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8일의 일기
네가 아프다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단장지애가 이런 뜻이구나
알고 싶지 않았던 감정들이 사무친다
두려웠다
너를 잃게 될까 봐 너무너무 무서웠다
태어난 지 100일도 채 안된 딸을 보냈던 고모의 모습이 떠올랐다
매일 아픈 아기를 안고 응급실을 전전하던 막내이모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들의 모습이 내 미래가 될 수 있다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너는 내가 만든 가장 완벽한 것인데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아가인데
믿을 수가 없었다
나의 모든 인생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너를 가진 걸 알았을 때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렇게 됐나
내가 임신기간에 너무 과로를 해서 그런가
임신기간에 체중관리를 못해서 이러나
먹었던 음식이 문제였나
내가 임신 전에 먹었던 다이어트약이 문제였나
조리원에서 3주나 있던 게 잘못이었을까
다른 아픈 아기의 부모들을 보며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쉽게 단정하고 내심 안도하며 편하게 그들을 동정했던 나를 하늘이 벌주는 걸까
너를 끌어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눈이 따가워서 잘 떠지지 않을 때까지
아프고 괴로워 우는 너를 끌어안고 나도 같이 울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 아기
네가 이렇게 괴로운 것이 오로지 나의 잘못 때문인 것 같아 죄책감이 나를 덮쳐 흐른다
미안해.. 엄마가 너무너무 미안해..
울면서 수천번을 중얼거렸다
네가 건강하게 크길 바라는 마음으로 줬던 분유가 폐로 들어가서 널 아프게 하고 있었다니
너에게 내가 독을 먹인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배고프다 울며 보채고 누구보다 맛있게 젖병을 빠는 너에게 수유를 안 할 수도 없었다
수유를 하는 그 순간이 지옥이었다
너를 살리면서 동시에 너를 죽이고 있는 듯한 끔찍한 기분
엉엉 울면서 마지막 수유를 했다
그리고 시작된 금식..
금식하는 시간도 끔찍하긴 마찬가지였다
너에게 분유를 주지 않는 것도 분유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너를 살리면서 동시에 너를 죽이고 있는 기분이었으니까
너를 안고 있는 팔에 근육이 경련이 올 것 같을 때마다
며칠째 제대로 잠들지 못한 몸뚱이가 무너져 내릴 것 같을 때마다
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혹은 네가 예상보다 많이 아픈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덮쳐올때마다 되뇌었다
나는 엄마다
나는 엄마다
나는 너의 엄마고 너에게 내 모든 걸 줄 준비가 되어있다
앞으로 널 위해 독하게 살아내야 한다
이를 악물었다
널 낫게 해야 되니까
빌고 또 빌었다
너의 모든 아픔 슬픔 불행은 전부 나에게 오고
나의 모든 행운 기쁨 행복은 전부 너에게 가라고
너의 나쁜 것은 내가 몇 배든 대신할 테니 나의 모든 좋은 것은 너에게로 모두 주게 해달라고
신앙이 없던 내가 하느님을 찾고 부처님을 찾고 천지신명을 찾았다
다행히 넌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된단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사실 두렵다
네가 혹시 더 아픈 곳이 있을까 봐
지금 발견한 것 말고 다른 발달도 혹시 느릴까 봐
그렇지만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나는 너의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하니까
그리고 수천수만 번을 빌고 또 빈다
그저 네가 건강하기만 해달라고
다들 지금은 네가 건강하기만을 바라지만
몇 년 뒤에는 네가 공부를 잘하길 바라게 된다고 한다
지금 같아선 절대 안 그럴 것 같다
공부 따위..
전교꼴등을 하는 게 대수인가
내 새끼가 지금 아픈데..
그저 건강하게 낫기만을 빌고 있는데..
공부걱정은 지금의 나에겐 너무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부디 나의 미래가 그런 사치스러운 걱정들로 채워지길..
그리고 그런 감정이 사치라는 걸 잊지 않는 내가 되길 바란다
지지고 볶고 산다는 게 이런 말인가 싶다
별의 별일을 다 겪으면서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새해가 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전혀 실감은 안 난다
부디 지금의 이 슬픔이 나중에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지나간 추억이 되기를..
너를 낳고 나는 또 새로운 차원의 감정을 느끼게 됐다
사랑과 기쁨과 행복의 새로운 차원이 열렸듯
절망과 슬픔 그리고 책임감의 새로운 차원이 열린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나 보다
내 사랑하는 아가야 부디 아프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