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울림 Oct 27. 2024

행복과자점 6화

자신이 내내 더운 교실에 고여 있는 동안 친구들의 계절은 변하고 있었다.

계약직 2년 중 1년째에 그만두었을 뿐이다. 퇴근하면 독서실에 갔고, 주말에는 몇 군데에서 공기업 채용 필기시험을 쳤고. 그러다 운이 좋으면 최종 면접에 가서 떨어졌고. 그리고 다시 반복. 그러다 다시 출근, 그리고 다시 독서실. 

숨을 쉴만한 삶이었던가.

그렇게 같은 과정들을 반복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너무 많았나 봐. 난 그 정도에 못 미치는 사람이었는데.’

하. 운이 숨을 내뱉으니 다시 하얗게 입김이 새어 나왔다. 그녀는 더 이상 여름의 네모난 교실의 시험장에 고여 있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손에 쥔 휴대전화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전화를 받지 않고 손에 쥔 채로 몇 번의 진동이 더 울렸을까. 곧 전화가 끊어졌다.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장님, 안 추워요?”     

검은 패딩을 걸친 은정이 뒤에서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왜 혼자만 밖에 나와 있어요? 잔치가 재미없나?”     

도망갈 거면 같이 가요. 그렇게 말하며 은정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냥 바람 좀 쐬려고요. 앉아서 마시기만 하니까, 좀 취한 것 같아서….”

“그렇구나.”     

은정이 운의 옆에 나란히 앉으며 대꾸했다.      

“사장님이 이장님 생신 케이크를 만드실 줄 몰랐는데. 덕분에 맛있게 먹었네요.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운은 옆에서 웃으며 말하는 은정의 모습에 문득 그녀가 딸기 납품에 도움을 주었단 사실이 떠올랐다.     

“저, 근데. 딸기농장은….”

“아-.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말을 안 했더니 본의 아니게 속인 것처럼 됐네요. 그리고 혹시나 부담스러우실까봐…….”     

은정의 눈썹이 휘어지며 난처한 표정을 짓자, 운은 서둘러 손사래를 치며 말을 덧붙였다.     

“아니에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에이, 그런 거면 다행이고. 그리고 이웃 간에 뭐 그런 걸로 감사 인사까지 해요. 그보다 하늘 좀 봐 봐요.”     

은정이 가리키는 하늘을 올려다보자, 아까보다 더 별이 가득해진 것처럼 보이는 밤하늘이 눈에 담겼다.     

“여긴 별이 참 잘 보여요. 그렇죠?”     

운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힐긋 살피곤 은정이 말을 이어 나갔다.      

“여기가 시골이라, 빛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이전보다 하늘을 올려다본 일이 많아져서인지 모르겠는데. 서울에 있을 때보단 훨씬 별을 많이 본 것 같아요. 그래서 좋아요.”     

차가운 겨울 공기가 폐부 깊숙이 밀려들어 왔지만, 밤하늘은 여전히 반짝거렸다. 잠시 말없이 둘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가, 다시 은정이 말문을 열었다.     

“맞아. 난 윤오가 카페 단골인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윤오가 사장님이랑 친한 친구라던데.” 

“…네.”

“대답이 좀 늦었는데요.”     

웃음 띤 목소리로 은정이 말하자, 운은 머쓱하게 웃었다.     

“윤오가 친해지고 싶은 거예요. 사장님이랑”

“…저도 친구가 생긴 것 같아서 좋아요.”

“정말이죠?”     

은정은 천연덕스럽게 눈꼬리를 휘어가며 되물었다. 운이 별다른 말 없이 그저 웃어 보이자, 은정은 이제 몸이 차가워졌다며 들어가야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덩달아 운도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요즘 사장님은 괜찮아 보여요.”     

문득 은정이 건넨 말에 운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냥. 사장님이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     

그때 표정이, 내가 이 마을 처음 왔을 때랑 같아서. 그래서 그런 게 기억에 남았거든요. 은정이 기억을 더듬는 듯 시선을 느릿하게 굴리며 나지막하게 덧붙였다.

운은 그 말을 곱씹으며 다시 마을회관으로 들어가, 혼란한 테이블들 사이를 가로질러 화장실로 향했다.

쏴아아. 수도꼭지 아래로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에 손을 씻고, 고개를 들어 세면대의 거울을 빤히 응시했다.     

“…지금 얼굴.”     

그렇네. 그녀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짧게 혼잣말하곤, 가볍게 손에 남은 물기를 털고서 화장실을 나왔다.     

“어디 갔다 왔어?”     

윤오가 자신이 앉아있는 테이블 앞을 지나는 운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 주위로는 한바탕 술잔치를 했는지 어느새 나가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윤오는 낯빛에 붉은 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냥. 바람 좀 쐤어.”     

그가 운의 대답에 씩 웃었다. 그리곤 자신의 맞은편에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운은 별수 없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더 마실 거야?”     

윤오가 소주병을 들며 묻는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휴대폰의 진동 소리와 함께 뜬 발신 화면을 보더니, 진동을 끄곤 그대로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안 받아?”

“어, 괜찮아.”

“집에 언제 가려고. 좀 취한 거 같은데.”

“안 취했어. 조금만 더 마시고 갈 거야. 어차피 내일 오픈 준비도 해야 하니까…….”     

작지만 나도 자영업자거든. 우스갯소리처럼 덧붙이며 운은 슬며시 웃었다. 그 얼굴을 마주 보곤 윤오도 따라 피식 웃어넘길 뿐이었다.     

“근데, 넌 왜 이 동네에서 백수로 통해?”

“명목은 프리랜선데. 옛날 어르신들 눈에는 아침에 회사도 안 나가니까 백수로 보이시겠지. 뭐. 어쩔 수 없지.”     

안 그래도 동네에 청년이 얼마 없다고 동네에 힘쓸 일 있을 때마다 불려 나가. 윤오가 투덜거림 비슷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무슨 일 하는데? 왜 내 신상만 털리고, 넌 아무것도 안 알려줘?”

“그냥 개발 외주. 그리고 네 신상이 털렸다기보단, 동네 자영업자 사장님은 원래 주민들만의 연예인이니까 그렇지. 얼굴이 익숙하잖아.”

“연예인은 무슨…….”

“뭐 그래도, 네가 나에 대해 궁금하다니까. 궁금한 거 있으면 다 물어봐. 친구 하기로 했으니까 성심성의껏 답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별 의미도 없는 시답잖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운은 혼자서도 자꾸만 술잔을 기울였다. 문득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생각했다. 아주 오랜만이라고. 이렇게 별생각 없이 술자리를 가지는 것도.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기분 좋게 취했다고 생각했다.

코끝에 감도는 알코올 향이 역하지 않게 달았다. 환기를 시킨다며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겨울밤의 잔치를 비현실과 현실의 경계선에 놓는 것 같았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이런 자리에 자신이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는데. 인생은 언제나 그렇듯 예상 밖으로 흘러간다고 그리 생각했다. 그러다 고개를 들자, 맞은편의 윤오와 시선이 마주쳤다.     

“유사장님.”     

운은 무슨 일이냐는 듯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사장님은, 왜 이 동네에 가게를 열었어?”

“그냥…….”     

알딸딸하게 취한 느낌이 목소리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운은 이제 그만 마실 때가 되었나. 머리론 그리 생각하면서도 서늘한 공기와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좋아서 손이 또 투명한 액체가 든 작은 종이컵을 잡고 있었다.     

“숨. 이곳이라면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냥 살아있어서 쉬는 숨이 아니라, 진짜로. 그때만큼 숨 쉬는 게 간절했던 때가 없었거든. 흐려지는 자신의 목소리를 느끼며 눈이 스르륵 감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툭.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리자 차갑고 딱딱한 테이블 대신 커다랗고 말랑한 온기가 이마에 닿았다.     

“유운.”     

이마에 닿은 커다란 손바닥은 따뜻했지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는 흐릿했다. 순간 의식은 아득히 멀어졌고.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그날의 전경이 보였다.

오랜만에 이곳에 온 날.

이제는 외할머니가 없는 집에서 한참을 가만히 앉아있던 그날. 지붕 끝에선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여름비였는지, 가을비였는지. 두 계절의 경계에 선 축축한 공기가 마당의 바닥을 두드리며 물에 젖은 흙냄새가 올라왔다.

그때. 이대로 그냥 머무르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전 05화 행복과자점 5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