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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르미 Apr 27. 2021

주례석에서만 보이는 것들

결혼을 앞둔 신랑 신부들에게

  주례석에서만 보이는 풍경들이 있고, 그 자리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다. 긴장이 역력한 신랑 신부의 표정. 어색함과 설렘이 공존하는 두 사람만의 미묘한 분위기.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신부 아버지의 미소. 결혼식 중에는 사진 찍어주시는 선생님과 사회자, 그리고 주례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내 나이 마흔 남짓에 주례한 커플의 수를 양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니, 참 어린 나이에 많이도 했다. 누가 그러더라. 기네스북에 오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이제 프로 주례러(?)는 여유 있게 뒤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런 시대(?)에 결혼까지 결심한 용기 있는 두 분을 응원하며, 결혼 전에 보통 누가 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조금 하려고 한다. 별 것 아니지만 중요한 얘기들. 예식장에서 챙기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디테일들이다.



  먼저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면, 신랑은 신부의 손을 넘겨받는다(?). 그때 신랑은 신부의 손을 잡는 퍼포먼스에 집중한 나머지, 딸을 보내는 아버지를 배려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 날 신부의 아버지는 평생에 연모하던 영혼의 뮤즈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정중히 인사하고 한번 안아 드리는 것이 좋다.


  그다음부터 신랑은 오로지 신부만 챙기면 된다. 신부의 걸음에 맞추고, 신부의 표정을 살피라. 무엇이 불편한지, 아프지는 않은지, 세심하게 보라. 결혼식 퍼포먼스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실수해도 아무도 기억 못 한다. 나는 혼인 서약 때 크게 대답하려다가 "네엨↗"하고 음이탈이 났었지만, 지금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뿐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신부가 경험할 섭섭함 들은 차곡차곡 적립된다.


  다 살피지는 못할지라도, '내 눈엔 너만 보여.'라는 남자의 자세가 여자의 눈에 보일 정도면 그녀는 그걸로 다 괜찮아진다. 이것은 결혼식 날만 그런 게 아니라, 결혼 생활 전반의 지배적인 원리이다. 우리는 멋진 부부의 퍼포먼스를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결혼하는 게 아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 결혼한다. 내 여자를 사랑하기 위해 하는 실수는 멋진 실수다. 그것이 잘 사는 비결이다.


  주례를 혹시 세운다면, 두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을 세우라. 유명한 사람 다 필요 없다.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사람도 필요 없다. 신랑 신부가 결혼의 중심에 있게 해 주는 사람. 결혼식 이후에도 두 사람이 편하게 찾아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이면 더욱 좋다. 나 역시 주례한 부부에게 A/S는 평생 하고 있다. 철저히 이용당해주리라. 그대들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부모님과 하객들께 인사드리는 시간이 있다. 보통 신랑은 절을 하고 신부는 가슴께를 살포시 손으로 가리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그래야 한다고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하는 게 예쁘더라. 그리고 부모님들도 긴장하고 계시기 때문에 잘 모르신다. 주례나 사회자, 예식 관계자가 챙기지 않는다면, '아버님, 어머님, 저희 한번 안아주세요.' 하며 다가가야 하는 것은 신랑의 몫이다. 그때의 허그는 평생 한 번밖에 기회가 없다. 그러기를 바란다(웃음).


  마지막, 신랑 신부 행진을 할 때 나는 보통 남자들을 본다. 세 부류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앞만 보고 걸어가는 남자다. 그는 이제 식이 끝나가는데도 신부의 손과 함께 움켜쥔 긴장의 끈을 부여잡고 놓지 않는다. 순수한 남자다. 그렇지만 함께 살 때는 어떨지 모르겠다. 지나치게 순수한 것도 여자를 피곤하게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주변에 인사하느라 바쁜 남자다. 이 사람은 호인이다. 그러나 신랑이 주변에 인사하느라고 좌우로 고개를 들썩일 때 드레스 아래 킬힐을 신은 신부는 걷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남자다. 인사는 나중에라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인사하지 않아도 아무도 섭섭해하지 않는다. 고마운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제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먼저다.


  세 번째는 신부를 살뜰히 챙기며 행진하는 남자다. 지혜로운 남자다. 그는 이제 다른 사람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그의 손과 걷는 속도는 철저히 신부를 배려한다. 영혼을 끌어모은 코르셋이 그녀에게 눈부신 아름다움과 함께 가져다준 것은 호흡 곤란과 요통이다. 체력이 약한 신부라면 다음 날 몸살이 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내 여자를 챙기는데 집중한다.


  순수한 남자도 좋고, 좋은 사람도 좋고, 지혜로운 남자도 좋다. 미리 알고 선택할 수 있다면 세 번째가 좀 낫기는 하지만, 살아보면 별 차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어떤 사람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냥 내 옆에 있는 사람이라서 가장 좋고, 그게 변하지 않는다면 행복한 결혼이다. 오늘의 실수가 내일의 추억이 되고, 어제까지의 섭섭함은 오늘 행복의 쓰나미에 묻히기를.



  주례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저녁 시간 야외 예식장이었는데, 분위기가 미쳤었다. 다 좋았는데 1층에 갈빗집이 있는지 주례석에 앉아 있는데 고기 굽는 냄새가 솔솔 올라와서 옥상 난간에 앉은 주례도 분위기와 함께 미칠 뻔했다. 두 분, 살다가 혹시 힘든 날이 오면, 거기 갈빗집에서 만나요. 내가 살게. 결혼이 원래 그런 거지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요. 같이 고기나 먹어요.


  잘 사세요.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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