 두고 여전히 차가웠던 공기를 느끼며 종종걸음을 옮긴다.






여자화장실은 어딜 가나 줄이 꽤나 길 때가 많은데 이날도 그랬다.

그런데 빨리 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왜 자꾸 들었는지,

초조한 걸음을 재촉하여 급히 자리로 돌아갔다.

이런 것이 촉이라는 것인가,

낯선 사람  한 명, 두 명, 세명, 네 명

정확히 네 명.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외국인 일행 네 명이  하얀 치아들을 내보이며  여유롭게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테이블 위에 정성 들어 올려뒀던 나만의 표식을 사뿐히  밀어버리고 그들의 음료와 케이크를 곁들여서 말이다.


문화차이인 건가, 모르겠고.

난 내 책과 남은 음료 텀블러를 몹시 간절하게 되찾고 싶었다.

"똑. 똑. 똑 "

"익스큐즈미, 디스 시트 이즈 마인"

"디스 북 이즈 마인"

"디스 컵 이즈 마인 투"

속사포랩을 하듯 매우 급하게 이방인들을 향해 내뱉는다.

(나에겐 당황을 하면 생각 과는 다르게

 몹시 빠른 말을 하면서 조금 멍청해 보이

 얼굴 보이는 습관이 있다고   이 그랬다)


그 뒤에 그들은 아마도 이렇게 말했던 거 같다.

미안한데  빨리 먹고 가겠다고,

아니면 한자리쯤 비워 줄 테니까

 다 먹을 때까지 대강 끼어서  앉아 있,




매장 내가 시끄러웠기 때문에

우리들의 대화가 크게 집중되어 들리지는 않았을 테지만

낯이 화끈거리고 시선이 집중되는 것만 같았다.

(집중되는 시선을 몹시 격하게 싫어하는 내향형 인간이다)


"노우. 잇츠 오케이. 벗뜨 퀴클리 잇트"

(빨리 이 상황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생각하며 또 랩을 뱉어냈다)


몇 분이 지났을까, 그들이 자리를 떠나며 미안 말을 건넨다.

"잇츠 오케이.  엔조이 유어 트립 "

낯이 여전히 뜨거웠지만 ,

한국인의 매너를 조금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이 떠나고 , 삼분의 일쯤 남았던 바닐라크림 콜드브루 라테도 떠나보냈다.

뭔가 홀가분해진 기분이 들어

텀블러뚜껑을 열어 차를 마셔보려던 그 순간,

짜증이 확 치민다.


 너의 뚜껑 손잡이는 예뻤었지 ,


오늘번째였다. 나풀나풀하게 손잡이를 들고 나온 말끔했던 텀블러.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뚜껑에 흠이난 흔적이 매우 또렷하다.

용기를 내어 옆테이블 사람들에게 본다.

" 혹시 아까 외국사람들이 이 자리에 앉았을 때  텀블러 떨어지는 거 보셨나요? 아니면 떨어지는 소리 던가  들으셨나요? 제 텀블러 뚜껑이 찍혀있어 너무 속상해서 여쭤봐요 휴, "

"네 , 소리도 들었고  떨어지는 것도 봤어요"

아무래도 한국인의 매운맛을 조금 보여줄걸 그랬나 보다.


공허한 마음에 괜 소리 내어 보고 싶다.

야, 이것들아.

내 텀블러 어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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