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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Jul 01. 2022

식당이나 해볼까? #01

-퇴사

사표를 냈다. 짐이 참 많았다.


다 읽지도 못한 책이 미련하게 책장에 꽂혀있었다. 잘 쓰지도 않는 머그컵이 3개나 있었다. 일이 끝난 후엔 한 번도 펼쳐보지도 않은 간행물이 서랍 바퀴가 망가질 정도로 무겁게 쌓여 있었다. 어쨌든 나의 노고가 묻어 있는 간행물이었고 참고용으로 모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한 번도 참고한 적은 없다.


쓰던 컴퓨터를 켜고 외장하드에 개인적인 파일들만 옮겨 담고 끝났으면 좋으련만 나는 그렇게 깔끔한 사람이 아니었다. 회사에 무슨 미련이 그렇게 많다고 그동안 개인적인 물품들을 자리에 많이도 가져다 두었다.

미련했다.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물품을 많이 가져다 두었다는 건 그 자리에 꽤 애정이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모두 퇴근을 한 후 내 자리에서 조용하게 일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온전히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는 시간. 동료들과 쓸데없는 얘기를 주고받지 않아도 되는 시간. 나는 그 시간이 좋았다.


시간 외 수당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야근을 하는 것에 대해 미련하다고 얘기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었다. 다만 좀 더 내가 맘에 드는 결과물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야근도 때론 괜찮았다.


어쨌든 회사는 회사다. 끝나면 퇴직금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부터 한다. 이걸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새로운 시작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회사를 나오면 그때부터 회사와 관련된 모든 경력은 스톱이다. 나는 더 이상 기획자가 아니었다.


회사를 관두고 좀 쉬면 좋으련만 상황은 그리 여유롭지 못했다. 내 의지로 관둔 것이니 실업급여는 받을 수 없었다. 당장 나는 한 푼도 벌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아내는 시간을 좀 가져보라고 했지만 그게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을 갖지 않기로 했다. 그게 맘이 편했다.


가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할지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예산에 맞는 가게를 부동산 사이트를 통해 찾아 헤맸다. 하루 종일 리서치를 하고 리스트를 작성해서 매일 저녁이면 아내와 함께 가게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봤다. 가장 큰 조건은 역시 예산이었다.


우리의 조건은 간단했다.

권리금 + 보증금이 6,000을 넘지 않을 것!


그게 우리가 빚을 지지 않고 융통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이 조건에 부합하는 가게면 일단 리스트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한동안은 계속 리스트를 업데이트시켰다.


엄마도 일을 관두게 했다. 엄마는 내 의견을 듣고 일말의 토를 달지 않고 내 계획에 함께 하기로 했다. 가게를 시작하면서 나는 엄마의 기분이 어떨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작은 가게를 한다는 나를 엄마는 어떻게 생각할까? 조금 슬프지 않았을까?


나를 낳은 이후로 엄마는 식당일을 하며 나와 동생을 키웠다. 많지 않은 벌이를 쪼개 학원을 보냈고 굳이 배우지 않아도 되는, 형편에 맞지도 않는 피아노까지 시켰다. 열심히 학원을 보낸 것은 적어도 자식들만은 자기처럼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맘이 컸을 것이다. 그런데 돌고 돌아 아들이 식당을 하겠다고 하니 그 고생들이 생각나며 허탈하지 않았을까?


나는 엄마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결정을 잘했다고 얘기해주었다.


“그래. 요즘은 퇴직도 빠른데, 더 늦게 나와서 고생하는 것보다 지금 나와서 하루라도 빨리 자리 잡는 게 더 좋은 생각일 수 있어.”



엄마는 담담했고 단단했다. 나는 그에 반해 점점 고민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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