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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르미 May 25. 2021

"결혼할 때 너희 집에서 해 준 게 뭐가 있어?"

'너희 집'이라는 말이주는 상처에 대해

  "결혼할 때 너희 집에서 해 준 게 뭐가 있어?"


  결혼을 준비할 때나 결혼해서 갈등이 시작될 때 한 번쯤 나올 수 있는 말입니다. 별로 좋은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결혼하기 전에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지요. 아직 결혼하지 않았으니 '우리 집'과 '너희 집'은 그래도 아직은 다른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단 결혼한 후에는 아닙니다. 서로 '너희 집'은 없고, '우리 모두의 집'만 있습니다. 이게 때로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문제로 발전합니다.




   사실 서로 '다른 집'에 살 때는 각자 집에 가서 자고 나서 다시 만나면 되었습니다. 적어도 하루 한 번은 각자 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보통 하나의 문제를 풀고 그다음 문제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일상 가운데 부부는 공유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쏟아지는 여러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때로 어떤 문제는 객관식인데 답이 없는, 출제자가 원망스러운 문제입니다. 시댁이나 처가와의 관계 문제, 거기에 돈 문제까지 결부되면 쉽지 않습니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누구 한 사람이 노력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김치 싸대기와 얼굴에 물 뿌리는 장면은 아침 드라마의 클리셰가 되었습니다. 현실에서는 그렇게 해도 풀리지 않기에 이 문제는 실제로 어렵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문제를 풀기 위해 스스로 객관적이고 싶어 합니다. '너희 집' vs. '우리 집'의 대결 구도도 거기서 출발합니다. 보통 "너희 집에서 해 준 게 뭐가 있어?"는 싸움에서 몰리다가 불리한 쪽이 꺼내 드는 비장의 무기입니다.


  그런데 좀 더 들여다보면, '결혼'이 무엇인지 잘 모르거나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해프닝입니다. 대부분의 부부는 결혼 때 혼인서약이라는 것을 합니다. "앞으로 조건이나 이유, 상황에 관계없이 서로 사랑(하려고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는 것이 이 서약의 골자입니다. 세부 조항이나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합니다.


  우리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결혼의 중요한 요소는 '약속'입니다. 약속으로 맺어진 관계는 돈으로 맺어진 관계보다 힘이 있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당장 내가 힘들면, 그때 약속을 했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저는 주례할 때마다 혼인서약 전에 꼭 묻습니다. "지금부터는 무를 수 없습니다? 잘 생각하고 대답하세요." 하객석에서 '왁'하고 웃음이 터집니다. 농담 같지만, 저에게는 뼈가 있는 말입니다. 좀 친한 부부에게는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지금까지는 서로 조건도 보고, 외모도 보고, 형편도 보셨겠지만, 지금부터는 그런 것에 상관없이 오직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살겠다.'는 의미입니다. 알고 계시죠?"


  물론 이보다 훨씬 복잡한 상황과 마음이 각각의 결혼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때로는 사기당한 기분이 들 정도이니까요. 이런 말을 자주 하는 분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아니 실제로 해 준 게 없어서 없다고 하는데 그게 뭐 잘못인가요? 사실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죠." 


  그러나 "너희 집에서 해 준 게 뭐가 있어?"라는 말은 좀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배우자에게 이런 뜻으로 들리는 말입니다. 


  "나는 사실 너희 집에서 해 준 것이 우리 집에서 해 준 것과 비슷해야 결혼하려고 했는데, 네가 조르니까 어쩔 수 없이 결혼해 준거야. 즉 너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형편을 따라 사랑하는 거지."


  "나는 너희 집에서 해준 게 우리 집에서 해 준 것보다 적기 때문에 평생 다툼이 있을 때마다 이걸 무기로 삼아서 너를 괴롭히고 너를 지배할 거야."


  앞으로 진짜 안 살 거면 할 수도 있겠죠. 일부러 상처 주고 복수하기 위해서. (그것도 모양 빠지는 일이기는 합니다. 한 마디 더 뱉는다고 속이 더 시원할 것도 아니고, 어버버하고 나중에 이불 킥하느니 쿨하게 헤어지는 게 낫죠. 그냥 변호사나 서류를 보내는 편이 더 통쾌합니다.) 그러나 계속 살 거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군기 잡는 용도(?)로 할 말은 아닙니다.




  '너희 집' '우리 집'이 나눠져 있는 부부는 결혼은 했지만, 어찌 보면 아직 연애 중인 것과 같습니다. 언제든 '자기 집'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지요. 사람이 최후의 보루로 도망갈 구석을 하나 남겨 놓는 것이 본능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계속 살 생각이라면, '우리 집'에서 살아도 힘든데 '남의 집'에서 살면 더 힘들지 않을까요?


  돈이 지금보다 더 많았다면 이런 문제로 싸우지도 않았겠지요. 주변을 보면, 30~40대 많은 부부들이 돈 때문에 힘듭니다(저희 부부 포함). 돈 때문에 힘들다고 솔직히 말하기가 구차해서 말을 잘 꺼내지 않을 뿐이지, 돈 때문에 싸우고, 돈 때문에 사랑할 힘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돈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부부 관계가 돈에 질질 끌려 다녀서 더 힘들게 느껴진다면, 그러지 않기를 선택하는 것이 모두에게 더 현명한 길입니다. 저는 그냥 카드 빚내서 식구들 다 같이 고기나 한판 구워 먹고 저녁에 'X팡 이츠' 뛰러 갈랍니다. 얘들아, 아빠가 돈은 없지만 고기는 사줄 수 있다. 걱정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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