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일 사용법
하얀색 만년필을 선물 받았다.
몇 번 쓰다 보니 자꾸 잉크가 묻어 손에 얼룩이 졌다
내가 혹시 잘못 사용하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에 만년필 사용법을 검색했다.
만년필은 손에 힘을 빼고 쓰는 필기구라는데, 나는 자꾸 볼펜처럼 앞쪽으로 당겨 잡고 지나치게 힘을 주어 꾹꾹 눌러썼던 게 문제였나 보다.
만년필을 손가락 한마디만큼 멀리 잡고, 흘려쓰듯 힘을 빼고 썼더니 더 이상 손에 잉크가 묻지 않았다.
글씨도 힘을 주고 쓸 때보다 더 자연스러웠다. 오래 써도 손목이나 어깨가 아프지 않았다.
나는 나를 볼펜처럼 썼다
자리를 바짝 당겨 앉고, 어깨를 둥글게 말고, 손목을 곧게 세운 후 힘을 주어 나를 꾹꾹 눌러썼다.
힘이 잔뜩 들어간 글씨들은 마치 날아가려던 나비들을 붙잡아 네모난 액자 안에 건조표본으로 만든 것처럼 칸칸이 반듯하면서도 생기가 없었다.
나는 나를 볼펜처럼 쓸 때 만족스러워했다.
볼을 굴려 글씨를 쓰는 볼펜처럼 나를 돌돌 굴려가며 쓸 때, 손가락에 펜 혹이 배기고 손목에 피로감이 느껴질 때, 그제야 내 일을 다한 것처럼 펜을 내려놓곤 했다. 나의 고통은 나의 성실함의 증거라, 고통을 만족스러워하고 무통을 불만족스러워했다.
이제야 나는 나를 만년필처럼 쓰는 법을 배운다.
손가락에서 힘을 빼고 종이 위에서 펜 촉과 어색한 춤을 춘다. 힘이 들어갈 것 같으면 만년필을 한마디 뒤로 잡고 한걸음 물러나 다시 나를 쓴다. 자연스럽게 힘이 빠지며 진짜 나의 글씨가 보인다.
말라죽은 줄 알았던 나비가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