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김
안개가 물결 위를 흘렀다. 섬세하고 외롭게. 그건 하나의 음악으로 들렸다. 조용하지만 깊이 울리는 소리가 잔잔한 대기에 파문을 일으키며 내 고막을 한껏 밀어댔다. 안개는 그렇게 마음의 고막을 뚫고 들이쳤다. 어떤 것도 가슴을 그렇게 적시진 못했다.
아마 난 사물을 눈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날부터 안개를 보았을 것이다. 동네를 떠나기 전까지 안개를 보지 않았던 날은 거의 없던 것 같다. 하지만 처음부터 안개가 음악으로 들리진 않았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안개는 음악으로 들린 날 이후, 표현할 수 없는 음색으로 나의 가슴을 적셨다.
내가 살았던 곳은 호수를 끼고 있는 동네였다. 물론 규모가 큰 저수지였지만 나는 호수라고 불렀으며 그렇게 불러야 제 맛이 났다. 그리고 주위엔 고만고만한 야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었다. 이런 지형이다 보니 동네엔 거의 매일 아침마다 안개가 끓어올랐고 안개가 피어오르면 산이 그것을 담아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게 했다.
그럼 안개는 그 안에 있는 모든 걸 삼켜버렸다. 진초록의 나무와 풀, 그리고 다채로운 색깔의 꽃들을 뿌옇게 덮어 버리고 집과 사람들조차 그렇게 사로잡았다.
또 우리 동네는 대개의 옛 동네들이 그렇듯 조금 큰 공터가 있었는데, 공터엔 늘 악다구니들과 동네 강아지들, 그리고 별 할 일이 없는 어른들이 모여 궁상을 떨었다. 그리고 너른 공터에는 공터를 제 집 마당으로 알고 있는 바보 자식과 그의 여자가 있었다.
그 둘은 공터에 있는 큰 판자떼기로 이루어진 집 비슷한 데서 살림을 했다. 살림이라고 해봐야 둘의 몸뚱이를 덮을 이불 쪼가리, 그리고 수저 두개와 큰 개 밥그릇 두 개 외에는 별 게 없었지만 말이다.
날이 좋으면 동네 악동들은 하루 종일 종이를 접어 딱지치기를 하거나 물장구치며 헤엄치기, 그도 아니면 숨바꼭질을 했다. 허나 이 모든 것이 지겨워지면 아이들은 늘 그 바보와 그의 여자를 가지고 놀았다. 남자를 향해서는 바보라고 부르며 돌을 던지고 여자에겐 접근하여 치마를 들춰보는 것이다.
헌데 그 바보는 돌을 던지면 가만히 있었지만 자기 여자의 치마 속을 넘볼라치면 언제나 입에 게거품을 물고 달려들었다. 그럼 악다구니들은 정신없이 도망치며 잡히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만일 재수 없이 잡히면 그 바보에게 코끝이 눈물나게 잡혀야 했기 때문이다. 한 놈은 그렇게 코끝이 잡혀 코에 빨간 핏자국이 생겨 무려 한 달이 지나도록 그 자국이 없어지지 않았다. 한 달 동안 그 애의 별명은 당연히 딸기코가 되었다. 그 아이가 바로 나다.
하지만 동네 악다구니들만 그 둘을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었다. 동네 어른들도 노상 그 둘을 밥상의 반찬 삼아 혹은 술상의 안주 삼아 씹어 먹고 걸쭉하게 입맛을 다셨다. 어른들의 말에는 늘 표준말과 사투리가 섞여 있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살던 곳이 경기도 근방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곳엔 주로 호남 사람들이 올라와서 정착했는데, 서울말과 그들의 말이 서로 몸을 섞어 그렇게 된 것 같았다. 그들의 말은 완전한 사투리도 온전한 표준말도 아니었다. 그들의 말은 대개가 말이 끝날 즈음에 가서 본 고장의 사투리나 억양이 드러났고 접속사나 감탄사 등에서 본래의 토속어가 튀어나왔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