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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울림 Oct 27. 2024

행복과자점 7화

5. 스케이트   


  

유독 창문 너머로 비치는 아침 햇살이 강렬했다. 자신의 침실에 있는 작은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볕이라기엔 지나치게 환했다. 그녀가 미간을 찡그리며 눈을 떴다.     

“……뭐야.”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 생전 처음 보는 장소에서 아침을 맞이한 순간의 공포는 실로 엄청났다. 그녀는 빠르게 어젯밤 일을 돌이켜보려고 했지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속은 텅 빈 위장에 공업용 알코올을 쏟아부은 것처럼 쓰렸다. 그때 닫혔던 방문 너머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러다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곧바로 문이 열렸다.     

“일어났어?”     

운은 상황 파악을 할 수 없는 눈으로 문 앞의 윤오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양팔을 얽어 팔짱을 낀 채 아직도 비몽사몽인 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운은 잠긴 목을 풀어보려고, 큼큼 소리를 내다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술을 뗐다.     

“……여기가 어디야?”

“어제, 기억 안 나?”

“…….”     

순간 잘린 필름 조각처럼 드문드문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그……. 그날 오해는 미안한데……. 얼굴이 워낙 특출나게 생겨서…….’

이런 파편 같은 장면들.

‘왜 그 얼굴로 연예인 안 해?’

‘갑자기?’

‘일반인은 뚫어져라 쳐다보면 눈치 보이는데. 연예인은 다 같이 쳐다보니까, 눈치 안 보고 볼 수 있잖아.’

어이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남자의 얼굴. 그것들이 선명해지려고 했지만, 애써 운은 그것들을 외면하려고 했다. 자신은 그 장면들이 꿈이길 바랐으니까.     

“안……나는 것 같은데…….”

“그래? 다행이네.”     

네 성격에 그거 기억하면, 얼굴도 못 들 거 같아서 걱정했는데. 그가 진심으로 염려했다는 듯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덧붙였다. 운은 그 말에 속으로 다짐했다.

‘평생 안고 가야겠다. 그 기억들은.’

그리고 다신 그 정도로 술을 마시지도 말아야겠다고. 그녀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다시금 다짐했다.     

“……근데 여긴 어디야?”

“형네 게스트룸. 저번에 봤잖아. 딸기 농장주.”     

아. 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처음인데도 익숙했던 느낌은 착각이 아니었다. 저번에 왔던 소율이네 집이었으니 그랬던 거였다.     

“아무리 그래도 남녀가 유별한데. 내 집에 데려갈 순 없잖아. 아무튼 일어나. 형수님이 해장국 끓여놨으니까.”     

그녀는 그 말을 듣고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이부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운이 부드러운 분홍색 극세사 이불을 개키는 동안, 문가에 삐딱하게 기대어 선 윤오가 그 모습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운은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돌려 그를 보자, 눈이 마주쳤고 그의 입가에서는 바람 빠지는 소리처럼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모습에 미간을 살짝 찡그리자, 그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며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그녀는 알았다. 그가 지난밤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을 보고 웃었다는 사실 정도는.

운은 자신이 머물렀던 잠자리를 열심히 정리하고, 은정이 끓여놓은 콩나물북엇국에 야무지게 쌀밥을 말아서 먹고 그 집을 떠났다. 아침을 잘 챙겨 먹는 편은 아니었지만, 숙취 탓인지 칼칼한 해장국이 유독 잘 넘어갔다.

비록 아침 밥상머리에서 윤오가 어젯밤 자신의 술주정을 조금씩 꺼내 들고 놀리는 말에 눈을 흘겼지만, 전날 과음한 것치고 나쁘지 않은 아침이었다.

그녀는 은정과 서준이 아침 일찍 비닐하우스로 향해서, 미처 감사 인사를 전하지 못했다며 윤오에게 대신 말을 전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윤오가 운을 배웅하고 난 뒤 혼자 남아 찬물을 들이켰다. 그러다 문득 어젯밤의 운이 주정 부리던 모습을 떠올리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웃었다.     

“하여튼 특이해.”     

유운이 본격적으로 가게를 준비하고 차린 건 여름의 무더위가 덜 가셨던 초가을 무렵이었고, 자신은 가을 내내 이곳에 없었다. 하지만 늦여름 서울에 올라가기 전에 그곳을 지나치다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활짝 열린 대문 너머 빈 주택의 바깥 마루에 멍하니 앉아서, 지붕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물을 바라만 보고 있던 여자. 아주 한참이나 그 자리에 앉아서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윤오는 희한하게도 그 모습이 고요한데 또 불안정해 보여서 잠시 시선이 갔다.

‘너무 무채색이었어. 삶의 희로애락을 다 잃어버린 여든의 노인 같았어. 아, 내 얼굴이. 내 표정이 이렇게 텅 비었었나. 차라리 영정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할머니 표정이 더 생기 있어 보이더라고.’

문득 운이 술주정 끝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렴풋이 알았다. 그 말은 자신이 처음 물었던 것에 대한 대답이었다는 것을.

유운에게 관심이 가는 건 자신과 닮아서 그런 게 아닐까. 그는 그런 하릴없는 생각을 하다가 오늘 하루 새로운 일과를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유운은 잠자리가 바뀌어서 눈을 일찍 뜬 탓인지, 그녀가 가게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10시가 겨우 넘어있었다. 그녀가 가볍게 스트레칭하며 오늘 할 일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간단하게 만들 만한 디저트가 좋겠는데. 운이 그리 생각하며 냉장고를 뒤적거렸다. 간단하게 할 만한 건, 크루아상 생지를 와플 기계에 눌러 납작하게 만드는 크로플 정도였다.

그녀가 냉동실에 있던 생지를 발효시키기 위해 꺼내서 스테인리스 볼에 담고 랩을 씌운 다음 따뜻한 아랫목에 두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필요할 때마다 구워서 크림이나 아이스크림 과일류를 곁들여서 내어놓으면 될 일이었다.

그때 활짝 열린 마당 너머로 서성이는 인영이 보였다. 창문 가까이 다가서니 흰머리를 곱게 틀어 올린 노인이 그곳에 서서 한참 동안 입간판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어르신-.”     

노인은 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날씨가 많이 춥죠. 안 바쁘시면 들어오셔서 차 한 잔 어떠세요?”      

사근사근 묻는 운의 물음에 노인이 희미하게 웃고는 걸음을 옮겼다. 운이 동그란 나무 탁자 앞의 의자를 빼자,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캐모마일 차인데. 이 차는 카페인이 없어서, 겨울에 따뜻하게 마시기 좋아요.”     

그녀가 투명하게 연한 노란빛을 띤 유리 주전자를 들어, 작은 유리 찻잔에 쪼르륵 따랐다. 할머니가 뿌연 수증기가 올라오는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따뜻하구먼.”     

나른하게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 자리 테이블에 조용히 앉아,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노인은 한참을 그렇게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투명한 물병과 켜켜이 쌓인 유리컵이 놓인 낡은 탁자, 그리고 한쪽 벽에 걸린 낡은 원목 시계를 순서대로 쳐다보곤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어느샌가 부엌에 다녀온 운이 나무 쟁반을 받쳐 들고 오더니, 옥색 그릇 위에 놓인 시폰 케이크를 내밀었다. 어제 남은 시폰의 마지막 조각이었다.     

“이것도 함께 드시면 좋을 것 같아요.”     

노인이 포크를 들어 한 입 맛을 보고는 해사한 미소를 지었다.     

“많이 닮았어. 여기 살던 정혜 언니 손녀딸이지?”     

뜻밖의 물음에 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얼굴이 아주 빼다 박았어. 할머니를 닮은 건지-. 손재주도 좋고, 착하고.”

“저희 할머니를 아세요?”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사장님 할머니 말이야. 늘 남을 먼저 챙기던 양반이었어.”     

그렇게 말하는 노인의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다.     

“장례식에 갔어도, 소식이 안 믿겨서. 한참을 이 근처도 못 지나갔어. 나야, 멀리 떨어져 사는 형제보다야 정혜 언니가 더 가족 같았으니까. 이젠 이 동네에 둘 다 안 살게 됐지만.”     

노인은 그냥 공통된 사람을 떠올리며, 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아온 듯했다.     

“여기가 텅 비어있을 거 같아서, 와보기가 싫었는데. 이렇게 여길 따뜻하게 보전해 줘서 고맙네. 정혜 언니. 자네 할머니도 좋아할 거야. 사람을 참 아끼는 사람이었거든.”     

운은 노인의 말을 듣고 사뿐히 웃었다. 기억하고 싶은 누군가를 다른 사람과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참 행운이 아닐까. 그녀가 차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난 노인을 배웅하고 텅 빈 공간에서 창가 자리에 앉아 라디오를 틀었다.

그녀의 시선은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쪽 손으로 테이블에 턱을 괸 운이 가볍게 눈을 감고 라디오 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러다 무의식중에 이 집의 진짜 주인이었던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오랜 세월 엄마로 불렸고, 할머니로 불리면서 이름조차 희미해지는 역할들로 살아온 사람. 

윤정혜.

그게 자신의 할머니 이름이었단 사실을 한참이나 잊고 지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수화기 너머로 넘어온 엄마의 목소리는 이제 막 울음을 삼켜낸 것처럼 떨렸다.

어느 날 갑자기 날아든 죽음이었다. 아니, 사실 갑자기는 아니었을 지도 모르지. 할머니는 엄마가 유년기를 보냈던 시골 동네에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오래도록 머물렀다. 그리고 올해 초쯤 지병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신 지 한 달도 안 돼서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정신없이 할머니의 삼일장을 마치고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문득 자신이 행복해서 웃어본 지가 꽤 오래되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냥 일상처럼 사람들과 대화하고, 습관처럼 그리고 의무감처럼 웃었다. 정말 행복하고 즐거워서 웃었던 적은 떠올려 보려고 노력해도 좀처럼 기억나질 않았다.

돌이켜보니, 너무도 오래된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할 때쯤 기차는 이제 막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바깥이 까만 어둠으로 가득 차자, 유리창이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그 순간 유리창에 비친 모습이 너무 무채색이라서 스스로가 낯설다고 생각했다. 까맣게 텅 빈 표정에서 예전의 자신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건조하지. 그냥 매일매일 건조하기 짝이 없어.

메마른 흙 위에 가끔 얇은 물줄기가 내리고. 또. 그게 다야.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운은 긴 회상에서 깨어나 오랜만에 찬장에서 원두 그라인더를 찾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에티오피아 원두를 찾아 그라인더에 적당히 쏟아붓고, 핸들을 열심히 돌리기 시작했다.

도르륵. 도르륵. 적막한 공간에 그라인더가 돌아가며 뭉툭한 금속 날과 원두 알맹이들이 마찰하는 소리를 냈다. 그 뭉툭한 소리가 좋아서, 그리고 깨끗하게 갈려 나가는 게 좋아 몰입해서 갈다가 정적이 깨졌다.     

“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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