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알라 Aug 23. 2022

가장 어려운 말 한마디

내 아이에게 사과해 보셨나요?

 나는 참 반항적인 사춘기를 보냈다. 학교 땡땡이는 기본이고, 단식투쟁, 침묵 투쟁을 수시로 진행했다. 엄마가 하라고 하는 일은 왠지 하기 싫었고, 가끔 엄마 지갑에 손을 대기도 했다. 엄마는 모르는 일이겠지만 학교에서도 말썽을 몰고 다니는 학생이었는데, 학교 담을 넘다 바지가 찢어진 일이며,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빠져나가 반 친구들의 호빵을 공수해다 준 일이며, 모의고사를 며칠 앞두고 영화를 보러 갔다가 그 주인공에게 빠져서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포스터를 뜯어오기도 하고, 수업시간에 도시락 몰래 먹는 것은 기본이요, 몰래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다가 들켜서 카세트테이프를 뺏기고는 선생님께 바락바락 대들어 다시 돌려받은 일까지, 열거하자면 할 얘기가 차고 넘칠 정도로 파란만장한 학창 시절이었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추억할 거리 많은 즐거운 시절이었지만 우리 엄마 입장에서 보자면 굉장히 골치 아픈 딸을 키우느라 오죽 고생하셨던 시절이었다. '너 같은 딸 낳아서 고생을 해 봐야 엄마 속을 알지.' 하셨던 말씀을 그땐 그냥 흘려들었었는데 지금 와서 다시 그 말씀이 떠오르는 걸 보니 분명 말이 씨가 된 것이다. 그 말이 30년이 지난 후 진가를 발휘하게 될 줄이야.


 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드디어 그 아이가 사춘기가 되자 우리 집에도 평화의 기운이 깨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욱 하고 성질을 내기도 하고, 엄마의 말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며 자신이 옳다는 것을 바락바락 대들며 말 한마디 지지 않고 따지고 들었다. 근거 없이 엄마는 틀렸다거나, 엄마는 모른다거나 하는 말로 엄마가 하는 말들을 모두 기성세대의 잔소리로만 치부해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면서 아이는 자신의 방문을 닫기 시작했다. 방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대화는 조금씩 짧아졌다. 방문을 쾅하고 닫는 퍼포먼스도 빼놓지 않았으며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에게 꼭 사과를 받아내며 내 방식대로 나의 화를 풀었다.

 물론 평소 대화를 많이 하고 아이의 성정도 온순한 편이라 비교적 무난한 사춘기 시절이었음은 인정한다. 그래서 그렇게 한 번씩 아이와 말다툼을 하고 나면 후회가 밀려온다. 아이가 그럴 수도 있지, 그러고 싶은 거겠지, 아이도 후회를 하겠지, 하면서 다시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더 현명하게 대처해야지 마음먹게 된다. 물론 마음먹은 대로 되었던 적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이와 싸움이 잦아진 건 사춘기 들어서이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어렸을 때 아예 안 싸웠던 것은 아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요구가 있으니 엄마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려 노력했으며 그런 방법 중 하나가 떼를 쓴다거나 소리를 지르고 우는 방법도 포함이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아이가 6살 때의 일이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아이는 아이대로 놀고, 나는 집안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이는 혼자서 하는 놀이가 잘 풀리지 않았는지 바쁜 엄마에게 와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녁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는 엄마가 아이의 짜증을 쉽게 받아줄 리가 없다. 처음엔 잘 달래 보려 했지만 결국 둘 다 화가 나서 서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6살 아이가 엄마를 이길 수는 없는 법. 결국 아이는 울면서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고 조용히 일은 수습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내게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아이 입장에서는 사과를 했으니 모든 문제가 풀린 것이고 아무렇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화가 난 상황에서 그렇게 빨리 마음을 풀고 오는 아이를 보고 당황스러웠다. 그날 나는 아이와 진심으로 싸웠던 것이다. 하루 종일 일하다 들어와서 피곤한 몸을 겨우 추슬러 다시 집안일을 하고, 아이의 화풀이 상대까지 되어야 하는 상황에 몰리자 아이의 짜증을 빌미로 감정을 분출했던 것이다. 아이는 짜증이 난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빨리 정리하고 엄마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먼저 다가와 이야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그랬던 것인데 막상 나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으니 아이도 당황했을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무뚝뚝하게 엄마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으니 조금 있다 이야기하라고 하며 뒤돌아서 내 일을 마저 했다. 그리고는 금방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얼마나 철이 없는지, 아이보다 옹졸한 마음으로 사과도 못 받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마음이 들자 나는 아이에게 곧바로 사과를 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일, 어른으로서 아이를 어른스럽게 품어주는 일, 미안한 일이 있다면 솔직하게 아이에게 이야기하는 일. 그날 이후 내가 배운 일이다.


 그리고 내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났다. 엄마에게 무수히 대들었던 모든 순간들 말이다. 내 딴에는 모든 반항이 정당했다. 그런 순간마다 엄마는 대단히 화를 내고, 심지어는 매를 들었다. 내 존재가 인정받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수록 나는 엄마에게 더욱 반항했고, 밖으로 겉돌았다. 그때 나는 엄마가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무조건 틀리고 엄마가 하는 말만 맞다고 하는 것에 화가 많이 났었다. 어떤 폭력에도 나는 사과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런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지금 나는 어떤 어른이 되었는가.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어린 사람들에게 존대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권위 있는 말과 행동이 그 사람을 권위 있는 어른으로 만드는 것이다. 권위 있는 어른이란 실수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이 완성된 어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른이라 하더라도 틀린 선택을 할 수도 있고 실수도 할 수 있는 법이니 다만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권력이나 힘의 관계에서 밀렸을 때만이 아니라 자신보다 약하고 어린 사람들 앞에서도 솔직하게 인정하는 모습은 더욱 그러하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6살 아이에게도,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에게도 나는 내가 미안한 순간에는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나, 미안하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모든 짐을 벗는다. 어린 사람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주는 일이며, 내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갖게 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나에게 배움의 순간이 온다. 세상 어려운 말이지만 나는 그로 인해 조금 더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의 독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