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한수저만...
곡기를 끊겠다는 의미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지금이 옳은 걸까?
치매안심병동에서 근무하면서 늘 존재하던 케이스들이 있다.
바로 식이 거부하는 어르신들...
식사를 거부하기 시작하면 금세 어르신들의 상태가 나빠지기 때문에 우린 어떻게 해서든 어르신들이 뭐라도 드시게 해야 했다. 정말 컨디션이 떨어지고, 연하 곤란이 있거나, 흡인성 폐렴이 반복되면 콧줄을 해야 하지만, 어르신들의 단순 식이 거부는 오로지 간호사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대소변에 문제가 있거나, 복부불편감이 있거나, 입안에 염증, 삼킬 때 불편감이 있거나, 혹은 치아에 문제가 있어도 잘 드시지 않지만 그런 것들 말고도 어르신들의 식사 거부 양상은 다양했다.
용 어르신은 평소에도 식사시간이 다른 분들보다는 오래 걸리긴 했다. 식사하다 말고 노래를 부르거나, 갑자기 입을 다물고 절대 벌리지 않을 때가 있어 어르신을 웃기거나, 앞에서 온갖 쇼를 하며 어르신이 입을 벌린 틈에 한수 저 씩 떠 넣어 드리곤 했었다.
보통 다른 어르신들은 이유 없이 식이량이 줄거나 거부할 때 식욕촉진제를 사용하면 보통은 3일 정도 후부턴 잘 드시곤 했는데.. 용 어르신은 식욕촉진제를 사용한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식사 때마다 전쟁이었다.
한 번씩 그래도 벌려 주던 입은 꽉 다문채, 양치질도 힘들고, 수분 섭취도 안 되는 상태였다.
탈수 우려가 있어 담당의는 용 어르신에게 수액 처방을 했다. 힘겹게 구부러진 팔에 주사를 놓고 돌아서면
1분도 채 되지 않아 제거해 버리시니.. 유지 자체가 어려웠다. 몇 차례 반복 주사를 하며 실랑이를 했으나 결국은 영양제 제일 작은 250ml의 반에 반도 채 주입되지 못한 채 우리는 멈춰야 했다.
용어르신에게 시행한 피검사나 x-ray상에서도 염증 상태나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소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간병사가 낯설어 그런가 싶어 간호팀에서 보조를 했으나 여전히 용 어르신의 다문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내가 이틀 쉬고 출근한 어느 날이었다.
용 어르신이 이틀 동안 식사를 전혀 못 드셨다고 했다. 이번엔 입을 너무 꾹 다문체 전혀 협조하지 않는 통에 도저히 먹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용 어르신의 식사보조는 내 전담이 되었다.
그나마 내가 앞에서 " 어머니~~ 수저 들어가요~~ 아~ 아~ "하며 온갖 애교를 부리면 어르신이 날 보며 웃느라 입을 한 번씩 벌려 주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식사 때마다 거의 한 시간에 걸쳐 어르신 식사 보조를 하고 나면 어르신 입 주변은 물론이고 주변이 온통 죽들이 튀어 엉망진창이 된다. 입에 넣었던걸 뿜어 내시며 내 얼굴로 뱉어 내시기도 하다 보니 내 옷도, 내 얼굴도 버리기 일 수였다.
그래도 이렇게 해서라도 어르신이 죽 한 그릇을 다 비워 내시면 그날 내 할 일을 다한 듯 뿌듯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어르신 아침 식사 보조를 위해 늘 그랬듯 나는 그 앞에 어르신을 보며 고개를 숙이며 수저를 들고 "어머니~ 우리 오늘도 잘 먹어봐요~ 아~~ 아~ " 해도 날 쳐다보지 않으셨다.
"어머니 자꾸 식사 안 하시면 큰일 나요~ 우리 요거 죽 반만 드시게요~ 아~~ 용 어머니~~ 아~~ "하며 내가 수저를 어르신 입 가까이 들이내는 데도 꿈적 않고 고개를 떨구고 계셨던 어르신,
그러다 고개를 들어 날 빤히 보더니 웅얼거리듯 한마디 툭 내뱉으셨다.
"나 좀 죽게 냅둬."
옛날 어르신들은 돌아가시기 전에 곡기를 끊었다.
더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겠다는 그 행위는 단순한 거부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고요한 선언이자, 자연의 섭리를 따르려는 자신만의 의사 결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도, 지금도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고, 남은 날을 억지로 이어가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큰 품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의료는 삶과 죽음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했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곡기를 끊는 순간’을 더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식욕을 잃어도 약물을 사용해 억지로라도 배고픔을 느끼게 만들고, 그마저도 소용이 없을 때는 콧줄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하며 마지막까지 생명을 붙잡는다.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더 오랜 삶을 누리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것을 잃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음식을 먹는 것은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향유하는 기본적인 행위이며,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소중한 일상의 일부다.
맛을 느끼고, 씹고 삼키는 모든 과정이 누군가에게는 생의 의미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식이 거부하는 어르신들을 그저 바라만 봐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은 의료인으로서는 당연한 감정이다.
가족과 의료진은 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생명을 연장하려는 모든 노력이 과연 당사자의 존엄을 지키는 일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억지로 생명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그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답게 머무를 수 있도록 돕는 것일 테니 말이다.
이런 나의 고민들은 오늘 이 순간도 계속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