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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염 Oct 27. 2024

뒤늦게 찾아온 방황기

우물 안 개구리

세 번째 입사한 회사는 지금까지 다녔던 회사 중 가장 체계적인 구색을 갖춘 곳이었다.

나름 규모도 있었고 업계 중 성장 속도도 빠르고 각 팀별로 분업화도 잘 되어 있었고…

입사가 확정된 후 친구에게 했던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 ‘ 이번엔 제대로 된 회사에 다닐 수 있을 거 같아.’

보편적으로 알려진 직종도 아니고 업무 자체도 처음이라 설렘이 컸지만 그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입사 후 2주 만에 바로 파견을 나갔기 때문에..

업무에 대한 지식이라도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기존에 해 왔던 일들이랑은 아예 다른 업무였고 본사에 있는 사람들은 일 쳐내느라 바쁘고 어차피 나는 파견 나갈 거니깐 거기서 일 배우라며 2주 동안 방치해 놓았다.

어떤 프로세스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짤막한 설명뿐 2주 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2주가 지난 후 파견지 첫 출근

본사에서는 ‘파견자 = 본사이미지’여서 특히나 업무를 제대로 익히고 나간 것도 아니고 부담감을 깔고 갔지만 하필 파견 나간 회사가 친오빠 다니던 회사여서 부담감은 배가 되었다.

알지도 못하는 용어들 익히고 파견 나가자마자 바로 실무에 투입되어 적응하느라 모든 체력을 쏟아부었더니 거짓말하지 않고 입사 후 6개월가량의 주말은 정말 유체이탈한 느낌이 강했다. 정신은 깨어 있어 일어나려고 하면 몸이 안 일어나지는..

파견을 나가 느낀 점은 파견 나간 거래처와도 그리고 본사 사람들과도 모두 거리감이 생긴 다는 거

거래처는 거래처니깐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본사 사람들은 파견자들은 편하게 근무한다는 인식이 깊이 박혀 있었고…

파견지에도 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고 울기도 하고 그렇게 2년 간의 파견을 마치고 본사에 복귀했던

그런데 입사 후 2주 있다 바로 파견을 나가서 그런지 본사에 돌아왔지만 내 회사 같지가 않고 새로 입사한 것처럼 낯설기가 그지없었고 오히려 본사에 적응하는 게 더 어려웠었다.

그래도 파견근무 기간 동안 큰 문제없이 일 처리 해서 그런지 거래처에서 나를 칭찬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큰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조금은 인정받은 거 같아서 기뻤다.

매일매일 전쟁터 같은 곳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바쁜 와중에 팀 분위기 적응에 꽤 시간이 걸렸다.

솔직히 나는 내 일 아니면 크게 남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내일만 문제없이 끝내고 가자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했는데 본사 팀 분위기는 자꾸 공적인 게 아닌 사적인 시시콜콜한 일까지 모두 공유해야 하는 분위기였고 앞 뒤가 다른 팀원들의 모습들이 점점 나를 지치게 만들었던 거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견뎠던 거는 몇 년 안에 얼마를 모아야겠다는 목표가 있어서였다.

나는 그냥 돈을 벌려고 온 거니 알아서들 떠드세요라는 마인드로…

그렇게 공적인 일 외에는 남의 일에 관심 없었던 내가 좀 본인들의 일에 관심을 안 가져 줘서 그랬는지 어느 순간 나를 은따 시키고 화장실에서 뒷담 하는 것도 당사자인 나에게 걸리고 아.. 이런 게 진짜 사회구나라는 걸 느끼며 버티던 중 점점 팀 내 타깃이 되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퇴사를 하게 되고 이젠 그 타깃이 내가 되는 날이 왔지만 난 잘못한 게 없으니 당당하게 더 행동했었다.

하지만 몇 년 후 나를 괴롭히던 사람이 팀장이 된 후로 점점 나도 한계에 치닫게 되었다.

나를 괴롭히던 사람이 팀장이 되었는데 그 사람이 팀장으로 있는 한 내가 진급은 할 수 있을까?!

입사 한지 얼마 안 되는 친구한테까지도 내 욕을 했다는 소리까지 들리며 동료들에게는 너 퇴사하면 방패막이 없어서 우린 어떻게 해?! 이런 소리들까지 들어가며 내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뭘까?!

나도 저 위치에 올라가면 저렇게 되려나?!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고 앞으로도 10년은 더 할 수 있을까?! 등등

내가 생각하는 리더는 팀원들의 잘못을 바로 잡아 주기도 하며 또 팀원들의 능력을 이끌어 내고 용기를 북돋아 주며 윗선에게 맞서서는 의견 제시도 현명히 할 줄 아는 본인이 살기 위해 팀원들을 방패 막이로 삼지 않는 사람이지만 지금까지 겪었던 윗선들은 이런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분이 없었고 줄타기를 잘해서 어떻게든 뭐라도 된 사람처럼 행동하려는 분들이 많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더 예민 해 졌고 회사 내 자리만 가면 이명현상과 두통으로 시작하는 하루를 맞게 되었고 위염과 위궤양, 몸에는 자꾸 알 수 없는 두드러기와 자기 전 위험한 생각들을 하는 나날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하며 병원을 방문하는 빈도 수가 나날이 늘어 갔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으며 이 작은 사회 안에 너무 있다 보니 내 시야가 너무 작아졌다는 느낌이 강했고 무엇보다 건강을 잃어가며까지 일을 할 수가 없었다.

9년 가까이 작은 집단 속 우물 안 개구리로 있던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오기로 결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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