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맛있었어요, 사장님.
나는 지금 액땜을 했다고 열심히 긍정회로를 돌리고 있다.
이 긍정회로를 열심히 도울 차는 둥굴레 차다. 열받았으니 오늘은 얼음 와장창 넣고 급냉으로 시원하게 마실 생각이다. 거기에 방금 사와 씻어낸 싱그러운 딸기도 같이 곁들인다.
어쩐지 오늘은 심각하게 밖에 나가기 싫었다.
일단 온몸이 저렸고 쌓인 피로가 이제야 한꺼번에 느껴졌다.
밖은 안 봐도 이미 어두컴컴했고 시간은 늦은 저녁 9시를 향하고 있었다.
'나가지 마? 그냥 내일 아침에 가버려?'
또 다른 내가 쉼 없이 속삭였지만 나는 박차고 벌떡 일어섰다.
오늘만큼은 꼭 장을 보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했기 때문이다.
장바구니를 야무지게 챙기고 씩씩하게 나섰다. 며칠 전 집 근처에 있는 커다란 마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마감 시간에 가면 세일도 왕창하겠지?'
들뜬 마음을 품고 걸음을 빨리했다. 하지만 나의 계획은 대실패 했다.
세일은 커녕 실망스러운 가격에 혼자서 들고 올 자신이 없었다. 결국 빈손으로 집에 터덜터덜 들어왔다.
춥기는 얼마나 추운지 빨리 들어가서 따땃한 전기장판에 몸을 뉘이고픈 마음뿐이었다.
집에 도착했다.
'이제 문만 열면 되는데... 어라?'
문이 안 열린다. 우리 집은 문을 열 때 열쇠가 필요하다. 바보같이 열쇠를 두고 나왔던 것이다.
"아니지 아닐 거야 열쇠 들고 왔겠지. 절대 잠겼을 리가 없어. 이러지마."
아무리 부정해 봐도 이 밤 중에 집을 못 들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인터넷에 '잠긴 문 열어주는 곳'을 검색했다. 한 시간은 걸린다 말한다.
쭈그리고 앉아 기다리다 드디어 어찌저찌 문이 열리긴 했다. 그렇게 생돈 6만 원을 날렸다.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러고 집에 들어오니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왔다.
액땜했다 생각해도 도저히 기분이 풀리지 않았고 누구보다 나를 원망했다.
그러고 보니 빈손으로 들어와 집에 먹을 것도 없었다. 다시 집을 억지로 나섰다. 이번에는 열쇠를 한 손에 꼭 쥔 채. 근처 가장 가까운 슈퍼로 향했다. 시장 상인 분들은 문을 닫느라 다들 여념이 없었다.
"딸기 한 바스켓 4500원에 팝니다. 떨이예요. 떨이~~"
사장님의 목소리가 발길을 세웠다. 딸기 값이 금값인 요즘 저렇게 싸게 판다고?
"딸기 하나에 4500원 맞아요?"
"예예. 오늘 들어온 건데 남아서 지금만 4500원에 파는 거예요. 얼른 얼른 사가셔요."
"아 그럼 하나만 주세요."
"예예 감사합니다~~맛있게 드세요. 딸기 상태 아주 싱싱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사장님의 인정스러운 얼굴과 싹싹한 손님맞이는 보는 이의 마음도 따숩게 만들었다. 거기다 싸게 산 싱싱한 딸기까지.
그게 조금 전 한껏 속상했던 내 마음을 눈 녹듯 없애주었다. 이럴 때 나는 아주 단순하다 느낀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딸기 먹을 시간에 신난 발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오늘 이 딸기를 먹으려고 문이 잠겼던가. 운이 좋았네.'
사장님의 말처럼 보기만 해도 탐스러운 딸기는 씻고 보니 더 반짝거려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꼭지도 떼지 않고 먼저 입으로 넣어본다. 과연 보기처럼 달달하니 맛이 좋았다.
달콤한 딸기와 같이 먹을 차를 골라본다. 왠지 오늘은 구수한 게 끌린다.
시원한 둥굴레차는 딸기와 잘 어울린다.
부담 없이 넘어가는 편안한 둥굴레 한 모금은 오늘의 모난 내 마음도 둥굴둥굴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