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부쩍 새벽과 친해졌다.
반년 전 새로 구한 야간 아르바이트 덕분이다.
아침 7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해가 어스름히 떠올랐다. 퇴근이다.
출근과 퇴근길이 맞물린 지하철은 각각의 사람들을 태우고 집으로 향한다. 어느새 세상은 눈부시게 밝아졌다. 어디 숨어있는지도 몰랐던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튀어나와 빨리 걷기 대회를 펼친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듯 거스르며 유유히 걸음을 옮겼다.
암막 커튼이 가리어진 방안은 밤이 다시 찾아온 듯하다. 하지만 세상은 벌써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여는 사람들의 분주한 소리로 여간 소란스럽다. 새들도 자신의 할 일에 충실히 임하듯 힘차게도 지저귄다. 그렇게 각기 다른 소음이 어우러져 노래처럼 들려오면 그제야 스르르 잠에 빠져든다.
점심도 저녁도 아닌 애매한 시간, 나의 아침은 조금 늦다.
집 앞의 시장은 일찍이 문을 닫고 짐을 싸기에 여념 없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괜스레 아쉬운 마음이다. 그래도 문 닫기 전 할인하는 무슨 야채, 과일들을 운 좋게 구입했다.
할 일을 차근차근 해치우고 자리에 앉았다. 거짓말처럼 세상은 합죽이가 되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새벽이 찾아온 것이다. 힘차게 자신들의 존재를 외치던 새들도 돌아간지 오래다.
모두가 잠든 밤, 나의 저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처음 맞이했던 깊은 새벽은 나를 방황하게 만들었다. 핸드폰이나 넷플릭스 따위를 보며 시간 죽이기에 애썼다. 지루하고 심심했다.
조금 더 의미 있게 새벽을 채우고 싶어졌다. 아주 오랜만에 일기장을 꺼내 가만히 정적에 잠겼다. 그런데 어디선가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숨소리였다.
세상 굴러가는 소리에 파묻혀 들을 수 없던 나의 숨소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것이었다.
애매하게 식어버린 차를 다시 데워올까 고민하던 차였다.
마치 지난 하루가 애써 들이키는 이 미지근한 캐모마일 차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지 않은 감정의 잔재와 함께 여기 머무르고 있었다.
겉보기엔 무난했다. 함께 근무하는 동료가 지각해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을 뿐.
속 좁은 사람이 된 것만 같았지만 동료의 지각은 눈감아줄 수 있는 쿨한 사람인 척 연기했다. 다시 떠올려보니 아닌 건 아니었다.
나는 차라리 속 좁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속 좁은 사람이 된다는 게 이렇게나 유쾌한 일인 줄 몰랐다.
남은 차를 전부 들이키고 부엌으로 향했다. 커피포트에 물을 붓고 기다렸다. 새 제품임을 증명하듯 반질반질 광택과 빠른 성능으로 금방 끓어올라 김을 뿜어냈다.
며칠 전 일이 떠오른다.
집앞에 택배가 잔뜩 쌓여있었다. 발신인은 똑같았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말도 없이 택배를 보내는 엄마 때문에 잔뜩 화가 났다.
오늘은 절대 넘어가지 않겠다 다짐하고 강력히 나의 의사를 엄마에게 전했다.
새벽은 찾아왔고 나는 상념에 빠졌다.
‘받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언젠가 기필코 이 순간을 후회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엄마의 택배를 잠자코 받아들였다. 엄마가 매번 말하는 나의 고집이 꺾인 순간이었다.
나와의 진솔한 대화는 나로서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게 도우는 초석이 되었다.
마치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이 되어 지나간 하루를 두 번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없는 내겐 새벽 시간이 마치 새로운 나를 만나기 위해 잠시 들렀다가는 정거장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그 시간이 내심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나이테처럼 겹겹이 쌓인 내 안의 수많은 ‘나’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그렇게 에세이란 걸 쓰기 시작했고 나의 하루는 새벽을 넘어 새로운 정거장을 만들어냈다.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은 훗날 하루를 두 번 살아가지 않고 오늘이 특별한 삶의 마지막 날인 듯 살아간다. 나는 다음 달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만두기로 했다.
한 달 뒤면 새벽과는 자연히 서먹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따금 그 고요했던 새벽이 그리워질 것 같다.
그럴 때면 종종 새벽 정거장을 들릴 생각이다.
그곳에서 조우한 또 다른 나와 진솔한 대화를 나눌 그 날을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