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짓는 관계의 집

by 박창옥

우유를 마시려고 무심코 양쪽으로 열다가 오른쪽 날개에 그려진 하트를 보았다. 6학년 학생이다. 하트를 그려서 슬그머니 가져다 놓고 나를 보고 수줍게 웃었다. 어떤 학생은 우유를 건네며 “맛있게 드세요” 한다. 어떤 학생은 나가면서 “문 닫을까요?” 묻기도 한다. 어느 날은 , 다른 날은 교장선생님♡, 배구대회가 있는 날은 배구!!♡, 며칠 연수 다녀오면 우유곽 네 개가 카드섹션처럼 나란히 서 있다. , , 선생님, .

아까워서 우유를 마시지 않고 냉장고에 두고 가끔 보았다. 집에서도 우유를 마실 때면 나도 모르게 날개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날개가 여백으로 있으면 왠지 허전하다. 우유를 좋아하지 않아서 억지로 먹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운 좋게도 마음 건강을 챙길 수 있었다. 마트의 우유에도 학생의 살가운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여백도 나에게 의미를 주고 상상하게 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주는 기쁨이 크다.

호야를 소개한다. 5년 전에 아이들 고모가 선물로 주었다. 일회용 포트 두 개를 모아 납작한 갈색 사기 화분에 한데 심었다. 늘 두터운 잎만 보는 관상용 식물이라고 생각했다. 덩굴식물이어서 잎이 한두 개 더 나와도 다를 것이 없었고 덩굴이 조금 길어져도 늘 그런 것처럼 다르지 않았다. 남향 거실의 통유리문 모서리에 흰색 화분 거치대가 있다. 그 꼭대기에 올려놓았다. 잎이 늘어져서 고위층을 차지할 수 밖에 없었다. 늘 그 자리에 있었기에 거치대와 화분이 붙박이장처럼 존재감 없이 느껴졌다.

어느 날 보면 살아있는지 고민스러울 정도로 잎이 두텁고 화석처럼 딱딱하며 투박한 광이 난다. 확실한 것은 일회용 포트에 심어진 단촐한 식물이었는데 늘어지는 것을 보면 자라기는 하나 보다. 날이 따뜻해지면 간혹 끝부분에서 아기잎이 나오기도 했다. 그 잎은 보드럽고 초록잎 사이에서 아이보리와 핑크빛이 단연 돋보인다. ‘난 귀염둥이 아가야’ 하는 것 같았다.

5월, 호야꽃을 처음 보았다. 어느 날 갑자기 연보라빛 꽃망울이 아래로 맺혔다. 작은 꽃봉오리 30개 정도가 덩어리로 다발지어 있었다. 거실 바닥에 엎어져서 고개를 들고 꽃을 보았다. 꽃이 팡 터지니 별모양으로 가운데는 진보라빛이다.

모든 식물은 꽃이 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어쩐지 호야는 꽃이 필거라는 기대를 안했다. 호야는 4~5년 자라야 꽃이 피는데 호야꽃이 피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였다. 역으로 생각해보았다. 그 기간 동안 물, 햇빛 등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었다면 그 가정은 당연히 평화롭고 행복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꽃이 피나보다.

우리 아이들도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꽃이 피지 않는 시기의 호야처럼. 그래도 아이들은 조금씩 성장하고 꽃을 피운다. 호야꽃처럼. 우리 아이들이 꽃피기까지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주고 그 속에서 소소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면 좋겠다. 그러면 학생들도 잠재 능력을 꽃피우겠다. 아이들이 성과를 가져오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채워주면서 그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면 좋겠다. 그러할 때 우리 아이들은 꽃을 피울 테니까요. 이것이 내가 짓는 집이다.

우리는 동일한 공간과 시간에 살고 있지만 각자 자신이 지은 집에서 살아간다. 내가 사는 물리적 집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관계 맺고 사는 관계의 집도 내가 지은 집이다. 학교는 어제와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하루에 하루를 포개며 되돌아보고 정성스럽게 채워간다. 오늘도 학생들이 행복한 집을 짓기 위해 공사 중입니다.

안녕하세요? 교장 선생님!

이제 전 곧 **초등학교를 떠나는데 교장선생님 생각이 나서 이렇게 연필을 들었습니다. 어색했던 친구들, 선생님과 교과서를 본 지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졸업이라는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네요!

제가 교장실에서 운영위원회 회의를 참관했을 때(작년) 선생님들의 진지한 태도와 내용을 듣고 사실 좀 놀랐어요. 우리가 매일 하는 방과후학교와 좋아하는 체험학습까지 많은 선생님들의 숨겨진 노력이 있는 줄 몰랐거든요.

3년 동안 배구부, 2년 동안 기자단을 하며 가장 보람찼던 건 올해였던 것 같아요. 배구대회 때 오셔서 공도 주워주시고 함께 파이팅 해주시고 기뻐하시는 걸 보고 교장선생님께서 저희에게 얼마나 진심이신지 알게 되었어요. 올해 1학기 교장실에 가서 춤추고 하던 게 잊지 못할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초에서 2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인생이라는 긴 소설에서 초등학생이라는 페이지를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제가 꼭 커서 **초에 좋을 일 할게요!

미소가 정말 예쁘신 교장 선생님 잊지 못할 거예요. 감사했습니다.

2024년 12월 끝자락

승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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