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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성일 May 27. 2022

멕시코 마피아에게 텔레비전 사기 당한 날

#멕시코마피아 #텔레비전사기 #한국인20대직장인이모씨


멕시코 하면 아름다운 칸쿤 바다, 맛있는 음식 등 좋은 것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안전하지 않은 치안과 악명높은 멕시코 마피아 등 부정적인 면도 분명 존재한다. 니카라과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코스타리카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후 멕시코에 직장을 잡은지 얼마 안됐을 때 있었던 일이다. 입사 후 2개월이 막 지났을까, 이제 겨우 적응하려던 신입사원 시절 나는 첫 월급을 받기도 전 사기를 당했다. 그것도 현지 멕시코 마피아에게.


오늘 이야기는 내가 멕시코 현지에서 일하며 겪었던 텔레비전 사기 피해 진술담.

중남미 생활 N연차, 더 이상 웬만한 술수에는 당하지 않는다라고 호언장담했던 내가 겪은 이야기.


병아리 사원으로 삐약거리던 때, 고객사와 매주 하던 정기 회의에 통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공장 사무실에 방문했다. 당시 제작하던 제품 진행상황에 대해 보고하고, 여러 이슈들을 두고 의견교환을 위해 매주 화상회의로 진행하는 자리였다. 회의 시작 5분 전, 미리 회의 주제들에 대한 검토를 막 마쳤을 때쯤, 공장 현지 직원 중 한 명이 사무실에 들어와 한국인 상사에게 돈을 좀 빌려달라고 했다.


"좋은 기회가 있어서 급하게 돈이 필요해요! 가기 전에 빨리 사야 한다고요"

"뭘 사야 하는데?"


자총 지종을 들어보니 이랬다. 공장이 있던 위치는 트레일러들이 자주 왔다 갔다 하는 도로와 인접해 있었는데, 자기가 아는 사람이 월마트 트레일러 기사로 일한다고 했다. 그 날 우연히 마주친 그 트레일러 기사가 분실된 것으로 신고된 TV 두 대가 있다고, 싸게 처분하고 싶은데 살 맘이 있냐고 물었단다. 


다른 말로 하면 소위 말하는 장물이다. 


"어떤 TV인지는 말해줬어?"

"ㅇㅇ사의 ㅇㅇ모델인데 ㅇㅇ지원하고 ㅇㅇ기능되는..."


이미 트레일러 기사한테 자세히 물어봤다고, 어떤 회사의 어떤 모델인지도 훤히 꿰고 있었다. 그리고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월마트에서 트레일러 기사로 일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그래도 물건은 한번 보고 사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 장물이라 돈도 안 들고가고 그냥 보여달라고 하면 꺼려한다며 이건 100%이니 그 트레일러 기사가 차 빼기 전에 빨리 사야 한다며 재촉했다. 장모님 댁에 놔드릴 거라며 한껏 업된 직원을 보며 나도 외쳤다.


"나도 살래! 어차피 두 대 라며, 남은 한 대는 내가 살래! 저도 돈 좀 빌려주세요!"


당시 내 연인이 룸메이트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거실에 룸메이트 소유의 큰 TV가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장기화되며 룸메이트가 방을 빼고 부모님 댁으로 가게 되어 TV를 가져갔다. TV가 있던 자리가 비어 휑했다. TV로 넷플릭스도 보고, 노래도 듣고, 게임도 하던 연인이 TV가 없다며 시무룩했던 모습이 생각 나 돈도 없으면서 나도 사겠다고 무작정 내질렀다.


한쪽에서는 직원이 장모님 댁에 놔드리면 얼마나 좋아하겠냐며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고, 다른 한쪽에서는 내가 연인에게 서프라이즈로 줄 선물 생각에 몸이 비비 꼬였다. 한껏 들뜬 우리에게 한국인 상사 분이 현금을 빌려주셨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제 회의에 들어가야 하니 꼭 실물을 확인하고, 플러그도 꽂아보고 작동 다 되는지 확인하고 신신당부도 잊지 않았다. 내 차에 티브이가 다 들어가려나, 생각만 앞서 배시시 웃음이 났다. 


회의가 끝나고, 티브이를 사러 간 현지인 직원이 언제 오나 목을 빼고 기다렸다. 

직원이 돌아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양손에 들려있어야 할 TV가 없었다.


내 테레비!


가까이서 보니 직원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무슨 일이냐며 다그쳐 묻자 대답했다.


"돈 들고 TV 사러 갔는데, 트레일러 쪽으로 가까이 오라고 하더니 먼저 돈부터 달랬어

그래서 TV 실물로 보기 전까지는 돈 못준댔더니, 얻어맞고 돈 줄지, 그냥 줄지 선택하랬어"


TV가 있는 곳이라며 으슥하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유인하더니 돈부터 달라고 했더란다. 현지 직원도 50대에 건장한 남성이라, 제품 보기 전까지는 돈 못준댔더니 한패로 보이는 다른 사람들도 나와서 둘러싸고 협박했단다. 뺏기듯이 돈을 주고, 이제 티비를 달라고 했더니, 


"티브이는 무슨 티브이, 돈 줬으면 이제 얌전히 돌아가쇼"

"아니 TV 사러 온 건데 돈만 빼앗고 TV는 안 주는 게 말이 돼? 갑자기 왜 이래?"

"Somos mafia. 우리 마피아야, 우리 너 어디 사는지도 알고 어디서 일하는 지도 알아. 

수틀리면 너네 가족들이랑 회사도 가만 안 둘 수 있어. 목숨 붙여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운 좋은 줄 알아. 꺼져."


자신을 둘러싼 여러 명의 건장한 사내들 사이의 흉흉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결국 한마디 덧붙이지도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단다. 그 현지 직원은 장모님 댁에 놔드리려고 했는데 바보같이 당하기만 했다고 울고, 나는 나대로 서프라이즈 할 생각에 들떠있다가 되리어 내가 역으로 서프라이즈 당하고 황망히 서있고, 자총 지종을 들은 한국인 상사님은 마피아에게 회사가 표적이 되는 것 아니냐며 공장 셔터를 내렸다.


어쨌든 내가 빌린 돈은 빌린 돈이 니, 상사분께 월급 받는 대로 빌려주신 돈은 꼭 갚겠다고 말씀드렸다. 상사분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돈은 뭘 갚습니까, 만져보지도 못한 돈 서로 잊어버립시다"


아니라고, 그래도 제가 빌린 돈이 니 꼭 갚겠다고 두어 번 더 말씀드렸지만 손을 내젓으셨다.

그리고 끝까지 돈을 받지 않으셨다. 


나는 그날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티브이를 싣고 퇴근하는 게 아니라 실망과 낙심을 싣고 퇴근했다. 그리고 연인을 만나 자총 지종을 털어놓았다. 내가 티브이를 사다 주려고 했는데, 사기당했어. 

연인은 그 이야기를 듣고 웃고 울었다. 평소엔 그렇게 꼼꼼하면서 본인 티브이 사다 주겠다고 들떠서 사기당한 것이 귀엽다고 웃었고, 그렇게 자기를 생각해줘서 고맙다며 눈가를 촉촉이 하고 안아주었다.



Photo by Maxim Hopman on Unsplash


그 이후로 공장은 몇 주 동안 셔터를 내린 채로 일했다. 

그 사람들이 실제로 마피아였든 아녔든 간에 멕시코이니 만큼 조심해야 했다.

다행히 그 이후로도 누가 찾아온다던지 하는 일은 없었다. 


며칠간 축 쳐져 있는 나를 보며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대리님이 물으셨다.


"소성일 씨, 무슨 일이에요?"

"이러한 저러한 일이 있었는데 결국 사기였어요..."

"그거 혹시 멕시칸 현지 직원이 거짓말한 거 아니에요? 짜고 친 거 같은데?"


"... 설마요, 그 사람도 돌아와서 울었는데"

"내 생각에는 둘이 짜고 친 거 100% 예요"


"... 설마요..."



멕시코 마피아 텔레비전 사기 피해자 진술 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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