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시선

사람들의 구두와 함께 시작하는 하루

by PNE


오늘도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시작한다.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아 저 구두 어제도 이때쯤 지나가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오늘도 추운 날씨에 오늘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저녁을 먹을 만큼만 돈이 모이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다린다.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이 일을 하려면. 생각을 하면 할수록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흐르기 때문이다.

나는 강남역 14번 출구에서 구걸을 하는 거지다. 사지도 멀쩡한 거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사지도 멀쩡한 사람이 뭘 해서든 먹고살아야지’ 하겠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이 세상에는 어느 거지도 없겠지. 사람들은 사람을 너무나 모르고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으니까.

또 한없이 생각이 길어진다. 생각하려고 하지 말자. 그럼 한없이 나쁜 생각만 들 거고 그러다 보면 하루에 끝을 또 더러운 기분으로 끝내야 하니까. 하루에 한 끼 딱 하루에 한 끼만 먹을 수 있는 돈만 받으면 거기까지 인 거다. 밥을 먹고 나면 여기저기 조금이라고 따듯한 곳이 찾아 떠돌다 결국은 강남역으로 와 지하상가에서 잠든다. 그게 나의 일상이다. 1년 반 남짓 된 시간 동안 나는 거지로 살고 있다.

지하상가에서 눈을 떠 나는 또 14번 출구로 갔다. 오늘은 근처 빌딩 경비 아저씨가 오셔서 다른 곳으로 가라고 성화시다. 할 말이 없어 그저 말을 듣다가 억울한 마음이 솟구쳤다. ‘아저씨, 아저씨는 갈 곳도 반겨줄 가족도 따듯한 집도 있으시잖아요. 그렇니까 그렇게 쉽게 얘기할 수 있으시겠죠’라는 말이 목구멍 어딘가를 돌아다니다가. ‘말하면 신고당할까?’라는 불안감과 우리 아버지 뻘인 분께 언성을 높이면 안 되지 하는 마음으로 말을 못 하는 척 말을 하지 않았다. 누가 보면 참으로 예의 바른 청년이라고 생각을 하겠지 어이가 없다 정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저씨는 가셨고 해는 저물어 간다. 내가 하는 일이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잘못을 한 적이 없는데 나의 존재가 잘못된 것인가 또 화가 난다.



오늘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2개를 사 공원에 앉아 먹고 있다. 편의점에서 먹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찌푸린 인상을 당해낼 재간이 없어 밖으로 나왔다. 내 옆에 양복 입은 술 취한 아저씨가 자고 있는 걸 보니 아마도 토요일이겠지. 토요일이면 무엇을 할 것인가 나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아저씨가 벗어 놓으신 신발이 무척이나 따듯해 보였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왔다.

헌 옷 수거함 근처에서 주운 따듯한 스웨터가 이번 겨울을 나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만큼 좋다. 이런 사소함으로 행복을 느끼는 게 이 직업의 최대의 장점이다.

더 이상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진급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다. 오늘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는 자유로운 삶이 나에게는 충분히 있다. 단점은 잠자리가 춥고 몸이 가렵다는 것. 언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거지는 절대 암에 걸리지 않는다고. 거지에게는 스트레스가 없으니까. 도대체 이 인간의 삶은 뭘 위한 것인가. 뭘 해야 맞는 것인가. 이 고뇌는 끝이 없다.


오늘은 아침부터 머리가 아프더니 결국 감기에 걸린 것 같다. 찬 바닥에 구부려 웅크리고 있는 나의 자세는 바닥에 찬기를 직격탄으로 맞아 감기 기운은 점점 심해질 것이다. 나는 이렇게 죽게 될 수도 있겠지. 나는 따듯한 죽을 먹을 돈도 약국에 가 약을 살 돈도 없으니까. 눈이 뜨겁고 무겁다. 한숨 자야겠다.

가늘게 열린 눈으로 하늘을 보니 벌써 저녁이다. 몇 시간을 잤는지 몸이 조금은 개운하다. 맙소사 눈앞에 있는 5만 원권. 누군가 흘린 건 아니겠지. 모자 안으로 황급히 넣었다. 신이시여! 아픈 나를 도와주셨나이까! 너무나 기쁘다. 난 그대로 그 돈을 들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매번 오가는 길에 있던 언젠가 가야지 했던 목욕탕. 들어가는 입구에 카운터에 계신 분께 좋지 않은 시선을 받겠지만 오늘은 깨끗한 옷도 따듯한 목욕물도 뜨신 방바닥도 있다. 오늘은 눈치 보지 않고 찬바람에 몸을 뒤척일 일없이 잘 수 있겠구나. 행복한 밤이다.




2년 전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누구든 들으면 이름을 알법한 회사였다. 자동차 계열의 회사였고 대리였다. 대학 졸업 후 1년 정도의 취업 준비 후 남들과 다를 것 없이 좋은 회사에 취직해 4년 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했다. 회사에서는 딱히 모자랄 것 없는 잘난 것 없는 직장 동료였기 때문에 누구의 시기나 질투를 받는 일도 없었고 누구에 질책을 받는 일도 없었다. 매번 회식에 참가하고 매번 맡은 임무를 기간에 맞게 제출했다. 가족도 내가 하는 일에 뭐라고 말을 덧붙이지 않았고 나도 무던히 회사를 다녔다.


입사 동기들이 스물아홉 때쯤 되어가던 차에 다들 워킹 홀리데이를 간다느니 이직을 한다 더니 결혼을 한다느니 여러 결정들을 지나 동기 중에 남아 있는 사람은 나 혼자가 되었다. 누군가는 끈기가 있어 한 회사에 오래 다닌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느끼는 나는 마치 꿈이 없어 정처가 없는 사람처럼 그저 무던히 회사를 나갔을 뿐이었다. 동기들이 더 높은 연봉을 받으며 이직에 성공하고 짝을 만나 행복하게 결혼을 할 때 나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딱히 부럽다거나 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내가 오히려 좀 짜증이 났다.


그렇게 서른이 되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나의 인생이 무엇으로 살아지는가. 내가 아무런 의미 없이 선택해 온 나의 삶이 무엇 때문에 살아지는가. 이렇게 살아가면 나는 어떠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 생각 끝에 밀려오는 허무함이 내가 살아가던 하루하루를 의미 없게 만들었다. 다음날도 어김없이 일어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매번 향하던 강남역으로 이제는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마치 나의 또 다른 집처럼 그 길로 향하는 길에 새로움은 전혀 없고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그저 생각 없이 걷기만 해도 도착하는 그런 곳으로 향했다. 회사 입구에 서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위한 길인가? 돈을 벌어야 해서 인가? 돈만 있다면 되는 게 인간의 삶인가. 이게 이 이유가 맞는 것인가. 형편없는 생각이었고 답이 정해져 있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발걸음은 더 이상 회사를 향할 수가 없었고 근처 벤치에 앉아 생각을 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시간이 흘러도 더 이상 회사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핸드폰은 부재중 전화가 3통 정도가 오고 생각보다 별다름 없음에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내가 매일 나의 삶으로 여기던 것이 사실은 별거 아닌 것이었다는 것. 회사를 올려다보니 정말 별다를 게 없는 모습에 또다시 짜증이 밀려왔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화가 났고 그것이 내가 별것 아니라는 것이라는 확인을 받은 것 같았다. 버러지 같은 세상 결국은 별것 아닌 것들로 채워져 있구나. 화가 나는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저녁쯤 해가 더 이상 뜨겁게 느껴지지 않을 때쯤 회사 사람들을 마주칠까 강남역 14번 출구로 자리를 옮겼다. 딱히 집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도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서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이었고 집에서 전화가 오거나 나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땐 나도 내가 이렇게 오랜 시간 이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내가 하는 이 방황을 설명할 길이 없었고 어떠한 말도 들을 수가 없었다. 근처 찜질방으로 가 씻고 허기를 채우고 피곤한 몸을 재웠다. 그리고 아침이면 회사에 가듯 다시 14번 출구로 가 멍하니 앉아 바쁘게 생각했다. 이 방황이 끝나길 기다리면서.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회사에서는 무단결근으로 인한 사퇴 처리가 진행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가족들에게는 회사 근처에 있는 친구네 집에서 지낸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더 이상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다섯 달이 지날 때쯤 쓸만한 돈이 남아 있지 않았고 찜질방으로 돌아가던 생활을 할 수가 없어 그저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근처를 서성이며 미쳐가는 마음을 붙잡고 추워지는 날들을 어떻게 버틸까라는 생각만이 남았을 무렵 내가 자고 일어나면 그 앞에는 동전들이 남아 있곤 했다. 가끔은 무거운 동전 더미 밑에 천 원짜리 지폐 몇 장과 함께. 그때 알았다. 내가 거지처럼 보이는 행색이 되었다는 것을. 내가 퇴근하는 길에 보이던 그 노숙자분들이 이렇게 그곳에 머물게 되신 거구나 이해가 됐다. 그 이후에는 점점 날씨가 추워져 엎드려 잘 때마다 돈이 모였고 그렇게 나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지가 되었다.

나는 32살이라는 남들은 한창이라고 하는 그 나이에 구걸을 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렇게 궁금해하는 내 나이는 이제 아무도 묻지 않았고 나의 왜소한 체구에도 여자인지 남자인지 묻는 사람도 이젠 없어졌다. 누구도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고 그저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종 종 지나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 ‘사지 멀쩡한 사람이 왜 저러고 있데?’ 매번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사지 멀쩡한 사람은 모두 회사에 다녀야 하고 모두 결혼해야 하고 모두 남들에 뒤지지 않는 집에 살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사지가 멀쩡하지 않은 사람은 그런 삶을 살면 안 되는 것인가?’ 같은 권리를 갖은 인간인데 남에게 저런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게 조금 역겨웠다.




다시 추워지는 무렵이었다. 엎드려 누워 있어도 알 수 있었다. 이 목소리는 같이 다니던 직장 동료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심히 들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앉아 친구와 얘기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점심에 먹은 떡볶이가 맛이 있었다는 얘기. 탕비실에 과자가 떨어져 사러 가야 한다는 얘기. 별다를 게 없는 하루하루가 시시하다는 얘기. 내가 매일 하던 그런 얘기들을 친구와 함께 얘기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하던 얘기들이 꿈처럼 느껴졌다. 너무나 멀게 느껴졌고 너무나 오래전 이야기처럼 들렸다. ‘아 맞다 내가 이런 삶을 살고 있었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런 대화였다. 그 별거 아니던 얘기가 갑자기 나에게 삶의 목적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누군가 나에게 주는 돈을 기다려야 하는 삶이 아닌 내가 이룬 것들로 대가에 맞는 급여를 받아 미래를 계획하는 삶. 내가 살던 살아가던 바로 그 삶. 내가 아무 의미 없다고 한탄하던 삶에 이유를 찾지 못했던 그것이 나의 목적이었다는 걸 나는 거지가 되고서야 깨달았다.

그렇게 한두 시간 후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모여있던 돈을 들고 그 목욕탕으로 가 다시 씻었다. 있고 있던 옷을 손빨래하고 그 옷들이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 옷에서 떨어지는 물을 마를 때까지 쳐다보면서 그동안의 시간을 떠올렸다. 내가 하던 방황이라 부르던 것들이 사실은 내 인생에 가장 의미가 있었던 내가 선택한 나의 인생이 아니었는가. 내 삶이 의미가 없었던 이유는 내가 방황해 얻은 삶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 같은 삶을 살지만 나의 하루에는 더 깊은 의미와 목적이 있을 거다. 삶은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이제는 마음껏 생각하고 그것들로 하루를 만들어 가야지. 다시 시작하는 삶이 어렵겠지만 뭐든 지난 1년 반 보다 힘들지는 않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