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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성일 Jan 13. 2022

기아 모닝으로 코스타리카 산 넘기-에필로그

#여기가아닌가벼 #두번째삶


Epilogue 1. 여기가 아닌가 봐


저녁만 먹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다음날 바다에 가기를 고대하며 잠들었다. 다음날 일어났는데 날씨가 얼마나 좋던지! 햇볕이 적당히 내리쬐고 소금기 묻은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바닷가 가기 딱 좋은 날이었다. 마침 숙소가 바닷가 바로 앞이라 옷을 갖춰 입고 바닷가로 향했다. 생각만큼 새파란 바다는 아니었지만 커피색 모래와 투명한 바닷물은 산길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고생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기 충분했다. 한참 동안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잠시 지쳐 모래사장에 누워 따뜻한 햇빛을 만끽했다. 그래, 이게 코스타리카지. 


어느 정도 쉬고 나자 목이 말랐다. 주위를 둘러보니 메뉴판을 들고 분주히 사람들을 오가는 젊은 청년이 있어 손짓해 불렀다


"뭐 파는 거야?"

"메뉴 한번 볼래? 칵테일이나 음료를 주문할 수 있어, 저기 바에서 만들면 내가 네 자리까지 갖다 줄게"


메뉴를 보니 웬만한 칵테일 종류는 모두 구비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꿈꿨던 건 마누엘 안토니오에서의 삐냐 꼴라다 한잔 아니었던가. 망설임 없이 삐냐 꼴라다라를 주문하고 친구는 무알콜 칵테일을 주문했다. '몰디브에서 모히또 한잔!' 은 더 이상 진부하다. 이제는 '코스타리카에서 삐냐 꼴라다 한잔!' 이 대세인 것이다. 금방 배달되어온 칵테일에 팁을 얹어주고 빨대로 쪽쪽 빨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 고생의 100%는 아니더라도 70% 정도는 보상되는 듯했다. 그래 오길 잘했어.


칵테일을 마신 후에는 연을 탔다.

말 그대로 우리가 아는 그 연은,  아주 큰 크기로 사람이 탈 수 있도록 설계된 일종이 해양레저로 연의 끝이 고속보트에 연결되어 있어 빠른 속도로 보트가 움직이면 사람을 태운 연이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았다. 여기까지 이 고생을 해서 왔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보트 주인과 적당히 가격협상을 하고 (어저께 오다가 죽을 뻔했는데 이 정도도 못 깎아줍니까!) 연에 탔다. 바다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더 아름다웠다. 하늘 위에서 10-20분 정도 타고 내려오는데 그때 내 뺨을 스치던 햇빛과, 귀를 울리던 바람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황홀했다. 


꿈같은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산호세 (수도)로 돌아올 때는 정규 도로를 탔다. 편도로 3시간이 채 안 걸리는 거리를 몇 시간씩 산길을 탔다니, 돌아오면서도 웃음이 났다. 그래 아무 일 없었으니 됐지, 이것도 좋은 경험이 되겠지. 돌아오면서 아버지와 통화했다. 


"아빠, 모닝으로 산길을 타고 강을 건넜어요" 


아버지가 껄껄껄 웃으셨다. 나도 하하하 웃었다. 그 개고생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모든 것이 웃을 일이 됐고, 좋은 이야깃거리가 됐고, 재밌는 추억이 되었다.


마누엘 안토니오에 다녀오고 며칠 후, 마누엘 안토니오 참 좋았지,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보고 있을 때였다. ‘입장료’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기를 누르니 마누엘 안토니오는 ‘국립공원’으로서 출입하는 모든 사람에게 입장료를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입장료? 우리는 입장료 낸 적 없는데? 혹시 무료 개장하는 날도 있나 살펴보았으나 그런 날은 없었다. 그럼 우리가 다녀온 곳은 과연 어디인 것인가. 마누엘 안토니오라고 생각한 곳이 마누엘 안토니오가 아니었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가려고 했던 마누엘 안토니오 국립공원 근처에 있던 무료 해수욕장이 아니었나 싶다. 어쩐지 사진만큼 바다가 파랗지 않더라니. 결론적으로 우리는 마누엘 안토니오를 보겠다고 그 고생을 하면서 갔지만, 마누엘 안토니오를 다녀오지 못한 것이다. 미국으로 돌아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우리 마누엘 안토니오 다녀왔잖아…

거기가 마누엘 안토니오가 아니었나 봐….


... 미안"




Epilogue 2. 두 번째 삶


마누엘 안토니오에 다녀오고 얼마 되지 않아 타이어 한쪽 바람이 많이 빠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충 지렁이로 때우면 되겠지, 싶어 직장 바로 앞 카센터에 차를 맡기고 출근했다. 몇 시간 후 전화가 왔다.


"저희 ㅇㅇㅇ카센터인데요, 이거 타이어 수리가 안 되겠는데요"

"수리가 불가능한 상태라고요?"

"네 새 걸로 갈아드릴까요?"

"네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점심시간에 차를 찾으러 가자 카센터 직원이 키를 건네주며 말했다


"felicidades, renaciste! es tu segunda vida" (다시 태어난 걸 축하해요! 두 번째 삶을 살게 되셨군요)

"segunda vida? como?" (두 번째 삶이라뇨?)


카센터 직원이 원래 타이어를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 타이어 찢어진 부분 보이시나요? 철심까지 튀어나와 있는 걸 보면 뭔가 강한 마찰이 있었다는 건데... 이런 타이어로 운전하고도 아무 일도 없었다니 죽었다 살아나신 겁니다"


타이어 상태가 정말 좋지 않았다. 한쪽이 심하게 마모되어 철심이 튀어나와 있었다, 철심이 튀어나온 주위로도 심하게 마모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모래에 빠졌을 때 억지로 엑셀을 밟으면서 타이어 표면이 찢어졌었던 것 같다. 카센터 직원은 지금 내 삶이 두 번째 삶이라며, 다시 태어난 것과 같다며 웃었다. 웃을 일은 아닌 것 같지만 나도 같이 따라 웃었다. 새 삶을 얻었다.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즐기고, 더 많이 행복할 나의 두 번째 삶을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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