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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성일 Sep 18. 2022

아빠는 잘 있지, 총 맞을 뻔한 것만 빼면-하

#드라마보다드라마같은이야기 #우리아빠중남미에서총맞을뻔한이야기

벌건 대낮,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 한복판, 여기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자동차 계약금만 지불하고 나머지 대금은 나 몰라라 자동차를 몰고 다닌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자동차의 명의자로, 자동차를 발견하여 안에 총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꽂혀있던 키로 시동을 걸어 5-10m 옮긴 사람이다.


한 사람은 그에 분노하여 총을 꺼내 들고 쏴버리겠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총구를 들이댄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어디 한번 쏴보라고 되받아치지만 실상 아무런 흉기도 소지하지 않은 사람이다.


당신이 법관이라면,

당신은 과연 어떤 판결을 할까?


첫 번째 사람은 고의성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했으니 살인미수라고 보고,

두 번째 사람은 고의성 없이 총기가 들어있던 차를 옮긴 사람이니 무고하다고 보지 않을까?


아빠의 사건이 우여곡절 끝에 대사관의 도움으로 니카라과 법원에 접수되었다.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 무리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재판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니카라과 법원은 이 두 사람을 이렇게 보았다.


니카라과 대통령의 친구, 혁명을 함께 한 혁명동지,

동양에서 온 눈 찢어지고 체구도 작은, 이렇다 할 "빽"이 없는 외국인.


법원은 전적으로 그 사람의 편이었다.


재판 날, 꼭 출석해야 할 당사자는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출석할 수 없다며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법원은 그를 받아들여 다음 재판일을 6개월 후로 다시 정했다. 살인미수 재판의 진행은 지진 부진했다. 그 와중에 그는 아버지가 총기가 훔치려고 한 것이라며 총기 절도죄로 고소했다. 법원은 이를 형사사건으로 보고 아버지를 구속할 수도 있다며 압박했다.


피해자 가해자가 바뀌었다. 확실한 증거가 그 사람을 구속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는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고 오히려 반대로 아버지의 숨통을 죄어왔다. 흉악범들도 벌벌 떤다는 악명 높은 니카라과의 교도소가 아버지의 눈앞에 있었다. 어디서든지 눈에 띄는 외국인이자 작은 체구의 아버지가 과연 니카라과 교도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한번 죽음의 문턱 앞에 섰던 아버지가 다시 한번 그 앞에 서게 되었다.


이는 늪 같았다.

분명히 수월하게 건널 수 있는 얕은 깊이의 강인 줄 알았는데,

건너려고 하면 할수록, 허우적거리면 허우적거릴수록, 발목에서 종아리, 종아리에서 허벅지, 허벅지에서 허리까지 천천히 잠겨 들어가서 다시는 나올 수 없는 늪 같았다.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때, 상황이 역전되었다.


법원의 칼날이 도리어 살인미수의 피해자인 아버지로 향한 이 상황이 갑작스레 바뀌기 시작한 계기는 이메일 주소 하나였다.


마치 옛날 전래동화의 한 장면처럼,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 이 사건을 우연히 알게 되어 한번 이쪽으로 연락해보라며 이메일 주소를 하나 줬단다. 과연 이메일 하나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이 이메일의 주인은 누구일지, 읽기는 읽을지, 아버지는 반신반의하셨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하는 이메일을 보내셨단다. 그리고 큰 기대를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메일을 보낸 후,

모든 상황이 반전되었다.


6개월 후로 지정되었던 다음 재판일이 단 이틀 후로 변경되었다.


아버지를 대하는 법원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가해가자 다시 가해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피해자가 다시 피해자의 자리를 찾았다.

아무런 효력이 없어 보였던 증거사진들이 힘을 내기 시작했다.

증인도 증거도 확실한 이 사건이 드디어 조금 더 공정한 자리에 섰다.


Photo by: EKATERINA  BOLOVTSOVA on pexels


결국 아버지는 총기 절도 혐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비록 그 사람을 구속시킬 수는 없었지만 합의를 보고 나머지 자동차 대금도 다 받아낼 수 있었다. 그 사람의 뒷배경과 이메일을 보내기 전까지의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이도 감개무량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두 번이나 죽음의 문턱 앞에 섰다가 돌아왔다.


그 이메일은 과연 누구의 것이었을까?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 이메일의 주인은 그 사람과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던 사람이자, 대통령의 혁명동지였던 그 사람보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던 사람이었다.


수많은 신고가 있었지만 단 한건도 소송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와중에 최초로 아버지와의 소송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평소에도 그 사람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이메일 주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버지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그 이메일 주인의 정치적 영향력을 그 사람에게 다시 새겨주는 기회이자, 그 뒷덜미를 서늘하게 하는 무언의 압박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정치싸움으로 아버지는 무사히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재판이 마무리가 되었다.

마지막 합의까지 끝내고 자리를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아버지는 찝찝함을 지우지 못하셨다.

그 사람은 마지막까지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어떻게든 찾아가서 죽여버릴 테니.




"아빠 오랜만에 연락드리네, 잘 계셔요?"

"아빠는 잘 있지, 지난주에 총 맞을 뻔한 것만 빼면"

"네? 총이요? 누구한테요?"

"뭐라더라, 이 나라 대통령 혁명 시절 동지라든데?"

"... 네?"


아빠는 잘 있지, 총 맞을 뻔한 것만 빼면-하

Photo by Lacie Sleza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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