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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성일 Sep 06. 2022

아빠는 잘 있지, 총 맞을 뻔한 것만 빼면-상

#니카라과에살면 #죽음에한발자국더가까이 #그렇게살게되나보다

<연락은 용건만 간단히>


나는 그렇게 살가운 딸은 아니다. 오히려 연락에 박하고 안부 묻기에 서투른 딸이다.

가족들과 다 같이 살던 니카라과를 떠나 혼자 코스타리카에서 대학 생활을 할 때도,

아무 연고도 없는 멕시코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지금도.


"어, 딸 아빠 지금 니카라과에서 코스타리카로 출발했는데 오후 6시쯤 도착할 것 같아"

"... 제가 지금 코스타리카가 아닌데요? 콜롬비아로 3박 4일 여행 왔어요"

"그래? 그럼 다음에 보지 뭐!"


이런 일들이 부지기수다 보니, 중요하고 심각한 일도 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기도 한다.

오늘은 그런 일들 중 하나, 아빠가 니카라과 길 한복판에서 대낮에 총 맞을 뻔한 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그날의 또 다른 이야기들.


"아빠 오랜만에 연락드리네, 잘 계셔요?"

"아빠는 잘 있지, 지난주에 총 맞을 뻔한 것만 빼면"

"네? 총이요? 누구한테요?"

"뭐라더라, 이 나라 대통령 혁명 시절 동지라든데?"

"... 네?"




아빠는 니카라과에서 중고차 상사를 하신다.

중남미에서도 가장 못 사는 나라, 니카라과.

혁명가들이 독재자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앉아 새로운 독재자가 되어버린 비운의 사회주의 국가.


니카라과 평균 소득 상 할부 없이 턱턱 내고 사갈 수 있는 고객들은 적고, 대부분 할부를 껴서 사는 고객들이 많은데, 이 사람도 그들 중 하나였단다.

다만 니카라과 부자의 상징인 도요타 하일럭스를 타고 온 것으로 봐서는 돈이 없어서 할부로 산 것 같지는 않고, 처음부터 돈을 갚을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고 한다. 총대금의 10%만 계약금으로 치르고, 나머지 돈은 언제 갚겠다는 서류에 서명한 후, 명의이전이 끝나지 않은 차를 인수받고 유유히 떠났단다.


돈을 갚아야 하는 날은 한참 지났는데 연락도 받지 않고 찾아오지도 않아서 골머리를 썩던 중, 아버지가 우연히 은행업무를 보러 갔다가 이 차를 발견하셨다. 차 키는 꽂혀있었고, 기사는 나와서 쉬고 있었던 참이었다니 우연도 이런 우연이.


워낙 특이한 색으로 도색하고 판매한 차라 한눈에 알아보신 아버지는 차를 운전해 5-10m가량 옮겨두고, 유유히 은행으로 들어가 업무를 다 보고 나오니 밖은 아수라장이었다고 한다.


은행에서 나오는 아버지를 발견한 그 사람, 노발대발하며 소리를 질렀다.


"야 이 XX XX야, 내 차 키 내놔!"

"이게 왜 니 차야 내 차지! 돈이나 갚아!"

"너 이 XX"


기사의 연락을 받고 허둥지둥 달려온 그 사람은 급하게 차를 몰고 도망가려고 했으나, 아버지가 이미 차키를 빼서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차에 시동을 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차 키를 내놓으라고 한창 역정을 내다 그 사람은 결국 자기 화를 이기지 못하고 차에서 총을 꺼내 아버지겨누었다.


"너 이 XX 죽여버릴 거야!"


한참 동안 실랑이가 계속되었던 차라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아 아마 함부로 총을 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신 아버지도 맞받아치셨단다.


"쏴봐! 쏴보라고!"


이야말로 일촉즉발의 순간,

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많다고 한들 사실 한번 쏘면 끝인데.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총을 맞으면 아마 즉사일 텐데, 그깟 차가 뭐라고.

대체 무슨 생각과 배짱으로 그러셨느냐고 묻는 내 말에 아버지가 멋쩍게 말씀하셨다.


"그때는 그 사람이 누군지 몰라서, 진짜 쏠 수 있는지 몰랐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 그 사람이 그때 진짜 쏠 수도 있었을 텐데..."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 후덥지근한 날씨.

안 그래도 사람이 많이 오가는 은행 앞.

한참 동안이나 고성이 오간 터라 니카라과 사람들이 몰려있었고

그 눈들과 입이 향한 곳에는 지구 반대편에서 온 작은 남자 우리 아버지가 총구 앞에서 겁먹지도 않고 쏴보라며 눈을 부릅뜨고 그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Foto de Andy Montes de Oca en Unsplash


은행 업무차 동행했던 변호사는 침착하게 모든 상황을 녹화했고, 함께 왔던 기사는 현장으로부터 2-300m 정도 떨어져 있었던 경찰서로 달려가 이를 신고했다.


경찰들이 달려오며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앞으로 있을 모든 일들에 비하면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그 사람은 특이한 사람이었다.


총기 1대를 소지하기 위해서 수많은 서류와 검사를 통과해야 하는 엄격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총기를 13대나 소유하고 있는 사람.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에도 같은 수법의 사기 행각을 일삼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


사기는 애교요,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는 중범죄를 저질러도 경찰서에 신고조차 되지 않는 사람.


나에게 뼈를 주고 살을 붙여준 나의 아버지를 그 자리에서 충분히 죽일 수 있었던 사람.


그는 지금 니카라과의 대통령이 된 다니엘 오르테가와 함께 혁명을 이끌었던 사람 중 하나였고,

그중에서도 악랄한 고문기술자로 악명 높았던 사람이었다.

혁명이 성공한 후에도 포악한 성질을 죽이지 못해 크고 작은 범죄를 밥먹듯이 저지르던 그 사람과 아버지가 지독하게 얽히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아버지는 살인미수 혐의로 그 사람을 고발하려고 하였으나 아무리 여러 증거와 증언을 들이밀어도 경찰서에서는 신고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가 5-10m 옮긴, 아버지 명의로 되어있던 자동차에, 아버지가 몰랐던! 그 사람의 총기가 들어있었다는 사실을 교묘히 이용하여 아버지를 총기 절도 혐의로 몰고 갔다.


형사입건이 눈앞에 있었다.

아빠가 한국도 아닌 니카라과에서 감옥에 간다.


014. 아빠는 잘 있지, 총 맞을 뻔한것만 빼면-상

Foto de Jr Korpa e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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