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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Jul 01. 2022

식당이나 해볼까? #prologue

-절대로 하기 싫었던 일



음식을 만드는 게 좋다. 먹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음식을 만들어 남들과 함께 먹는 게 좋다.


장보는 게 좋다. 재료를 둘러보고 가격을 살펴보고 장바구니에 넣으며 어떤 음식을 만들지 상상하는 과정이 좋다.


할 수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요리하는 것을 귀찮아하지 않았다. 기꺼이 내 몫이었다. 별 것도 아닌 재료로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 내면 사람들이 좋아했다. 그리고 나에게 칭찬을 해주었다. 결국 난 그게 좋았던 것 같다.


요리가 주는 기쁨은 딱 거기까지다. 취미는 말 그대로 취미일 뿐 직업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명백했다. 나는 우리 엄마가 식당을 하면서 자기의 삶을 얼마나 포기하며 살았는지를 바로 옆에서 목격했다.


그런 나의 속도 모르고 아내는 식당을 해보는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아내는 한 가지를 더 권유했다. 여전히 식당 일을 하고 있는 엄마와 함께 해보라는 것!

엄마가 다른 곳에서 일을 하는 것보다 당신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냐며 아내는 진지하게 나를 설득했다.


사실 엄마는 아버지의 암수술 이후로 자신이. 하던 식당을 접고 아버지의 쾌유에 인생을 걸었다. 인생을 걸었다는 것은 시간과 돈 모두를 올인한 것을 의미한다. 엄마의 올인은 결과적으로 주효했다. 아버지는 건강을 되찾았고 엄마는 다시 식당 일을 시작했다. 이번엔 자기의 식당이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식당을 다시 시작할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다.

생사를 오가는 아버지의 암 치료에는 많은 돈이 들었다.


엄마와 함께 식당을 하라는 아내의 권유에 나는 화가 났다. 불같이 화를 낸 후에 (언제나 그렇다) 내가 왜 화가 났는지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그녀가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꽤 유명한 지도 회사에서 기획팀장을 맡고 있었다. 여행자들이 여행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여행지도를 기획하는 일.

멋진 일이었다. 7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재미있게 일했다. 월급이 크게 오르지 않아도 회사를 관두지 못했던 건 단지 그 일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20대가 아니었다. 단지 일이 좋다는 이유로 회사를 다니기엔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은 40대로 막 접어들고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여행지도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다. 회사는 어려워졌다. 결국 언제 관두냐가 문제지 계속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 일이 좋았다. 누군가의 여행을 대신 기획해주는 일.

그 일이 참 좋았다.

아내는 나보다 현실적이다. 나의 일만 생각하는 나와 다르게 아내는 우리의 일을 계획했다. 식당일도 그래서 나온 말이었다.


사실 내가 화가 난 것은 아내가 나의 일을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뜨끔하게 양심을 찔려서였다.


마흔이 다 되도록 나는 나만 생각하고 살아왔다. 엄마가 어떤 일을 하던 내가 쉽게 바꿀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대책이 없었다. 부모님은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데 나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아내에게 너무 부끄러워서 화가 났다. 너무 아프게 찔려서 버럭 화부터 냈던 것이다.


결심을 했다.

회사를 관두기로, 그리고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그렇게 나는 나를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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