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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울림 Oct 27. 2024

행복과자점 16화

“뭔가 최고 단골 타이틀은 뺏긴 것 같지만, 대신 행복과자점 최초의 원데이 클래스 수강자라는 타이틀은 땄으니 됐어요.”     

도영이 그렇게 장난스럽게 말하고선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운은 잠시 둘 사이에 정적이 흐르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이 무색하게도 도영이 선뜻 먼저 운을 뗐다.     

“사장님, 전 사실 여기로 발령 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정말 매일같이 밤마다 울었어요.”      

갑작스러운 도영의 말에 찻물을 내려다보던 운이 고개를 들었다.     

“이 낯설고 먼 곳에서, 아는 사람도 없이 일하는 것도 힘들고…. 고개를 돌리면 허허벌판 아니면 논, 아니면 산, 나무밖에 없는데. 어떻게 보면 풍경이 좋지만, 어떻게 보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이곳에 와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시나몬롤을 들여다보는 그녀의 눈이 정말이라고 증명이라도 하듯 반짝거렸다.     

“저는, 정말 즐거운 게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러다 얼마 전부터 이 공간을 좋아하게 됐어요. 여기서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나한테서 나는 원두 냄새가 좋았어요. 매일 어떤 디저트가 나올까, 기대하는 것도 좋았고. 그냥 이렇게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늘려나가는 게 좋아진 것 같아요.”     

그렇게 늘어놓던 말이 잠시 뚝 그치더니, 그녀가 머뭇거리며 다시 입술을 뗐다.     

“오랫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었어요.”     

도영은 가만히 반짝거리는 현관 옆 트리를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만으로 5년 정도 준비한 것 같아요. 그런데 합격하고 나서 그리 오래 행복하진 않았어요. 사람이 참 간사하죠. 그렇게도 간절했는데 말이죠. 오히려 허무했던 것 같아요.”     

도영은 지난 일을 회상하듯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아주 흔한 이야기일지도 몰라요.”     

이제 와 돌이켜 보면, 그다지 특별한 것도 없는 사연이었다. 

도영은 꽤 괜찮은 인 서울 대학교의 인문계열 전공자로 졸업 후 공시 준비를 시작했다. 그녀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반에서 항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좋은 성적을 거둬 왔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기 머리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아니, 오히려 좋은 편이었다.

그녀의 부모도 그리 믿었고, 그래서인지 근속 10년만 되어도 희망퇴직 이야기가 나오는 사기업에 다니기보단 정년퇴직할 수 있는 공무원이 되길 바랐다. 그렇게만 된다면 적어도 평범한 보통의 인생은 보장되리라. 그럼 행복하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늘 모호했던 자신도 더 이상 헤매지 않고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재수와 휴학 한번 없이 바로 대학을 졸업했고, 스물넷의 초봄부터 그녀는 동네의 작은 독서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공시 공부를 시작했던 첫해의 시험은 그녀에게 있어서 모의고사였다. 네모난 교실 가득히 들어찬 무채색의 공시생들 사이에서 빽빽한 숨을 내쉬며 다소 여유로운 마음으로 시험을 쳤다. 어차피 다음 해의 시험을 기약하며 치는 모의고사에 불과했으니 잘 보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속이 울렁거렸다.

이 많은 사람들을 제치고, 자신이 해낼 수 있을까. 그런 압박감 탓인지 처음 시험을 치고 온 그날에 울면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불안 속에서도 꾸준히 노력했다. 

‘불안하면 그만큼 노력하랬으니까. 그럼 괜찮아진댔으니까 괜찮을 거야.’

모두가 그랬다. 유튜브에 가득한 스터디 위드미 채널들의 합격자, 그리고 인터넷 강사가 그랬다. 그렇게 되뇌었다.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으면서, 공시 준비를 한다니. 정말 복 받은 거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며 정해진 시간표대로 빼곡한 하루하루를 쌓아갔다. 아침 7시 반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곧장 8시 반까지 독서실로 갔다. 그리고 휴게실에서 대충 점심과 저녁 끼니를 때우며 밤 10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스터디 플래너를 정리하고 잠을 잤다. 그렇게 반복됐다.

부모에게서 금전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취업준비생과 공무원 시험 준비생도 즐비한데, 자신은 따뜻한 부모님의 집에서 공부에만 집중하면 됐으니까.

친척들 말대로, 인터넷 강사 말대로, 유튜브에서 보았던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대로.

정말로 쉬운 일이었다. 

겨울이면 따뜻한 히터가 나오고,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그런 안정적인 곳에서 하루 종일 공부만 하면 된다니. 얼마나 좋은 여건인지. 그들의 말처럼 정말로 쉬운 일이었다.

그러다가도 밤마다 울면서 실패에 대해 생각했지만, 별다른 대안은 없었다. 자신이 행복해지려면, 성공하려면, 이 길밖에 남아있질 않았다. 다른 동기들이 인턴십을 할 때, 자신은 독서실에 틀어박혀 시험에 나올만한 한국사와 행정학, 국어 문법, 영어 문법 따위를 암기하고 있었으니까.

낮인지 밤인지도 구분되지 않는 창문 하나 없는 독서실에서,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며 네모난 칸막이에 막혀서 그 닭장 같은 칸만이 자신의 전부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경쟁하고 싶지 않아서,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을 갖고 싶어 한 건데. 또 경쟁이라니.’

그런 우스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책상 앞에 덜 앉아있어서. 더 일찍 잠들어서. 밥을 먹는 게 느려서.

그렇게 탓해보아도, 어느 순간부터는 집중력이 흩어져 눈앞의 글자들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숨이 콱 막혔다.

공시 준비를 시작하던 첫해에 본 시험은 당연히 첫 번째 불합격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불합격, 세 번째 불합격이 이어졌다. 불합격이란, 정말로 적응할 수 없는 것이었다. 누가 자주 겪으면 익숙해진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한 걸까. 생각해 보곤 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필기에 합격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스스로 필기 점수가 합격선에 들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저 면접에서 떨어질 그런 필기 합격자였다. 알면서도 경험 삼아 면접을 보러 갔다.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다.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정말 합격이 코앞이었다. 

그리고 다음 해 컴퓨터 모니터에 뜬 건.

네 번째 불합격이었다. 사실 지방직 직렬까지 포함한다면 이제 그 수보다 훨씬 더 많은 낙방이었다.

그렇게 번번이 계속 커트라인 근처에서 미끄러졌다.

실패. 낙방. 불합격. 그리고 경력도 없이 스물아홉이 되어서 맞이하는 새해는 정말 별로였다. 눈이 녹고, 또 새로운 봄이 온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오랜만에 들어간 인스타그램에는 알고 지내던 대학교 동기들, 그리고 고등학교 동창들, 또래들의 피드가 알고리즘에 떴다.     

#22기 동기들 #화이팅 #신입사원 #00기업     

도영은 그런 것들이 보기 싫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자격지심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땐 그런 자격지심을 가진 모습조차도 한심하고 싫었다. 

‘아, 뭔가 해낸 애들은 이렇게 자랑하고 있구나.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SNS에 전시된 대기업 사원증, 전문직 합격증, 임용장. 그런 것들이 도무지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제외하고서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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