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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울림 Oct 27. 2024

행복과자점 22화

그 시각 윤오의 등장에 이어서 바쁘게 연준의 부모가 이어서 도착했다. 읍내에서 로컬 식료품 가게를 운영한다는 부부는 파티에 곁들일 지역 브랜드 맥주와 운 좋게 겨울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질 좋은 쑥을 구했다며 두 손 가득히 든 채 밝게 웃는 얼굴로 도착했다.

캠핑장의 야외 바비큐장처럼 천막 밖에서 참숯에 불을 지펴 준비해 둔 삼겹살과 목살, 소시지를 서준과 윤오가 초벌로 익힌 다음 천막 안의 전기 그릴에서 다시 지글지글 익히기 시작했다.

함께 익어가는 대파와 편 마늘, 그리고 떡 사리 같은 것들에서 나는 맛있는 냄새에 추운 날씨에 입맛이 돌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게 무색하게도 배가 고팠다. 운은 옆에서 거들려고 했지만, 한 치도 허용하지 않는 서준 탓에 자리에 앉아서 연준의 부모와 함께 은정과의 소소한 잡담을 떠드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어정쩡하게 두 가족 사이에 끼어서 어색하게 하루를 보내면 어떡하나 고민하던 것이 무용하게도, 운은 지금 이 시간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스스로가 의외라고 생각했다. 

서준이 고기가 모자란 것 같다며 밖에서 좀 더 초벌 해오겠다고 천막 밖으로 나갔고, 은정은 부엌에서 마실 것을 더 가져오겠다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반대편에 앉은 연준의 부모는 두 아이의 접시에 고기를 놓아주며 밥을 챙기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아, 유운. 팔 아프다-.”     

그런 사이 윤오는 모두의 시선을 피해서 어깨가 결린 사람처럼 팔을 앞뒤로 크게 움직이며 말하곤, 운을 힐긋 보곤 은근슬쩍 자신이 들고 있던 집게를 그녀의 손에 떠넘겼다. 

이젠 그의 패턴에 익숙해질 참이었다. 동네 친구란 이런 것일까. 운은 그리 생각하며 받아 든 집게로 고기를 한 번 뒤집었다.

어느새 초벌로 익힌 고기 한 접시를 들고 천막 안으로 들어온 서준이 둘의 모습을 발견하고서 윤오의 뒤통수를 콕 쥐어박았다.     

“김윤오. 왜 손님한테 일을 시켜.”

“형…. 따지자면 나도 여기 안 사니까, 손님이지.”     

유치하게 툴툴대는 모습을 보며 운은 작게 헛웃음을 쳤다. 어떨 땐 어른스럽고, 어떨 땐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인간이었다. 처음 보는 인간군상이라 그런지, 이제는 김윤오가 흥미롭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저도 앉아서 먹기만 해서, 소화도 안 되던 참이었어요. 괜찮아요.”     

유운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곤 서준의 손에 들려있던 고기 집게를 뺏어 들곤 윤오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녀가 다시 싱긋 웃었다.     

“이제 사장님도 좀 드셔야죠.”     

어느 정도 김윤오에게 익숙해져서 운은 더 이상 지고만 있지 않았다. 덕분에 윤오는 졌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곤 그녀와 나란히 전기 그릴 위에서 익어가는 삼겹살을 뒤집고, 한입 크기로 작게 잘랐다.     

“유운. 이거 진짜 잘 익었다.”     

윤오가 먹음직스러운 갈색빛 도는 삼겹살 한 점을 그녀의 입가에 들이대자, 그녀가 마지못해 그걸 받아먹었다. 갓 구운 뜨거운 삼겹살에 혀가 데는 것 같았지만 정말 맛있긴 했다.

그렇게 분주하던 바비큐 파티가 끝나고, 식후에 캠핑 천막 안의 테이블을 어느 정도 함께 정리한 다음 후식은 실내에서 먹는 게 좋겠다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하얗게 텅 빈 테이블만 남은 모습을 보고 서준이 호흡이 척척 맞아서 정리가 빠르다는 우스갯소릴 떠들었다.

대충 정리를 끝마치고 실내로 들어가니 공기가 훈훈했다. 야외에서 뜨겁게 고기를 구워 먹는 맛도 있지만, 쌀쌀한 공기가 혼재하던 야외 바비큐를 하고 들어오니 실내 공간의 따뜻한 온돌이 더 달콤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은정은 운이 크리스마스 케이크로 들고 온 부슈 드 노엘을 거실의 테이블로 들고 왔다. 그녀가 새하얀 케이크 상자에서 통나무처럼 생긴 부슈 드 노엘 케이크를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연준의 눈이 동그래졌다.     

“우와. 통나무다!”     

롤케이크처럼 동그랗게 말은 초코케이크의 겉에는 진한 가나슈 크림을 거칠게 발라놓아 꼭 울퉁불퉁한 통나무 조각처럼 보였다.     

“나무를 먹는 거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소율이 더하는 말에 운은 픽 웃었다.     

“이건 부슈 드 노엘이란 케이크야.” 

“부시?”     

생소한 케이크 이름에 아이들은 두 입을 모아 어설픈 발음으로 돌림노래처럼 물었다.     

“부슈 드 노엘은 프랑스어로 크리스마스의 통나무라는 뜻이야. 원래 프랑스에서는 연말에 장작을 태우면서 나쁜 운을 없애고 새해의 복을 기원하면서 장작을 태우곤 했대.” 

“그런데 왜 태울 수 없는 통나무 케이크를 만들었어요?? 나무를 태워야 하잖아요. 케이크는 먹는 건데.”     

소율이 똑 부러지게 질문하자, 운은 손짓으로 커다란 화로의 모양을 표현하듯 움직이며 말을 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집 안에는 통나무를 태울만한 큰 난로가 없어졌거든. 그래서 더 이상 집에서 통나무를 태우기 힘들어져서, 그 대신 크리스마스 날 통나무 모양의 케이크를 만들어 먹게 된 거지.”

“그럼 우리가 새해가 되면 떡국을 먹는 것처럼 프랑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이 케이크를 먹는 거구나. 신기하다!”     

연준의 말을 따라 어른들이 크게 웃었다. 통나무 모양을 한 부슈 드 노엘은 겉은 진한 다크 커버춰 초콜릿을 섞은 가나슈 크림을 썼는지, 많이 달지 않고 고급스러운 맛이었다. 짙은 카카오 케이크 시트와 안에 든 우유 생크림. 세 박자가 알맞게 어우러지는 맛이 딱 크리스마스의 달콤함이라고 생각했다.

거실의 텔레비전 옆에다 꾸며놓은 트리는 반짝거리고 있었고, 별다른 대화지점이 없을 거로 생각했던 크리스마스 모임의 인원들은 의외로 끊임없이 나오는 이야기 덕분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은정 부부의 첫 귀농 이야기부터 연준 부모가 들어오는 식료품들을 처음엔 매출보다 본인들이 더 많이 먹었다는 이야기까지.

어디선가 사람은 한 명당 하나의 책이라고 들었던 적이 있던 것처럼 각각의 이야기가 책처럼 재밌었다.

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오는 틈에 비어있을 소율의 방에서 인기척을 느끼곤 자신도 모르게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거실에서 은근슬쩍 사라진 윤오가 산타 복장을 한 채로 이제 막 새하얀 산타할아버지의 수염을 붙이고 있었다.     

“네가 산타야?”     

황당한 얼굴로 운이 묻자,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곤 조용히 하고 문을 닫고 방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 손짓했다.

탁. 방문이 닫히고 나서야 윤오가 남은 빨간색 산타 모자를 야무지게 챙겨 쓰며 입을 열었다.     

“요즘 애들은 똑똑해서, 산타가 나타나면 아빠가 산타 분장한 거 다 안대. 그래서 내가 하게 된 거지, 뭐.”

“네가 이 수염 붙인다고 속아…?”

“아마도.”     

그는 대충 불 꺼놓고 행세하면 속는다고 태평한 소릴 하며, 빨간색 선물 주머니를 챙겨 들었고 운에게 어서 가서 거실의 트리를 뺀 나머지 불을 끄라고 일렀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면서도 순순히 그의 말대로 방을 나가 불을 다 꺼야 산타할아버지가 올 수 있다는 말로 아이들을 설득하고 불을 껐다.

이윽고 산타 분장을 갖춘 김윤오가 허허허 웃으며 어설프게 산타할아버지 목소리를 내며 등장했다. 그의 말대로 어두운 탓인지 미처 산타의 실체를 알아보지 못한 두 아이는 자리에서 방방 뛰며 좋아했다.

산타가 연준과 소율이 자신에게 쓴 편지를 받았다며 건네는 선물을 받고는 뛸 듯이 기뻐했다. 어른들의 눈에는 누가 봐도 김윤오였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푸근한 산타할아버지로 보였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선물 전달식이 끝나고, 산타는 현관으로 걸어 나가선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꺼놓았던 실내의 불은 켜자, 아이들은 산타에게서 받은 선물 포장을 뜯어 부모에게 자랑하기에 바빴다.

그 사이를 틈타, 운은 이 추위에 밖으로 사라진 가짜 산타의 행방이 궁금해져 마당으로 나왔다. 요리조리 고개를 돌리다가 랜턴이 켜진 듯 환한 텐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별생각 없이 걸어가 텐트의 입구 지퍼를 내리자, 그 안에 있는 까만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어….”     

산타 모자를 벗고, 이제 막 빨간 산타 상의를 벗으려고 한쪽으로 옷을 젖힌 상태에서 눈이 마주친 탓에 운이 잠시 버퍼링에 걸린 사람처럼 제자리에 굳어있었다.

그나마 그가 안에 흰색 반소매 티를 입고 있었던 덕분에 서로 민망한 상황은 면했다고 생각하며 낮은 숨을 내뱉었다.     

“문 좀 닫아주지.”     

겨울바람 춥잖아. 한겨울에 딸랑 반소매 티 하나를 입은 윤오가 그렇게 말하자 운은 큼큼 헛기침하며 짧게 미안이라 말하곤 다시 원래대로 지퍼를 닫아주려고 했지만, 그가 만류했다.     

“아니, 너 들어오고 닫으라고.”

“난 왜?”     

의구심을 품으면서도 운은 그의 말대로 텐트 안에 얌전히 들어와 앉곤 추운 바람이 불어오는 텐트의 입구를 다시 봉했다. 낮에 아이들과 있을 때는 그리 좁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윤오가 들어오니 텐트 내부가 꽉 찬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인중에 남아있던 하얗고 풍성한 수염을 잡아떼곤 산타 주머니에서 무언가 뒤적거렸다.     

“이거 빠뜨렸거든.”     

운은 그의 커다란 손바닥 위에 놓인 초록색과 빨간색이 교차하는 줄무늬 포장지로 감싸인 네모난 물체가 보였다.     

“이게 뭔데?”

“크리스마스 선물.”

“내꺼도 있어?”

“응.”     

그가 낮은 목소리로 답하며 텐트 안에 유일한 빛이던 캠핑랜턴을 탁 껐다. 주위가 온통 깜깜해져서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데, 부스럭부스럭 포장지를 뜯는 소리만이 들렸다.

이윽고 몇 번 태엽이 감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작은 불빛이 어두운 텐트 안을 밝혔다. 어릴 적 들어보았던 단순한 멜로디의 오르골 소리가 들렸고, 그제야 윤오의 손 위에서 반짝거리는 물체가 보였다.

작고 동그란 스노우볼 안에서 환한 조명이 켜진 채로 새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 쌓인 작은 오두막집과, 바로 옆에 트리가 있는 풍경에서 끝없이 하얀 눈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화이트 크리스마스처럼 보였다.     

“…진짜 예쁘다.”     

유운은 동글해진 눈으로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작게 탄성을 터뜨렸다. 그건 자신이 이제껏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스노우볼이라고, 그리 단언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스노우볼에 향해 있던 시선을 올리자, 순간 김윤오의 검은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눈매가 반달처럼 부드럽게 휘어졌다.

갑작스럽게 눈이 마주친 탓에 놀라서 심장박동이 조금 빨라졌나 생각했다. 그런 혼란 사이로 나직한 음성이 들렸다.     

“메리 크리스마스, 유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이 순간이 떠오를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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