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흐르듯, 마음을 놓는 법

진짜 나를 알고 흘려보내는 용기

by 온유
정화의 순간 (Created with Adobe Firefly)

예전에 마음이 많이 복잡했을 때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나쁜 생각이 한 번 떠오르면 쉽게 잊히지 않고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때 선생님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것을 ‘물’처럼 흘려보내라고 조언해 주셨다.


나에게 일어난 나쁜 일이든, 나쁜 생각이든 그것을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마치 강물에 흘러가듯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라는 뜻이었다. 그 말은 당시의 나에게 꽤 와닿았다. 그래서 나는 최근까지도 화가 나거나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시간이 날 때마다 눈을 감고 흐르는 물을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렇게 짧은 시간만으로 단단하게 굳은 감정들을 자유롭게 흘려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흘려보내야 할 감정 속에는 단 하나의 감정만 담겨 있지 않았고, 겉으로는 하나의 감정처럼 느껴지더라도 그 안에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또한 그 감정이 생겨나기까지에는 하나의 원인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원인이 겹쳐 있었다.


그렇기에 감정들을 단순히 ‘강물처럼 흘려보낸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특히 삭히기 힘든 분노나 우울, 불안 같은 감정들은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은 분명 도움이 되는 방식이긴 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프랑스계 미국인 심리치료사 클로드 스타이너는 1979년 ‘감정 문해력’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복잡한 감정을 느낄 때 자신의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이 감정을 흘려보내는 데 도움이 되고 더 나아가 타인의 감정까지 이해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감정을 단순히 흘려보내려 하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알지 못해 오히려 어려워질 수 있다. 반면 감정을 인식한 뒤에 흘려보내는 것은 그 감정이 생겨난 원인과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원해 왔는지를 이해했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그것을 다시 떠올리고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뒤 흘려보낸다는 일은, 어쩌면 자신에게 가혹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진짜 감정을 다시 마주하고 그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며 그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끝에 그것을 흘려보내는 행위는 결국 ‘용기’가 아닐까.


얼마 전 심리 강의를 들었는데, 거기서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소개되었다. 최근 몇 년 전만 해도 '감사 일기'가 붐을 일으켜 나 또한 감사 일기를 썼었다. 그런데 강의에서 알려준 연구 결과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을 '감정 일기' 그룹, '팩트 일기' 그룹, '감사 일기' 그룹으로 나눈 뒤, 각 그룹에게 6개월 동안 주제에 맞춰 일기를 쓰게 했다. '감정 일기'를 쓴 그룹은 자신이 왜 그런 감정을 느끼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의도를 이해하게 되면서 성장했다고 하고, '팩트 일기'를 쓴 그룹은 하루 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일과 감정을 꾸밈없이 기록함으로써 하나의 일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성장했다고 한다.


반면 '감사 일기'를 쓴 그룹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억지로 감사할 거리를 찾으며, 현실적이지 않은 글을 쓰다 보니 오히려 퇴행했다고 한다. 강의에서는 이 연구를 소개하며, 일부에서는 '감사 일기'가 단지 전통적인 방식일 뿐이라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나 또한 강의를 듣고 난 후부터는 '감사 일기'보다는 '감정 일기'나 '팩트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자신에게 솔직한 일기를 쓰면서 일상을 되짚어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오히려 '감사 일기'를 쓸 때보다 더 많은 감사할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내가 모르고, 인정하기 싫었던 나의 부족한 부분과 타인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글을 쓰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나의 감정을 인식하고 그 감정이 생겨난 원인을 이해하게 되면서부터, 진짜 별것 아니라는 생각으로 제3자의 입장에서 마치 물 흐르듯이 감정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물 흐르듯이 흘려보낸다’는 것은 자신을 온전히 안다는 의미이며, 그 때문에 제3자의 입장에서 감정을 완전히 흘려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흘려보내는 과정에도 반드시 깨달음이 있으며,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감정을 다시 떠올리는 과정에서는 아플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 치유와 감정을 흘려보내는 작업임을 알게 되면, 그 또한 하나의 ‘성장통’에 불과하며 충분히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