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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이나 해볼까

#처음 받았던 팁

by 조명찬

가게를 처음 열었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자리는 주방 바로 앞에 있는 bar.


친구들이 문득 내 얼굴이 보고 싶어 들르면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자리였고 부담 없이 혼술을 즐기는 손님들을 위한 자리였다. 실제로 종종 친구들이 찾아주었고 혼술 하는 손님들도 앉아서 조용히 술을 즐겼다. 가게를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손님들이 별로 없던 시절의 나는 바에 앉아 있는 친구나 손님들과 소소한 얘기를 주고받으며 무료함을 달랬었다.


예상외로 점심 식사 손님들이 조금씩 늘게 되면서 매출을 높이기 위해 bar를 없애고 2인 테이블 두 개를 들여놓았다. 지금도 그게 너무 아쉽긴 하지만 코로나 시절, 정부의 '거리두기'정책으로 인해 저녁 장사는 거의 되지 않았고 점심장사에 집중하던 시절이라 bar보다는 테이블이 현실적으로 필요했다.


bar에 앉았던 손님들은 짧게나마 소통을 했었어서 다른 손님들보다는 아무래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씩 그때의 그 시간이 그립다.


첫눈이 내린 지 얼마 되지 않는 날이었다. 매장은 조용했고 이미 적당하게 술이 오른 듯한 중년의 남녀가 매장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 모두 군살이 없는 몸매라 말쑥한 중년의 느낌이었다. 술살과 나잇살이 도드라지게 보이지 않는 중년들은 무엇을 입어도 꽤 멋지다. 남자는 검정 패딩에 청바지, 그리고 가벼운 트레킹화를 신고 있었고 여자는 무릎까지 오는 검정 코트에 몸에 루즈하게 붙는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여자는 10년 만에 한국에 왔다. 캐나다로 돌아가기 하루 전, 선배라고 부르는 남자와 우연히 가게에 들른 것이었다. 예전보다 소주가 많이 묽어졌다고 했고 연남동이 정말 많이 변했다고 했다. 경험상, 홍대 출신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하길래 홍대 출신이냐 물었더니 어떻게 알았냐고 나에게 되물었다.


‘그래 보였습니다.’라고 에둘러 답했다.


여자가 남자에게 말했다.


-선배! 인생이 힘든 건 너무 많은 계획을 세워서야. 그런데 그걸 다 이루지 못하고 살잖아. 그러니깐 맘이 힘들어. 사장님 그렇죠?


여자는 종종 자기들의 대화에 나를 끌어들였다.


매장에 김건모의 ‘미안해요’가 흘렸다. 볼륨을 높여줄 수 있냐고 여자가 말했다. 다른 손님도 없었어서 김건모의 숨소리까지 들릴 수 있도록 볼륨을 높여주었다.


선배가 얘기했다.


-내가 너한테 참. 그러니까 미안한 게 참 많아. 이 노래처럼 말이야.


가만히 노래를 듣고 있던 여자가 선배의 말에 조금 느리게 대답했다.


-그땐 다 그랬지. 그래도 잘해줬어.


-아니야. 이번에 너 왔을 때도 별로 시간도 못 냈잖아. 자꾸 미안하기만 해. 다 해주고 싶었는데.


-피. 그럼. 나 가지 말라고 할 수 있어?


선배가 마시려던 술잔을 테이블에 놓으며 얘기했다.


-내가? 할 수 있지. 있어.


-피. 용기도 없으면서….


선배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마시려던 소주잔을 마저 비웠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말없이 몇 잔을 더 마셨다.


여자가 어묵탕을 다시 데워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때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났던 선배가 비틀거리며 정수기 위에 놓여있던 컵을 모두 쏟았다. 말이 많지 않던 선배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자가 매장 바닥에 나뒹군 컵을 주우며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얼른 컵을 정리했다. 빠르게 컵을 수습하다가 다시 컵이 바닥에 나뒹굴기도 했다. 컵을 다 엎어놓고 미안하다고 말도 하지 않은 남자에게 화가 나있었다.


-사장님, 여기 얼마죠? 너무 취했나 봐요. 오랜만에 만난 건데 이제 저 사람 술도 잘 못 마시네요. 저 내일 캐나다로 돌아 가는데 너무 편한데 와서 그나마 기분이 괜찮아졌어요. 진짜 오랜만에 한국 온 거거든요.


-감사합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한국에 오면 꼭 들를게요.


-그래 주세요.


여자는 계산을 마치고는 2만 원을 테이블에 더 얹었다. 나는 얼른 손으로 돈을 무르며 얘기했다.


-괜찮습니다.


-너무 좋은 시간, 그리고 음악에 대한 감사의 의미예요.


진심 어린 눈빛에 나는 더 이상 거절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처음으로 받는 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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