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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Sep 02. 2022

올해도 어김없이 생일은 돌아오고

 오늘은 내 생일이다. 생일이 되면 주변 지인들로부터 축하며, 선물 등을 받는 일에 즐거움을 찾는 이들이 많겠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매년 찾아오는 생일이 그렇게 반갑지가 않다. 나이가 한 두 살 들어갈수록 그것을 축하하는 행위가 썩 의미 없어 보이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전해오는 축하 메시지들에 일일이 답변을 하기도 영 쑥스럽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랬다.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나는 아무에게도 내 생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각종 SNS에 기본적으로 올려져 있는 내 생일도 모두 차단한 상태이다. 그랬더니 항상 통과의례처럼 있었던 카톡 생축메시지조차 올핸 한통도 오지 않아 되려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딸아이조차 그냥 지나가는 것은 매우 섭섭한 일이다. 단 한 명 정도는 내 생일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 사람은 가장 소중한 내 가족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내 딸아이는 무언가를 기억하는데 재주가 없어 간혹 엄마 생일조차 잊어버리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어느 해인가는 단단히 마음이 상해서 아이에게 역정을 낸 일도 있었다. 뜻하지 않은 엄마의 어깃장에 아이는 놀랐고 이듬해부터는 잘 기억하고 있다가 그럴듯한 생일상을 차려주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약발이 조금 떨어져 가는지 한 두 달 전 넌지시 내 생일에 대한 이야기를 무심한 듯 툭 던져보니 그제야 아이는 ‘아, 맞다!’ 했더랬다. 


 요란스럽게 아이에게 내 생일을 기억하게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나는 아이에게 그럴듯한 생일잔치를 바라지는 않았다. 내 생일날 딱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아이의 편지뿐이었다. 아이와 둘이서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아이에게 서로의 생일을 챙겨주는 방법으로 큰 선물이 아닌 편지를 서로 나눠보자고 제안했다. 아이는 별생각 없이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아직까지 진행형인 이 방법은 생일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아이 입장에서는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선물이기도 하다. 


 편지를 써서 교환하기로 했던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 중 비중이 컸던 이유는 아이에게 선물을 주는 날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그리고 아이의 생일까지 선물을 전부 챙겨주다 보면 아이 선물만 사다가 1년이 후딱 지나갈 판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아이는 부족하게 커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부족함이 없이 자라다보면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조차 사라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이가 배고픔을 느낄 때까지 기다려주고, 아이가 심심함을 느낄 때까지 내버려 두고, 무언가를 갖고 싶을 때 그것이 진짜 필요한 것인지 생각할 시간을 주고, 그래서 무언가가 하고 싶은 순간이 생기는 것을 기다려주는 것이다. 그것이 아이가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는 의지를 갖게 하는 동력이 된다는 것을 믿었다. 어쩌면 모든 걸 따져가며 키우다 정작 그 속에서 결핍을 느낀다거나,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주눅이 든다거나 할 수 있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실제로 부족하게 크지는 않았다. 나는 하루 세 끼 건강한 밥상을 아이에게 제공했고, 더위나 추위로부터 아이를 지켰으며, 아이에게 모든 배움의 기회를 열어놓고 부족함 없이 지식의 곳간을 채워주었으며,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꼭 사주었다. 기본적으로 물질적인 풍요를 주기보다는 몸과 마음에 가장 중요한 것들을 채워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생일과 같은 대표적인 선물을 받아야 하는 날들엔 아이에게 선물을 챙겨주지 않았다. 가끔 내 아이가 사랑스럽거나 또는 아이 없이 떠난 여행에서 문득 아이가 생각날 때, 그럴 때 나는 아이의 선물을 이벤트처럼 챙겼다.





 올해 독립을 시작한 아이가 엄마의 생일을 챙겨 주겠다고 오늘 저녁 퇴근 후 오겠다고 한다. 오늘은 출근을 해야 하는 평일이라 생일날 아침마다 항상 끓여주었던 미역국을 못 끓여주니, 내일이라도 끓여주겠다며 포부가 당당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엄마의 미역국을 항상 담당했던 터라 맛은 보장할 만하다. 내 관심은 아이가 어떤 편지를 써 왔을지에 있다. 처음 아이에게 편지를 쓰자고 제안했던 것은 사실 아이의 글쓰기 습관을 길러주고자 하는 의도도 조금 있었다. 글쓰기 습관을 갖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매일 쓰는 일기만 한 것이 없겠지만 매일 일기를 쓰는 일은 그만큼 아이 스스로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적당히 강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편지 쓰기를 제안했던 것이다. 10년이 넘게 아이의 편지를 받아오면서 느끼는 거지만 실제로 아이의 글 실력이 점차 좋아지는 것이 매년의 편지 속에서 보이기도 했다. 글솜씨뿐만 아니라 아이의 생각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이 보여, 내 입장에서는 아이의 성장 사진 한 장보다도 더욱 소중한 것들이었다.

 아이는 가끔 모아둔 용돈을 털어 내가 좋아하는 랍스터를 사주기도 하고, 직접 빵을 구워 케이크를 만들어주기도 했는데, 그런 마음들이 너무 소중하고 사랑스럽지만 오늘도 나는 아이의 편지가 가장 기대가 된다. 편지를 쓰는 과정이라는게 그 순간은 오직 그 사람만을 생각하며, 그 사람과 대화하듯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쩐지 애인에게 편지를 받는 듯 두근대며 기다리게 된다. 아이는 편지를 쓰는 동안 마음속 단어 하나하나 쥐어짜 내서 써 내려갔을 것이다. 참으로 소중한 선물이다.

 내가 태어난 날이 무슨 큰 의미가 있으랴마는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매년 기다릴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나는 나의 생일선물로 아이의 편지를 계속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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