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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자 Sep 08. 2024

무너져 내리는 과정, 세 번째

궤양성 대장염 진단, 그리고 직장암 의심

 이젠 확실하게 궤양성 대장염을 진단받아 난치병을 얻은 나였다. 계속 추적 관찰을 통해 치료하면 그때처럼 심각하게 아플 일은 없을 거라는 말을 반신반의하고 있던 도중, 교수님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다음 말도 또 절망이었다.

 "그리고.. 검사 결과 상 직장암으로 의심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 그래요..?"

 더 가라앉을 바닥도 없다. 직장암으로 의심되는 부분만 정밀 검사를 해보자고 한다. 검사 결과는 다음 외래 진료를 볼 때 확인하자는 교수님의 말과 함께 진료는 끝이 났고 나와 엄마는 검사실로 향했다. 이제 검사실이 낯설지 않다는 사실에 씁쓸할 뿐이다.

 정밀 검사를 끝내고 집으로 향할 땐 어떻게 돌아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상황에 온전한 정신을 가질 이가 몇이나 될까? 제발 아니길 바랐던 난치병을 진단받고, 직장암이 의심된다는 말까지 들은 상태에서 말이다. 하지만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야 한다. 엄마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내 표정의 작은 변화로 금방 알아채겠지만 말이다.


 집에 도착하고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앉아있었다. 엄마는 직장암에 대해 검색해보고 있었다. 그러다 날 안심시킬만한 얘기들이 나오면 말해줬다. 하지만 불안정한 상태였던 나는 엄마에게 화만 내고 방문을 닫았다. 닫힌 문 바깥에서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지 그때의 나는 모른다.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벼랑 끝에 서 있었다. 어제의 삶과 오늘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부터 궤양성 대장염의 증상을 억제시키는 약을 매일 먹어야 했고 음식을 조심해야 했으며, 화장실을 가는 게 두려웠다. 혹시나 또 피가 나올까 봐. 또 복통이 시작될까 봐.


 엄마는 내가 화를 낸 이후 병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밥상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누구보다 내 병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위와 장에 좋은 음식들, 속이 편한 음식들로만 이루어진 밥상은 내 마음 어딘가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아마 계속 공부했겠지. 밤에 엄마가 잠든 머리맡에는 "염증성 질환, 먹으면서 치료하기"라는 책이 있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방문을 닫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원래 취업을 준비하려고 했던 달이 다가왔다. 하지만 궤양성 대장염 진단 초기인 나는 병원을 주기적으로 다녀야 했고 회사를 다닐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고립되었다. 엄마와 아빠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 나는 방 밖으로 나갈 용기도 사라졌다.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다 큰 아들은 스스로가 부끄러웠던 것이다. 지금도 가끔 그때의 통장 기록을 보면 가슴이 저려온다. 일을 하지 않아 통장에 들어올 돈이 없어야 했지만 입금 기록은 드문드문 있었다. 입금자 명에 적혀 있는 건 엄마 이름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정밀 검사 결과를 보러 가는 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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