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기록
나는 유영 중이다.
유영 游泳
1. [명사] 물속에서 헤엄치며 놂.
2. [명사]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일.
국어 사전 뜻을 놓고 해석해보자면, 좋게 말해 헤엄치며 ‘놀고’ 있고, 냉철하게 말해 그냥 되는 대로 '떠돌아다니고' 있다. 그 물속에는 내가 선택해야 할 여러 다른 방향의 선택지들이 적힌 카드가 둥둥 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물에 둥둥 떠있는 중이고.
아무리 유영을 하는 중일지라도 주체성을 지키는 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체적인 선택과, 결정과, 그에 따른 행동이 이어질 때 비로소 자아가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각 조건이 하나라도 빠지면 결국 결핍을 야기하고 만다. 처음부터 끝까지 과정에서 주체적이지 못하거나, 과정 자체에서는 주체적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지 못한다거나, 결정까지 해 놓고 정작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한다면 결국 어느 순간 갈망하게 되고, 후회하게 된다. 자아가 완성되고, 온전함을 유지하는 과정은 늘 평안하지만은 않다. 언제나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불안을 느끼게 되는데, 그 불안을 적당한 수준으로 잘 조절하고 주도적으로 컨트롤함으로써 자아의 주체성을 잘 지켜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와 의논하고 도움을 받을 지언정 결국 마지막 선택의 순간은 나 혼자 스스로 감당해야한다는 점에서 외롭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 불안을 감수해낼 때야 비로소 자아가 완성되는 것임을 차차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지금 내 앞에 놓은 선택은,
병원 퇴사.
몇 달에 걸친 결정의 과정이 불안하고 힘들지만, 결국 결정하였고, 이제 행동만이 남았다. 그 결정도 어느 날 아침 갑자기 '그래, 마음먹었어, 결정!'한 것이 아니었고, 화선지에 먹 스며드는 과정과도 같았다. 그리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래, 이제 슬슬 퇴사를 준비 해볼까 했는데, 어쩌면 이미 떠버린 마음을 가지고 지지부진하게 서성거리느니 이쯤되었으면 우선 저지르고 보는 게 답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 4월까지 일하고, 우선 5월부터는 그 어느 것에도 속해있지 않을 예정이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어디에서 무엇을 할 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 막연히 다른 나라에 가서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생각 중이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병원을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큰 그림은 몇 년에 걸쳐 그려왔으니까 중심을 잘 잡으면서 지금껏 그래온 것처럼 계속해서 유영(游泳)할 생각이다. 한 마디로 큰 방향성은 잡되, 조급해 하지 않고, 물에 둥둥 떠서 흘러가는 방향대로 가보려고 한다. 마음 따라, 물길 따라, 주체적으로 유영하며.
/ 스물일곱 김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