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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Aug 26. 2022

아이의 독립

 아이를 낳고 키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계획했다. 아이가 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학습을 시키지 않겠다던가, 학교에 들어가면 사교육은 피아노 외에는 시키지 않겠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사춘기 시절에는 어떻게 키울지, 학교는 어디를 보낼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용의주도하게 계획했고 그 계획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고 살았다.(이렇게 써놓고 보니 좀 무서운 여자같다.) 그 계획 중에는 아이가 스무 살이 넘으면 독립을 시키겠다는 것도 포함이 되어 있었는데 그것마저도 나는 계획대로 몇 달 전 아이를 독립시켰다. 하지만 아이의 독립은 계획했던 것 치고는 뜻하지 않게 시작되었다.

 

 몇 달 전, 평소처럼 아이와 한바탕 투닥거렸던 날이었다. 청소년기부터 시작한 자기 방 쓰레기매립지화가 20살이 넘어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내 잔소리가 늘어나고 있었다. 참다못해 나는 아이에게 ‘너 나가서 혼자 살어.’라고 소리쳤고, 아이는 잔소리의 수위가 높아진 것에 분노하며 '엄마는 무슨 딸한테 집을 나가라고 해?' 하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다음날 아이는 조금 달라진 태도로 내 곁에 오더니 


"엄마, 내가 나가서 사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


 하며 독립 의사를 내비쳤다. 집을 나가라는 말이 처음엔 어이가 없는 말로 들렸겠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니 나가서 사는 것도 그리 나쁠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의 독립은 그렇게 시작됐다. 스스로를 먹여 살리는 일도, 자신의 주변을 혼자서 질서 있게 정리하는 일도 해봐야 깨달을 것이라 생각했고, 혼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툭 던진 말이었는데 아이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내 의견을 수용해 주었다. 집을 알아보고, 집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 고민하면서 하루하루 조금 들뜬 모습으로 이사를 준비하는 아이를 보니 아이를 독립시키자고 했던 것이 썩 나쁘지 않은 생각같았다. 그렇게 이사를 나가고 집이 아이의 구상에 맞게 정리가 될 때까지 나는 아이 집을 방문하지 않고 조금 기다렸다. 아이가 생활이 안정되어야 진짜 독립생활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몇 달이 지난 후 아이의 집에 가봤더니 내 예상보다는 나름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예전의 아이 방의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어쩌면 모처럼 정리한 날 내가 찾아갔던 걸 수도 있지만 자신의 집을 자신의 생활 패턴에 맞게 정리하고 꾸미는 일을 익숙하게 해내고 있었다. 뭐든 스스로 해보는 것 말고는 자신에게 정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기도 했다. 


하지만 혼자서 사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어려운 일들을 혼자서 해결해 나가는 일이 결코 녹록지 않은 일인 것이다. 관리비, 전기세 등 세금 내는 일이며 집을 관리하는 일 같은 것들은 죄다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일들인 것이다. 아이는 그럴 때마다 매번 전화를 해서 물어보았고, 나는 해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도움을 주었다. 


 며칠 전 일이었다. 밤 10시가 넘었는데 아이에게서 사진 한 장이 카톡으로 보내졌다. 사진으로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는 없었다. 아이도 처음엔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물어보려고 보낸 사진이었는데, 결국 아이가 먼저 찾아보고 알아낸 바에 의하면 쉬파리의 알이었다. 생긴 것이 깨처럼 생겨서 아무것도 모르고 보자면 정말 깨를 바닥에 흘려놓은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그 깨처럼 생긴 쉬파리 알이 온 집안 곳곳에 다닥다닥 붙어있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그날 카톡은 사실 엄마에게 보낸 SOS였던 것이다. 여름이라 쉬파리가 금방 꼬이기도 했겠지만 아이의 성향을 잘 아는 터라 아마 먹고 남은 음식 쓰레기를 제때 버리지 않고 방치했으리라 짐작했다. 쉬파리의 알은 하루 만에 애벌레가 되고 금방 성충이 된다고 하니 보내준 사진으로 짐작컨대 며칠 내에 쉬파리의 천국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오밤중이었고, 찾아가기엔 거리상으로도 매우 먼 거리여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결국 아이는 혼자서 두 시간여의 사투 끝에 모든 알을 찾아 제거를 했다고 한다. 매우 웃픈 사건이었으나 앞으로 음식물쓰레기를 방치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날을 이후로 아이는 집에서 어떤 음식도 해 먹지 않겠다 다짐한 듯 보였다. 하지만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날도 있을 터인데 아무것도 해 먹지 않고 사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몸을 조금 부지런히 움직여 음식물쓰레기도 빨리 버리고, 집을 조금 청결히 유지하면 좀 더 편한 독립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조금 살다 보면 경험하게 될 것이었다. 선택은 아이의 몫이지만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렇게 아이는 독립을 했다. 이제 진짜 성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아이가 경험하고 살 일은 매우 많다. 나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온 지 어언 20년이 넘었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은 날들이 아닌가. 하지만 혼자서 그것을 맞닥뜨려 겪어보고, 해결해 가다 보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길 것이다. 그러다 어려움이 생기면 지금처럼 또 엄마에게 전화하면 되지 않은가. 모처럼 싱글라이프로 여유롭게 살아가는 내게 아이의 삶은 드라마보다 재미있으니 그런 전화는 자꾸 받아보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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