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성일 Jan 11. 2022

니카라과 배불뚝이 아저씨가 말하는 인생

#인생이란그런것 #천국에도술집이있습니까


아버지는 중미의 니카라과라는 나라에서 자동차 관련 사업을 하셨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평생을 사시다가 니카라과라는 나라에 뚝 떨어져 사업을 경영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느린 행정, 책임감 없는 사람들, 관료주의적인 공무원, 융통성 없는 은행 등의 특징은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의 특징이라고 할지라도, 니카라과는 그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로, 소위 "손타는 일" 이 잦았다. 자동차 부품도 함께 취급하였던 아버지 사업 특성상, 회사에는 항상 작고 비싼, "손 타기 쉬운"물건들이 많았다. 뭐 굳이 작고 비싸지 않더라도, 직원들은 보지 않는 새에 뭐든 훔쳐갔으니 사실 부피나 가치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낮에 직원들이 이것저것 훔쳐가는 일이야 퇴근할 때 몸 가방 확인을 더 꼼꼼히 하면 되겠지만 (오해는 없기를, 니카라과를 포함한 많은 중남미 나라에서 퇴근할 때 고용주, 혹은 고용주가 지정한 사람에게 가방을 열어 보여주고 가벼운 몸수색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밤에 몰래 담을 넘어 들어와 훔쳐가는 도둑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한국이야 세콤이라든지, 여러 무인경비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니카라과에서는 그런 시스템이 없었다. 고민 끝에 아버지께서는 사설 경비업체에 돈을 지불하고 야간에 경비를 서게 하셨다. 혹시라도 경비가 무엇을 훔쳐가더라도 경비회사에서 그만큼 물어주게 될 테니 손해가 적지 않겠냐는 계산이었지만 역시 니카라과는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사설 경비를 세운 지 몇 주 지나지 않아서 경비가 타이어를 돌돌돌 굴려 회사 밖으로 훔쳐 내다 판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둑놈 잡으라고 경비 세워놨더니 그놈이 도둑놈이었다며 노발대발하는 아버지께 사설 경비업체 대표가 찾아와서 말했다.


"우리 경비는 훔친 적 없다는데, 뭔가 잘못 아신 것 아닙니까?"

"그 타이어를 훔쳐가는 것을 우리 직원들이 보았고, 실제로 재고 차이도 나는데 경비가 훔쳐가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렇지만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증인이 있지 않습니까!"

"뚜렷한 증거가 없는 이상, 보상은 따로 할 수 없습니다. 증인은 그쪽 회사 사람이니 충분히 위증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이거 아주 도둑놈 소굴이구만!"


결국 사설 업체도 뚜렷한 증거가 없는 이상 보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아버지는, 사설업체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지인에게 물어물어 믿을만한 사람을 경비로 구했다. 말이 믿을만한 사람이지 사실상 초면이었던 루이스 아저씨는 배가 이만큼 나온 배불뚝이 아저씨로, 항상 사람 좋은 웃음을 터뜨리며 굼뜨게 걷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행동이 굼뜨다며 못마땅해하시던 아버지도, 몇 주 후 야간에 아무것도 없어진 게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래도 믿을만한 사람이라며 좋아하셨다. 배불뚝이 루이스 아저씨의 유일한 단점은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었는데, 출근시간이 오후 6시 30분이라면 항상 7시, 혹은 그 이후에 느릿느릿 저 멀리서 걸어오곤 했다. 뭐 그 정도야 출근시간을 6시로 다시 정해주면 될 일이었다. 그럼 어차피 6시 30분까지는 올 테니까. 6시 30분에 전 직원이 퇴근하면 루이스 아저씨는 출근하여 다음날 아침까지 경비를 섰다.


아버지는 루이스 아저씨를 좋아하셨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은 욕심내지 않고,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하셨다. 느릿하고 굼뜨긴 하지만 사람의 본질이 착해서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하셨다. 똑똑한 사람은 구하기 쉬워도 믿을만한 사람을 내 사람으로 쓰기는 어렵다고, 루이스 아저씨가 가끔 특히 더 늦게 올 때는 나머지 직원들을 다 퇴근시키고 기다리시면서도 화를 내지 않으셨다. 


아, 내가 유일한 단점이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했나? 정정하겠다. 또 다른 단점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술을 너무 좋아하신다는 점이었다. 가끔은 얼굴이 벌겋게 물들어서 출근하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자기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았다며 부인하는 모습은, 어이가 없다 못해 귀엽게까지 보일 때도 있었다.


"루이스, 술 마셨습니까?"

"아닙니다 사장님, 술이라뇨! 대낮부터요?"

"루이스, 지금 얼굴도 발갛고 무엇보다 술냄새가 진동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데요! 저는 술 안 먹었습니다, 진짜예요, 사장님"


술에 취해 평소보다 느릿느릿하게 대답하며, 절대 술을 마신 게 아니라며 손을 내젓는 루이스에게 아버지는 물이나 잘 챙겨마시고, 자지 말고 경비 잘 서라는 말만 하시고 퇴근하시고는 했다. 하여튼 손도 안 타고 자기 일은 하니까. 술 정도야 그러려니 하셨다.


하루는 술을 얼마나 마셨던지, 차마 술을 안 마셨다는 말은 못 하고 묻는 말에 횡설수설 대답하던 날도 있었다.


"루이스, 술 먹었죠? borracho (술주정뱅이)"

"예에 사장님, Así es la vida (삶이 그렇죠)"

"근무 서야 되는데 술 마셔서 어떡합니까?"

"Así es la vida! (삶이 그런 것을요!)"


무슨 말을 하던지 삶이 그런 것이라고, 삶은 그렇다고 대답하는 아저씨에게 아버지는 두 손 두발 다 드셨고, 또 술 취해서 오면 해고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으셨지만 가끔 루이스 아저씨는 술냄새를 풍기며 출근하셨다. 그렇게 술을 마시면 몸이 노곤해서라도 쓰러져 자고 싶을 텐데, 어찌어찌 출근은 하니 그래도 책임감은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던 아버지도 어느 정도 포기하셨던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 뭐, 어디 거리에서 쓰러져 자다가 발견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회사는 오고, 근무는 섰으니까. 확실히 자기 할 일은 다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루이스 아저씨가 더 이상 출근을 할 수 없게 된,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다.

원래 출근시간인 6시가 지나고, 실질적 출근시간인 6시 30분이 지나고, 7시가 다 되어도 루이스 아저씨가 오지 않아 아버지와 직원 한 명이 함께 루이스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연락도 없이 이렇게 까지 늦게 오지는 않을 텐데, 싶어 아버지와 직원이 회사 앞으로 나가 기다리던 중, 저 앞에서 사람들이 모여 웅성웅성하는 것을 보셨단다. 보자마자 머리카락이 쭈뼛 서며, 설마, 하는 안 좋은 예감이 들어 동시에 직원과 함께 뛰셨다. 먼저 도착한 아버지가 본 것은 이미 이 세상이 아니게 된 루이스 아저씨. 오토바이가 갑자기 골목에서 튀어나와 느릿느릿 회사를 향해오던 루이스 아저씨를 쳤고, 하필 잘못 넘어지며 머리가 깨져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 후에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우리 아버지는 잘 우시는 편이 아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살짝 눈물을 보이셨던 것은 내 착각일 것이다. 아버지는 어쨌든 출근길에 있었던 일이므로 본인의 책임이라고 하시며 루이스 아저씨가 정년퇴직하기로 했던 날까지 남은 나머지 몇여년에 대하여 유족에게 매 달 월급을 지급하시기로 했다. 그러나 첫 월급을 전달한 다음날, 루이스의 딸은 그 돈을 그대로 다시 가지고 와 돌려주었다.


"어머니가 우리 것이 아닌 것은 돌려드리라고 하셨어요. 우리 돈이 아니므로 받을 수 없지만 감사하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이 말이 아버지께도, 나에게도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중남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들이라면 이 말이 얼마나 놀랄만한 말인지 이해하실 것이다. 맨홀 뚜껑도 고철상에 팔면 돈이 된다고 죄 훔쳐가 도로에 구멍이 뻥뻥 뚫린 이 나라에, 공중전화도 설치하면 다 훔쳐가서 팔아버리는 바람에 길거리에 공중전화 부스만 남은 이 나라에, 심지어 경비라고 세워놓은 사람마저 타이어를 야무지게 돌돌돌 굴려가서 팔아버리는 쇠똥구리의 나라에, 돌아가신 아버지 월급 명목으로 나온 돈을 자기 것이 아니라며 돌려주라는 어머니와, 그 돈을 그대로 들고 온 딸. 그 집이 풍족한 집도 아니고, 수입이라고는 루이스 아저씨의 월급뿐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을 텐데도 그 돈을 받지 않았다. 


자기 것이 아니면 욕심내지 않았던 루이스 아저씨는 본인 같은 사람을 만나 결혼했고, 본인 같은 딸을 낳았다. 


결국 다시 돈봉투를 들려줘도 절대 가져갈 수 없다던 루이스 아저씨의 딸을 이길 수 없던 아버지는, 대신 그 딸을 고용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사실 사무실에 굳이 직원이 한 명 더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하셨다. 루이스 아저씨의 딸에게는 창고관리를 맡겼다. 가장 손이 타기 쉬운 업무이자 꽤 복잡한 업무여서 여러 가지 실수는 많았지만 적어도 그 딸은 신뢰할 수 있는 직원이었다.


가끔 대체 내 삶은 왜 이럴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의 위로가 되는 여러 가지 중 루이스 아저씨의 말도 있다. 


Así es la vida 


삶은 그런 것이다. 기쁨은 기쁨대로, 슬픔은 슬픔대로, 우울은 우울대로, 

삶은, 그저, 그런 것.


니카라과 배불뚝이 아저씨가 말하는 인생 끝

이전 02화 코스타리카에서 지명수배자와 결혼을#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