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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mena Oct 13. 2022

스웨덴의 수면의 과학

인간의 적정 수면 시간은 몇시간일까?

*동명의 영화 제목과는 관련없는 이야기입니다. (커버 이미지: 영화 <수면의 과학>,  출처: https://www.playpilot.com/se/movie/the-science-of-sleep/)




학창시절의 나는 좋은 학생은 아니었지만, 성적은 좋은 학생이었다. 학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공부는 좋아했고, 시험기간과 모의고사 치르는 날을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말하는 소위 '명문대'를 다녔고, 또다른 명문대의 대학원을 졸업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스웨덴의 대학원도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니고 있으니 공부와 아주 연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 -성인 말고- 이 된 지금, 학교 성적은 기억조차 나지 않을뿐더러 지금의 인생에 그 어떤 의미도 없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라는 성적만능주의에 일침을 가하던 오래된 문구가 옳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었다. 공부만 잘하면 됐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아직도 대학 및 대학원 친구들과 농담으로 고등학교때가 우리의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하고 농담을 하곤 한다. 공부와 연구, 그리고 성적은 실은 꽤나 동떨어진 별개의 개념이다. 돌이켜보건대, 학창시절의 나는 공부 그 자체보다는 성적이 잘 나오는 기쁨을 즐겼던 것 같다. 시험이란 건 마치 게임처럼 이만큼의 인풋을 넣으면 꼭 이만큼의 아웃풋이 나오는 (비교적) 정직한 세계였다. 그래서 일주일에 7일을 학원에 가는 일정을 즐기기까지 했고, 공부한 흔적이 남은 문제집과 스스로 정리한 노트가 가끔 꺼내 보는 스스로의 자랑거리였다. 공부 그 자체도 즐거웠고, 기대한 만큼 나오는 성적은 더 즐거웠고, 이 성적이 내게 보장해줄 찬란한 미래가 기대됐다. 


그랬기에 친구들과 만나서 노래방에 가거나, 유행을 쫓아 새로운 옷을 구경하거나,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의 일정을 꿰고 있다가 챙겨보는 십대의 기쁨들을 사치로 여겼다. 심지어는 자습 시간에 학교 수업과 관계 없는 책을 읽으면 혼나던 시절이었다. 당장 다음주가 기말고사인데 소설책을 읽고 있냐며 책을 빼앗겼던 기억이 난다. 그때 한창 빠지기 시작했던 외국 영화와 소위 미드 역시 공부의 크나 큰 적이었다. 영어 듣기 실력을 늘린다는 핑계도 한계가 있었다. 공부를 하면서 그 모든 것을 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니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되었던 것은 바로 잠이었다. 

 


당시에도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유명한 학업증진용 멘트가 여럿 있었다. 미래의 배우자에 관한 농담도 있었고, 대학교 이름을 놓고 우리 집에서는 서울우유, 연세우유만 마신다는 농담도 있었다. 그중에 가장 흔히 사용되던 것이 바로 잠을 경계하는 내용이었는데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뜻의 사당오락,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안자고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같은 문구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당시에도 수면의 중요성에 관한 인식이 없던 것은 아니라, 수능이 다가오기 100일 전부터는 12시 전에 자는 습관을 들이라는 학습 전문가들의 권고가 있었는데, 이 수면 시간이 고3들에게 있어서는 꽤나 관대하게 들렸던 동시에, 그렇게 일찍 자면 공부는 언제 해? 라는 불안감을 표현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잠은 게으름의 상징이었고 고등학생으로서, 그리고 이후에 대학생이 된 후에도 시험과 과제 기간이 다가오면 밤을 새는 건 당연한 일상이었다.

 


밤을 새는게 정말로 공부를 하거나 과제를 하는데 있어 효과적이었을까? 최소한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누군들 밤 새는 걸 좋아하겠냐며, 그래도 시간적인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고, 아예 안보는 것 보다는 졸린 눈으로라도 한번 더 보는게 낫다고 믿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 수록 점점 밤새는 게 힘들어졌다. 밤을 새기는 커녕, 평소보다 두어 시간이라도 덜 자면 도저히 일상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회사에 다닐 때는 피곤하긴 해도 최소한 수면 시간을 방해받을 일은 잘 없었는데, 퇴사 후 다시 대학원에 돌아가서 학교 수업과 과제를 해치우고, 각종 연구 프로젝트와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하려니 다시 수면 시간을 박탈당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기숙사에 사는 이들을 빼고는 그 누구에게도 가깝지 않은 관악산에 있는 모 학교를 서울의 반대편 끝자락에서 통학하면서 수많은 수면 시간을 대중 교통에서 보내는 시간에 빼앗겼다. 자리가 있어서 쪽잠이라도 잘 수 있으면 다행이었고, 때로는 만원 버스에서 미처 못다 쓴 에세이를 마무리하는 일도 있었다. 겨우 두세 시간 눈을 붙인 뒤 조교로 들어가야 하는 수업에 가기 위해 추운 길거리를 나서는 아침에는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이루는 건 모르겠고, 그냥 잠을 자고 싶었다. 



나이를 좀 더 먹고 스웨덴에 사는 지금, 밤을 새는 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다음 날 늦잠을 잘 수 있더라도 새벽까지 깨어있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매일 7시간 이상의 수면 시간을 확보하려고 하고, 육체적으로 피로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8시간 이상 자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서 잠이 늘었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반대로, 학생 때처럼 휴일이나 시험기간이 끝났다고 열 몇시간을 내리 잘 수 없어졌다. 아침이 되면 눈이 떠지고, 몸은 피곤할 지언정 정신은 말똥말똥하다. 나이 먹으면 아침잠이 없어진다고들 하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단순히 졸리니까 자고, 눈이 떠지니까 일어나는 것보다는 조금 더 의도적으로 수면 리듬을 조절하고 있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수면 시간과 학습 효율, 그리고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해 알게 된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였고, 두번째로는 스웨덴에 살면서 그 상관관계를 눈으로 보게 된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



이 글 타래의 주제가 '스웨덴'이니만큼, 수면의 과학에 대한 의학적인 이야기 대신, 왜 내가 스웨덴에 살면서 수면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 하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 스웨덴의 아이들은 수면 시간을 빼앗겨가면서 공부를 하지 않는다. 물론 십대 시절에 게임에 빠져 밤을 지새우고, 메탈 음악이나 EDM 음악이 나오는 헤드폰으로 귀를 막고 스웨덴의 긴긴 겨울 밤을 보내는 아이들도 당연히 많다. 하지만 스웨덴의 아이들이 학창시절에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그래서 밤새워 공부를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우선 스웨덴의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아주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도록 배운다. 10세 이하의 어린 아이는 저녁 7-8시에 잠자리에 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모님이 퇴근해서 함께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한다든가, 이야기를 나누는 등 잠시 시간을 보낸 뒤 아이들을 바로 재우는 것이다. 어린이집, 학교는 보통 7-9시 사이에 시작하니 아이들은 10시간 이상의 충분한 수면을 취한다. 나이를 조금 더 먹으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자연스레 늦어진다. 그리고 스웨덴 아이들도 공부를 한다. 결코 마냥 놀기만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부란 건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하는 것이고, 과제와 보충 학습 역시 학교를 마친 뒤 오후에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게임을 한다든가 방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등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하느라 늦은 새벽까지 깨어있는 경우는 있어도, 학창 시절에 새벽까지 깨어서 공부를 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하루에 12시간 이상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고 공부를 했다고 하면 모두가 놀랐다. 수업을 마친 뒤 저녁에 하는 야간 자율학습이 실제로는 '자율'이 아니라 의무인 경우도 있었다고, 학원에 가는 경우에 한해서 야자를 빼먹을 수 있었다고 하면 모두들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씁쓸했던 것은, 단순히 학창시절에 잠을 빼앗기고 피곤한 나날들을 보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게 잘 것 덜 자가면서 한 공부가 성인이 된 후의 우리의 삶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내가 느꼈던 안타까움의 정체였다. 같이 동아리에 들자던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친구 무리에게 학원에 가야 해서 안되겠다며 거절했던 것, 무료 혹은 저렴하게 배울 수 있던 각종 스포츠 활동은 커녕 학교 체육시간에조차 자습 시간을 받아 문제집을 풀었던 것, 어릴 적 배워서 꽤나 치던 피아노를 거의 다 잊어버린 것 등은 모두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매일 졸린 눈을 비벼가며 아침밥을 먹고 가라고 하는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 한 개만 더 먹으라며 엄마가 입에 넣어주는 김에 싼 밥을 선심쓰듯 입에 넣고 젖은 머리가 찬 공기에 어는 걸 말리지도 못하고 학교에 갔던 그 시간들이 모두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 스웨덴 아이들은 학창 시절에 8시간씩 자고, 악기 연주를 배우고, 목적 없이 동네를 걸어다니기도 하고, 방학이면 시골집에 가서 공부는 일절 잊고 숲 속을 돌아다니며 자연에 대해 배운다. 그 시간들은 결코 무용하지 않아서, 스웨덴 사람들은 누구나 웬만큼 이상 요리를 할 줄 알고, 이케아의 나라답게 가구를 조립할 줄 알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과 대화할 줄 알고, 비교적 어린 나이에도 운전과 집 수리에 능숙하다. 호수의 나라답게 수영을 할 줄 모른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으며, 운동을 즐겨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몇 가지 이상의 구기 종목을 일정 기간 이상 해본 경험이 있다.



그도 그럴것이, 스웨덴의 학교 시스템에서 성적은 기본적으로 pass or fail이다. 물론 A - F까지 점수가 구분되어 나오고, 고등 교육기관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특정 과목에서 C 이상을 받아야 한다든가 하는 학제상의 제한이 있다. 하지만 이는 최소한의 자질을 보장하는 수단일 뿐, 1등을 해야 더 좋은 자리를 얻을 수 있다든가, 더 좋은 학교나 직장에 갈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를 위해 학원이나 개인 과외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혹여 이번 학기에 원하는 성적을 받지 못하면 다음 학기에 이어서 다시 시험을 치르면 된다. 스웨덴 학교에서 시험은 거의 무한정 재도전이 가능하고, 스무살에 바로 대학에 가든 혹은 일을 하다가 그와 무관한 새로운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에 가는 것도 일반적이기에, 잠을 줄여서 몸을 축내가면서 학창시절에 공부를 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이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똑똑하지 않은가 하면, 글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학창시절에 8시간 꿀잠 자면서 학교를 다닌 친구들도 대학과 직장에서 제 몫 이상을 충분히 해낸다. 영어로 된 논문을 읽는데 아무 어려움이 없고 상식 역시 풍부하다.



잠을 줄여가며 했던 나의 공부 역시 아주 무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 많은 내용을 짧은 시간 안에 배웠고, 효율적으로 중요한 내용만 짚어서 학습하는 전략을 익혔다. 하지만 동시에 일정 '시간'을 단위로 하는 공부 습관은 자율적으로 해야 하는 연구나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큰 장애물이 되었다. 무엇보다 일정 시간 이상의 수면의 중요성을 깨달은 지금, 몸과 뇌가 한창 자라던 시절 잠을 줄여가며 받았던 스트레스가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조언을 구하는 고등학생들에게 항상 충분히 자라고, 그리고 학교 성적에 집착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과 성적에 집착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개개인별로 적정한 수면 시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하루 이틀 정도를 버틸 수 있다는 것이 당신의 적정 수면 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누군가는 6시간만 자도 개운하고, 누군가는 8시간 이상 자야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하지만 매일 4시간만 자도 괜찮은 사람은 정말로 극소수이고, 매일 피로감을 느낀다면 당신은 그 극소수가 아니다. 


그러니 우리, 수면의 과학에 귀를 기울이자.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서 잠잘 권리를 빼앗지 말았으면 좋겠다. 공부도 하지 말고, 매일 아무렇게나 늦잠을 자라는 의미가 아니다. 잠을 자는 것을 게으르다고 생각하지 말고, 인간이 일정량의 음식을 먹는 것이 당연하듯 일정 시간 이상 자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인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말똥말똥한 눈과 신선한 뇌로 공부도, 사회 생활도, 운동도 더 생산적으로 잘할 수 있다. 그럼 모두들 좋은 수면 하시길! God na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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