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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울림 Oct 27. 2024

행복과자점 3화

3. 밀크티     



주말 내내 눈송이가 나풀대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월요일엔 내리던 눈이 멎고 햇볕은 겨울치고 따뜻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겨울이 다가왔음을 느끼는 순간.

운은 아직 아침잠에서 덜 깬 듯 멍한 눈을 하고서, 어제 시장에서 사 온 딸기를 흐르는 물에 씻어 한입 베어 물었다.     

“겨울딸기, 달다…….”     

생기 없이 흐리던 까만 눈동자에 빛이 돌았다. 

빨갛게 잘 익은 딸기에 힘을 얻었는지, 운이 부지런히 스테인리스스틸 볼 하나에 담긴 딸기를 물에 깨끗이 씻은 다음 손질하기 시작했다. 

몇 개는 반으로 잘라 케이크 장식용으로, 나머지는 케이크 시트에 층층이 들어갈 딸기 슬라이스 형태로 손질을 마치고 나서야 자리에 앉아 한숨을 돌렸다. 그러다 평소 즐겨듣는 라디오를 틀고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부지런히 오픈 준비를 시작했다.

아직 케이크가 완성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오픈은 10시였으니까. 10분 전엔 대문을 열어두고, 마저 케이크를 준비하고 있어야지. 운이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며 생각했다.

늘 10시만 되면 나타나는 단골손님. 사실 그가 아니면, 이렇게까지 딱 시간에 맞춰 정시에 오픈할 생각은 없었다. 이 시골 동네에서 오픈 시간에 땡 맞춰서 찾아오는 손님은 없었으니까.

그녀가 평소처럼 마당의 대문과 현관문을 열어놓고 도로 부엌으로 돌아와서, 어젯밤에 미리 구워놓았던 바닐라 케이크 시트를 균일하게 세 장으로 자르고, 설탕 시럽을 촘촘히 바른 다음 고소한 우유 생크림을 듬뿍 올려서 펴 발랐다. 그리고 다시 손질해 놓은 신선한 딸기를 빼곡히 채우고 다음 층을 쌓았다.

운이 진중한 눈을 하고서 생크림과 딸기로 층층이 채워놓은 케이크의 맨 위에 생크림을 듬뿍 얹고 나서, 윗면과 옆면을 모두 생크림으로 덮는 아이싱 작업을 시작했다. 그녀가 섬세한 손길로 여러 번 새하얀 크림을 펴 바르고 나서야 마음에 들었는지,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채 반으로 자른 딸기의 그러데이션 같은 단면이 보이도록 하나씩 올렸다.

딸기 생크림 케이크.

겨울에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였다. 운은 유리로 된 냉장 쇼케이스에 딸기 케이크 조각들을 채워 넣으며 원목으로 만들어진 벽걸이 시계를 힐긋 쳐다보았다.

오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더니, 어느새 시계가 10시 반을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오전 단골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운이 고개를 한 번 갸웃하고는 평소처럼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오전 일과의 끝이었다.      

“오늘 엄청나게 춥네-.”     

오후의 단골손님 은정이 모처럼 아이들 없이 홀로 카페를 방문했다. 그녀는 여유롭게 두꺼운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쳐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운이 있는 카운터 앞으로 걸어왔다.     

“오. 딸기 케이크네?”

“네. 시장에 나온 딸기가 달더라고요.”     

쇼케이스에 먹음직스럽게 전시된 딸기 케이크를 발견한 은정의 눈이 아이처럼 기대로 가득 차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딸기 케이크 조각 하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덕분에 운은 서둘러 오늘의 첫 커피를 내리고, 초록색 테로 장식된 동그란 흰색 사기그릇에 케이크 한 조각을 내어왔다.     

“딸기 케이크 엄청 좋아하는데-. 여기서 보니까 너무너무 반갑다!”     

여기서 이렇게 예쁜 케이크를 보다니 행복하다며 연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로 아이처럼 행복하게 웃는 얼굴에 운은 가슴 한편이 몽글하게 부푸는 느낌이었다.     

“든 자리는 티가 안 나도, 난 자리는 안다고. 여기가 생긴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네. 시간이 참 빨라.”

“하루하루는 긴데, 모아두고 보면 금방 지나가는 것 같아요.”     

운이 은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에 있을 땐, 하루하루 지쳐 돌아가는 쳇바퀴처럼 빨랐고. 시골에서의 하루들은 빼곡하고 자잘한 노동으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맞아! 밖에 눈곰돌이들 엄청 많이 만들었던데. 역시 카페 사장님이라 손재주가 좋은가?”     

‘작은 동네라, 소문이 빠르니까. 괜한 말은 조심하는 게 낫겠지.’

운은 말을 아끼기로 하곤, 은정의 칭찬에 조금 양심을 찔린 채 머쓱한 웃음으로 답을 때웠다.     

“저번에 소율이가 준 거로 만든 거죠? 소율이가 저거 죽 늘어선 거 보면 진짜 좋아하겠다.”

“그러게요.”     

운은 웃으며 동감했다.      

“그나저나, 딸기 디저트가 자주 나왔으면 좋겠는데……. 아, 맞아! 그럼 되겠네.”     

아쉽게 중얼거리던 은정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갑자기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명함 한 장을 꺼내 건넸다. 덕분에 얼떨결에 명함을 받아 든 운의 눈동자가 어리둥절했다.     

“거기로 연락해 봐요. 아마 소량도 도매가격으로 받을 수 있을 거야-.”     

이웃 좋다는 게 뭐야. 은정이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이내 기다렸다는 듯이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가 금방 끊고서 남은 커피를 한 모금 더하곤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급한 일이 생겨서 이제 가봐야겠네요. 그럼,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사장님!”

“네, 안녕히 가세요.”      

운은 사근사근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고 깨끗하게 비워진 접시를 바라보다가 테이블을 정리하고서 부엌 서랍에 보관해 두었던 홍차 티백을 꺼내 들고 창문 너머 하얀 눈 곰 군락지를 바라보았다.     

“정말 든 사람 자리보다, 난 사람 자리가 표나네.”     

문득 티백을 선물한 단골손님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행방이 묘연해진 오전 단골의 빈자리를 다시 한가하게 곱씹을 새도 없이, 오늘따라 인근 공공기관의 직원들, 동네의 단골손님들 몇몇이 차례로 소소하게 공간을 메웠다.

그렇게 나름대로 분주했던 낮 시간이 지나가고 나자, 다시 어둑한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저녁 8시쯤. 운이 서둘러 가게를 마감하고, 대문을 닫고는 밖으로 나섰다. 운은 낮에 은정이 준 명함에 적힌 딸기농장 번호로 통화했던 내용을 곱씹으며 걸음을 옮겼다.

‘죄송하지만, 집으로 와주시겠어요? 요즘 일이 하도 바빠서, 하우스가 손님 맞을 분위기는 아니거든요.’

예상외로 자신의 예상보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에 조금 놀랐던 것 같다.

게다가 딸기농장주인이 일러준 주소는 생각보다 가까운 덕분에 그 약속을 핑계 삼아 일렬로 죽 늘어선 가로등의 주황색 불빛 아래서 겨울밤 산책을 즐기는 중이었다.

눈이 내린 지 얼마 안 돼서인지 겨울 공기는 오히려 포근했고, 녹은 눈이 얕게 남아서 흙과 뒤섞여 있는 것을 차박차박 소리 나게 밟으며 걸어가다 보니 자신의 키보다 조금 더 큰 높이의 갈색 벽돌로 쌓아 올린 담벼락. 그리고 그 위로 겨울의 찬바람에 눌려 죽은 듯 버석해 보이는 녹색이 바랜 넝쿨이 눈에 들어왔다. 

넝쿨을 따라 다시 걸음을 옮기니 활짝 열린 대문 너머로 그린 듯 예쁜 주황색 지붕이 얹어진 가정 주택이 보였다. 담벼락과 같은 갈색 벽돌로 지어진 꽤 커다란 크기의 가정 주택은 따뜻하고 정감 가는 모습이었다.

앞마당에 대단히 가꿔놓은 건 없지만 주택으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놓은 커다란 돌들이 바닥에 징검다리처럼 놓여있고 주택의 바로 옆으로는 임시 창고처럼 보이는 공간이 보였다.

운이 자연스럽게 주변 탐색을 마치고, 마침내 주택의 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몇 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어?”     

문을 연 사람도. 그리고 문 앞에 서 있는 사람도. 동시에 마주친 서로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가게 단골손님 김윤오였다.

운은 예상치 못하게 등장한 얼굴을 보며 커다란 눈을 연신 끔뻑거리다 의문과 함께 고개가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생각해 보니, 지금껏 소율의 엄마 은정만 보았지. 아빠는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어……. 소율이 아버님?”     

윤오는 잠시 멍하니 운을 쳐다보다가, 누군가 망치로 한 대 때린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든 얼굴로 큰 소리를 냈다.     

“아니,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윤오가 기가 막힌다는 듯 자기 뒷덜미를 움켜잡으며 말을 이었다.     

“남의 혼삿길 막히는 소릴 그렇게 쉽게 하면 어떡합니까?”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하는 말에 운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다시 윤오의 뒤편에 서 있는 소율을 응시했다. 두 사람의 모습을 관망하던 아이는 해맑게 웃더니, 뒤에서 짧은 팔로 윤오를 둘러 안았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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