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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밀린 Nov 23. 2023

목소리만 듣고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인간에게 있어 소리는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이를테면 신나는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잔잔한 노래들이 울고 있던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만들기도 한다. 가끔씩 라디오에 나오는 이별 사연들이 내 얘기인 것만 같은 착각, 이 모든 것들이 소리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내 생각에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소리는 바로 사람의 목소리일 것이다.


왜냐하면, 성대의 떨림은 그 어떤 관악기의 떨림보다 정교하고 다채로우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현악기와 현의 마찰음보다 직접적이다. 작곡을 전공하면서 늘 듣던 얘기가 있다


'곡이 아무리 좋아도 보컬이 별로면 명곡이 될 수가 없다'는 얘기와 반대로,


'곡이 별로여도 보컬이 좋으면 명곡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의구심을 품었지만,

그만큼 목소리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하나의 어필 수단일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매력적인 요소이기에, 일부 사람들은 목소리만으로 그 대상을 착각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나도 처음에는 상대방의 목소리만으로 그 사람의 모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착각했었지만, 그 콩깍지를 벗겨준 계기가 있었다.



좋아하는 발라드 가수가 있었다


그 가수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들이 너무나도 순수하고 아름다웠기에, 나는 그걸 부르는 사람 또한 그런 삶을 살아오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발라드 가수가 '미성년자 성매매'로 경찰에 입건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2 soo... 지하철을 타다 그 이름과 같은 역명을 보고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아마 팬들은 몰랐을 것이다.

어쩌면 그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자신도 이런 풋풋한 연애를 해야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가수가 '앨범 발매 소식'이 아닌 '불건전한 성범죄'를 알려주는 것에 큰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 사건을 계기로, 연예인도 결국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나는 연예인을 봐도 상상의 날개를 펼치지 않는다. 


이렇듯 불편한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회피하며 로맨스를 꿈꾸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비단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K-POP 아이돌을 좋아하는 아시아 지역에서도 그 예시를 찾아볼 수 있다.


한국과는 다르게 계급사회가 존재하는 중동아시아와, 남존여비의 사상을 바탕으로 두고 있는 동남아시아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이 국가의 남자들은 여성들을 동등한 위치로 인정해주지 않기에, 여성들은 회피 수단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의 남자 아이돌을 보며 현실을 잊으려 한다.


또한 반대의 경우인 일본도 그럴 것이다.


요즘에 지하돌(인디 아이돌)에 관련된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방에서 나오지 않는 즉, 히키코모리들은 이성과의 교제에 희망을 가지지 않은 채, 자신의 표현을 받아줄 수 있는 아이돌에게 로맨스를 가지고 있다. 일본의 현재 문화에 특이한 점이 있다면, 회피 수단의 방향이 점점 더 마이너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요즘 일본의 오타쿠들은,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유명해지면 팬들이 많아져,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응원하는 아이돌이 유명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점점 더 인기가 없는 아이돌을 찾고, 그 아이돌이 유명해지면 응원을 멈추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다시 내 얘기를 들어주는 아이돌을 찾아 나선다. 이렇듯 팬덤은 보이는 외형적인 부분들(외모, 몸매)과 내형적인 부분(노래, 목소리)들로 그 사람을 정의한다.


나는 이 모든 부분들 중에, 목소리가 가장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은 남는 부분을 자신의 사념으로 채우기 때문이다 


'이렇게 동굴 같은 목소리를 가지면 잘생긴 사람일 거야'


'잔잔하게 얘기를 해주니까 분명 성격도 차분할 거야'


이 모든 착각은 드라마와 영화의 여파일지도 모른다.


잘생긴 배우들은 대게 목소리도 좋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목소리만으로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영화 'Her'의 한 장면, 주인공 테오도르와 AI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전체적인 줄거리
스파이크 존즈의 영화 'Her'의 남자 주인공 테오도르는 AI로 만들어진 사만다를 보고 조금씩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다.

사만다의 육체가 없이도 둘이 사랑(폰섹스)을 나누며, 외형 없이도 카메라를 통해 일상을 공유하며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함께한다. 


지금 현대사회는 연애를 하기 위해 너무 많은 노력들이 필요해 보인다.


결혼을 위한 안정적인 직장과, 깔끔히 정돈한 인상과 옷차림, 이성을 재밌게 하기 위한 유머코드 등,

운명적으로 찾아오지 않는 연애의 현실 속에서, 연포자(연애를 포기한 사람)들은 이 무수한 노력들을 포기한 채 다른 대체제를 찾아가고 있다.


이렇듯,

현실의 연애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자극적인 목소리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목소리에 현혹되지 않으려 하는 나지만, 사기꾼들의 수법은 점점 더 교묘해지고 악랄해지고 있다.


그들의 수법이란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자극적인 플러팅을 하며 후원을 요구하거나, 순진한 사람들의 생각을 부정하며 잘못된 사상을 주입하는 가스라이팅과 같은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우리는 조금 더 진실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8,316명과 바람을 피우는 사만다의 목소리보다 나만을 생각해 주는 단 하나의 목소리가 더 값진 것처럼, 


서로가 서로의 목소리에 가치를 안다면, 말로만 듣던 로맨스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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